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들에게 성적표를 읽어주었다
다음 세대는 부모의 등을 읽는다
모세는 율법을 써서 언약궤를 메는 제사장들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건넨다.
그리고 매 칠 년 끝 해,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율법을 낭독하라고 명령한다. 남자만이 아니었다. 여자와 어린이,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까지 모두 말씀을 들어야 했다.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 신명기 31장 12절
말씀은 한 세대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아직 말씀을 알지 못하는 자녀들도 듣고 배워야 했다. 모세는 자신이 사라진 뒤에도 말씀이 다음 세대의 입과 마음에 남기를 바랐다.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 신명기 31장 13절
말씀을 읽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는 아들에게 무엇을 읽어주었을까.
성경이었을까.
세상의 성적표였을까.
아들은 모태신앙으로 자랐고 유아세례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예배의 자리에 오지 않는다. 예수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세상에는 볼거리와 즐길 것이 너무 많다. 교회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한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명령은 자신을 구속하는 울타리처럼 보일 수 있다.
가난한 예수, 십자가를 지는 예수,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예수의 이야기도 요즘 세대에는 낯설게 들릴지 모른다.
요즘 온라인 게임에서는 윗사람이 일을 부탁하면 이런 대답이 곧잘 돌아온다.
“제가요?”
“왜요?”
그런 세대에게 죄는 사람이 짓고 그 값은 예수가 대신 치렀다는 복음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십자가는 힘없는 누군가에게 희생을 떠넘긴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친히 죄의 값을 감당하신 사건이다. 그 사랑은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죄를 깨닫고 돌이켜 서로 사랑하라고 부른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여호수아를 회막으로 부르신다. 구름 기둥이 장막 문 위에 머물고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죽은 뒤에 일어날 일을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
— 신명기 31장 16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하나님을 잊을 것이다. 풍요를 누리면서 그 풍요를 주신 분에게 등을 돌리고, 눈에 보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배신 앞에서 진노하신다.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 신명기 31장 17절, 개역개정
하나님의 진노는 내 화와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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