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만 하기에도 짧은 생
― 신명기 33장 1~11절을 읽고
죽음을 앞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한다. 르우벤에게는 생명이 이어지기를, 유다에게는 대적 앞에서 도움이 있기를, 레위에게는 맡겨진 거룩한 일을 감당할 힘이 있기를 빈다.
자신은 곧 떠나야 하는데, 남아 있을 사람들의 삶을 생각한다.
그 말씀 앞에서 나는 엉뚱한 질문을 붙든다.
나는 무엇의 노예일까.
한병철의 『피로슬롯』를 떠올린다. 더 해낼 수 있다는 요구가 내 안으로 들어오면, 나를 몰아붙이는 사람도 지쳐 쓰러지는 사람도 내가 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어나고, 누가 확인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점검한다.
나는 쉬다가도 무언가를 집어 든다. 지나쳐도 될 장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핀다.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미리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는지.
성실함이라고 여겼던 마음의 밑바닥에 두려움이 있다.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 있어야 한다. 그 당연한 명제가 때로는 무겁다. 내가 선 자리는 안전한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리는 괜찮은가.
사고로 누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오래 머문다. 막을 수는 없었을까. 무엇을 더 살폈어야 했을까. 질문은 어느새 내 생활까지 따라온다.
외출하기 전 가스 불을 들여다본다. 꺼졌는지 다시 확인한다. 마음의 불도 그렇게 살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마음에는 눈에 보이는 파란 불꽃이 없다. 얼마나 달아올랐는지 모른 채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열기를 쏟는다.
어제도 그랬다.
“프라이데이!”
남편과 금요일을 반기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 말을 할 때만 해도 저녁의 나는 조금 가벼워져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퇴근할 무렵에는 다시 외칠 기운이 없었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몸은 사무실을 나왔는데, 마음은 아직 바카라상 앞에 앉아 있었다.
피곤했지만 수영은 가야 했다.
정해 둔 일을 건너뛰면 하루가 덜 끝난 것 같았다. 쉬어도 되는 저녁에, 나는 해야 할 일을 하나 더 붙들었다.
남편과 차에 탔다. 남편은 다음 날 아침에 있을 아파트 난방 공사 이야기를 꺼냈다. 개별난방으로 바꾸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집 안 공사는 끝났고, 이제 바깥 배관을 연결할 차례였다.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사다리차가 온다고 했다.
베란다 창문을 열어 두어야 한다는 말에 내 마음이 먼저 급해졌다.
내일 아침에는 병원에 가야 하는데. 피검사도 받아야 하고, 정기적으로 먹는 약도 처방받아야 하는데. 집에 남아 공사를 지켜봐야 한다면 어떡하지.
말이 따다다다 쏟아졌다.
나는 병원에 가야 한다고, 그 일을 맡을 수 없다고.
남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까지 들었다면 알았을 것이다. 내가 집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었다. 창문만 열어 놓고 병원에 다녀오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부탁의 내용을 듣기도 전에 부담부터 떠안았다. 그리고 내가 짐작해 만든 그 부담을 급히 밀어냈다.
남편에게는 내가 먼저라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나는 내 사정을 설명한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의 말이 놓일 자리는 남겨 두지 않았다.
수영장 주차장에 도착해 주차까지 마쳤을 때, 남편은 차를 돌렸다.
우리는 수영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하루쯤 건너뛰어도 됐다. 피곤하다고 말하고 쉬었어도 됐다. 그런데 나는 수영을 가야 한다는 생각을 놓지 못했고, 정작 함께 간 사람의 이야기는 끝까지 듣지 못했다.
집에 와서는 잘 잤다.
아침에 눈을 뜨니 전날의 일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렇게 급하게 지켜야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남편은 창문 하나를 열어 달라고 했는데, 나는 내 시간이 전부 빼앗기는 사람처럼 굴었다.
내 안의 ‘또야’가 먼저 몸을 일으켰던 것 같다.
또 내가 해야 해?
또 내 사정은 뒤로 밀리는 거야?
남편의 말 위로 오래된 목소리가 겹쳤다. 그 목소리가 커질수록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의 말은 작아졌다.
병원에 다녀와 문자를 보냈다.
“병원에 다녀왔어요. 미안해요.”
남편에게 답이 왔다.
“나도 미안해.”
휴대전화 화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어제 차 안에서 길게 쏟아 냈던 말보다 짧은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다시 모세의 축복을 읽는다.
자신의 삶이 끝나 가는 자리에서 모세는 남은 사람들의 생명과 앞날을 빈다. 나는 아직 살아갈 날이 있는데도, 오늘 해야 할 일에 마음을 빼앗겨 곁에 있는 사람을 자꾸 놓친다.
주먹을 쥐고 태어나 손을 펴고 떠난다는 말을 생각한다. 마지막에야 펴게 될 손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 조금씩 펴 보아도 될 것이다. 오늘의 계획 하나쯤 놓을 수 있도록. 상대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도록.
축복만 하기에도 짧은 생이다.
오늘 내가 건넬 수 있는 축복은 이 말에서 시작된다.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