가슴속에 늘 들어있던 그 단어를 꺼내는데 몇 가지 과정이 필요했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기록을 해본다. 열흘 전쯤 내 얼굴에선 감정이 모두 빠져나갔었다.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안 되겠는데. 퇴사하기 좋은 날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으로 꼽고 있던 날짜는 분명히 있었다. 입사 20년이 지나면 결단을 내려야지. 약 두 달 전, 그날이 지났고 그 이후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탄력을 잃은 채 살고 있었다.
그러다 더는 단 하루도 견디기 어려운 날이 왔다. 주말 동안 표정을 잃은 얼굴로 지냈다. 남편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고, 일기도 계속 썼다. 월요일에는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인사팀 직원에게 개인적으로 호출했다. 나는 그녀가 좋았고, 할 수만 있다면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명예퇴직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상자에 해당한다는 확답을 받고 나서는 화요일 출근하자마자 바로 직속 상사에게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다. 늘 웃는 상인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듯 웃음기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내가 커다란 말을 해서 그는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는 현실을 부정했다. 다시 생각해 보자고, 근무 환경을 바꿔보자고 했다. 사무실로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수요일은 미리 예약해 두었던 건강검진날이 다가왔다. 난 내 몸이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사실 많다.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날도 있다. 코로나에 세 번이나 걸렸을 때도 힘들기보단 좋았다. 회사에 안 가도 되니까. 이번 건강검진에서는 처음으로 아픈 곳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회사밖에서는 건강하게 웃는 날이 많은 삶을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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