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전을 다시 읽는 점심
신명기 29장 22절부터 29절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내과에 들렀다.
오메가 3 처방을 받기 위해서였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
먹고 있던 약 이야기를 했다.
“석 달 치를 처방받았는데
육 개월 동안 먹었어요.”
의사가 복용법을 확인해 주었다.
하루 두 번.
아침과 저녁.
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하루에 한 번씩 먹었다.
그래서 석 달 치 약이
육 개월이나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약을 빼먹은 것은 아니었다.
매일 꼬박꼬박 먹었다.
다만 제대로 먹지 않았다.
성실하게 틀렸다.
처방전을 받았지만
처방을 알지 못했다.
병원을 나오며
약 봉투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아침, 저녁.
그 두 단어가
전에는 왜 보이지 않았을까.
오늘 읽은 신명기 말씀이
약 봉투 위로 겹쳐졌다.
신명기 29장 끝에서
모세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훗날을 말한다.
이스라엘의 후손과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황폐해진 땅을 바라볼 것이다.
땅에는 유황과 소금이 남고
씨를 뿌릴 수도,
풀 한 포기 자랄 수도 없다.
사람들은 묻게 된다.
“어째서 이 땅이 이렇게 되었는가.”
대답은 분명하다.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알지도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가서
절하고 섬겼기 때문이다.
말씀을 읽다가
‘다른 신’이라는 말 앞에 머물렀다.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 앞에 절하는 것만을 뜻할까.
나는 오늘 하루
무엇을 가장 오래 생각했는가.
무엇에 마음을 빼앗겼는가.
누구의 눈치를 보았는가.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었는가.
어떤 사람의 말 한마디에
내 하루의 평안을 내주었는가.
내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무엇이며
끝내 놓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들이 어쩌면
내가 오늘 섬긴 신들의 이름인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셨다.
부모가 자녀를 낳았다고 말하지만
생명을 처음부터 만든 것은 아니다.
부모는 생명이 오는 길에 참여했을 뿐이다.
내가 밥을 짓는 것도 그렇다.
쌀을 만들지 않았고
물과 불을 만들지 않았다.
나는 이미 주어진 것들을 모아
밥이 되도록 손을 보탰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자주
내가 무언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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