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남긴다는 것

동파육

2026년이 6월에 들어섰다. 달력의 페이지가 절반쯤 제 몫을 다했고, 목표를 세우던 연초의 마음가짐은 절반쯤 흐트러지는 시기다. 1월의 나는 새 다이어리처럼 반듯하고 빳빳했다. 아직 아무것도 소모되지 않은 사람 특유의 자신감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올해 목표를 이렇게 적었다.


투고 및 출간 계약.


출판사와 어떤 교감도 없었다. 편집자와 눈빛을 주고받은 적도 없었다. 계약서는 커녕 투고 메일 주소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였다. 패기만 넘쳤다. 마치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되는 사람처럼 자신 있게 써두었다. 작년부터 온라인카지노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욕심이 생겼다. 언젠가 내 이름이 적힌 바카라을 내보고 싶었다. 분야는 수필로 정했다. 온라인카지노에서 그나마 연습해본 것이 수필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익숙한 골목을 벗어날 용기는 없었다.


계획을 요약하면 이렇다. 1분기에는 마음에 드는 수필과 출판에 관한 바카라, 편집자들이 쓴 바카라을 시간 나는 대로 읽고 연구한다. 2분기에는 그 연구를 바탕으로 내 원고를 완성한다. 3분기에는 출판사에 투고한다. 4분기에는 출간 계약을 한다. 있는 것이라고는 퇴근 후의 약간의 체력, 주말의 시간, 그리고 가끔 근거 없이 부풀어 오르는 자신감뿐이었다. 그래도 그때의 내가 고맙다. 그 무모한 1월의 내가 없었다면 6월의 나는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마침 온라인카지노에 라이브독서 기능이 생겼다. 원래도 읽은 바카라을 기록하는 다른 공간은 있었지만, 읽은 시간과 페이지 수, 권수가 실시간으로 기록되니 그 숫자에 홀려버렸다. 누가 칭찬해 주는 것도 아닌데 숫자가 하나 올라갈 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성실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50권 정도의 바카라을 읽고 1분기가 끝나갈 무렵 한 공모전의 소식을 보게 되었다. 익숙한 공모전 이름에 눈길이 머물렀다. 다른 온라인카지노 작가님이 이 공모전을 통해 바카라을 출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모전 공지는 어디선가 나를 향해 손짓하는 문처럼 보였다. 문이라고 해서 전부 열고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미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제출 기한을 보니 한 달이 남아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원고를 완성하기에는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는 시간. 사람을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종류의 시간이다. 하루 정도 고민한 뒤 아내에게 말했다. 공모전을 준비해보고 싶다고. 4월 한 달은 퇴근 후 글만 써야 할 것 같다고. 그러니 계획해둔 여행은 취소하고, 예약해둔 숙소도 환불해야 할 것 같다고.


벌써 세 번째 취소였다. 첫 번째는 비 소식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독후감 공모전에서 수상하게 되어 시상식 날짜와 겹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또 다른 공모전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도 아내는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당연히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보고 싶으면 해야 한다고, 이번에는 글을 쓰는 게 맞다고 응원해주었다. 나는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여행을 취소하는 사람은 나였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늘 아내였다. 내 꿈은 자꾸 아내의 일정표를 빌려 자랐다.



온라인카지노에도 한 달 동안 글 연재를 쉬겠다고 알렸다.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쉬어야 했다. 평소처럼 연재를 이어가면서 공모전 원고까지 완성할 자신은 없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응원의 댓글을 남겨주셨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는 말들이 힘이 되었다. 얼른 공모전에 원고를 제출하고, 다시 따뜻한 온라인카지노로 돌아오고 싶어졌다.


한 달 안에 원고를 완성해야 했으니, 완전히 새로운 글을 쓰는 것은 무리였다. 다행히 온라인카지노에 연재를 마친 글이 있었다. 회사생활을 하며 마주치는 사람들, 상황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주 닳아가는 내 마음을 심리학 이론과 함께 돌아보는 시리즈였다.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현재는 모두 비공개로 돌려둔 상태였다.


나는 그 글들을 다시 꺼내보기로 했다. 단순히 먼지만 털어내는 정도로는 부족했다. 내가 온라인카지노에 올리는 글들은 퇴고를 거치지 않은 초안이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늘어놓은 수필이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까운 글이었다. 나는 이 글들을 전신성형에 가까운 탈바꿈을 시키기로 했다. 퇴근 후 체력이 바닥난 집도의는 원고를 수술대에 올렸다.


목표는 무조건 재밌게 였다. 읽는 사람이 적어도 한 편에 한 번은 웃게 만들고 싶었다. 한 편을 고칠 때마다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아내가 웃으면 통과였다. 웃지 않으면 다시 바카라상으로 돌아갔다. 문장을 고치고, 비유를 바꾸고, 농담을 덜어내고, 다시 넣었다. 원고가 조금씩 나아질수록, 그동안 읽은 바카라들이 왜 그렇게 퇴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는지 몸으로 체감하게 되었다.


자는 시간 빼고는 대부분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4월 중순에 들어설 무렵, 왼팔 전완근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글을 쓰다 보면 몸 어딘가가 투덜거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갈수록 왼팔은 더는 못 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왔고, 고질병이던 손목은 진작부터 파업에 들어간 상태였다. 겨우 공모전 마감 전날 원고를 완성해 제출할 수 있었다.


그 저린 통증은 6월이 된 지금까지 남아 있다. 특히 어제는 증상이 심해져 왼쪽 손목을 움직이기 어려울 만큼 아팠고, 손등까지 부어올랐다. 주먹을 쥘 수도, 무언가를 제대로 들 수도 없었다. 요리를 마치고 음식을 식탁으로 나르는 일마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왼팔의 통증들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공모전에 당선되었으니 말이다. 떨어졌다면 이 통증은 괜한 무리의 흔적이 되었을 텐데, 당선되고 나니 훈장이 되었다. 원래 훈장이라는 게 딱히 실용성은 없으니 고통도 훈장이라면 훈장이다.



다음 주면 시상식에 간다. 10월쯤이면 내 이름으로 바카라도 출간된다. 올해 목표는 투고와 출간 계약이었는데 목표보다 조금 더 먼 곳까지 와버렸다. 당선의 기쁨은 역시 맛있는 음식과 함께여야 한다. 기쁜 날이라고 해서 처음 만드는 음식을 꺼냈다가는 축하 자리가 실험실이 될 수 있다. 실패한 요리 앞에서 그래도 당선된게 어디냐며 위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당선 파티 음식은 자주 해 먹어 맛이 보장된 것으로 정했다. 바로 동파육이다.


칼집을 낸 오겹살을 팬에 올린다. 모든 면을 노릇하게 굽는다. 물, 간장, 춘장, 팔각, 후추, 양파, 파, 마늘, 생강, 설탕을 넣어 국물을 만든다. 거기에 구운 오겹살을 넣고 두 시간 반을 삶는다. 동파육은 서두르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다. 센 불로 밀어붙인다고 빨리 완성되지 않는다. 오래 삶아야 한다. 천천히 색이 배고, 기름이 빠지고, 살이 부드러워진다. 글 쓰는 일도 비슷했다.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청경채를 살짝 데친다. 너무 오래 데치면 힘을 잃고 너무 짧게 데치면 풋내가 남는다. 적당한 순간에 건져야 한다. 잘 삶아진 동파육을 접시에 올리고, 데친 청경채를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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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도 아닌데 아내의 축하 노래를 들으며 식사를 시작했다. 아내는 이제 등단하는 거냐며 한껏 내 어깨를 올려주었다. 나는 아직 아니라고 겸손한 척했지만, 칭찬만큼은 기분 좋게 정확히 들었다.


아내는 곧바로 손목 이야기도 꺼냈다. 제발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말 안 듣고 고집만 부리는 남편을 보는 답답함이 목소리에 묻어 있었다. 나는 병원에 갈 마음은 별로 없었지만,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서둘러 화제를 동파육으로 넘겼다.


젓가락을 대자 동파육이 힘없이 갈라졌다. 칼이 필요 없었다. 오래 삶긴 고기는 더 이상 버티겠다는 고집이 없었다. 짭짤하고 달큰한 양념이 살 속까지 배어 있었고, 팔각의 향은 뒤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냈다. 조금 느끼해질 때쯤 청경채 한 줄기를 곁들였다. 살짝 데친 청경채는 아삭하게 씹히며 입안을 정리해주었다.


밥 위에 동파육 한 점을 올려 먹었다. 기름진 살이 밥알 사이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진한 양념을 밥은 얌전히 받아냈다. 이럴 때 밥은 접시 위의 편집자 같다. 강한 맛을 조금 눌러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전체를 읽기 좋게 정리해준다. 원고에도 이런 밥 같은 존재가 필요했다. 내게는 아내가 그 역할을 해주었다.


우리는 동파육을 먹으며 시상식 이야기를 하고, 바카라이 나오면 어떨지 이야기했다. 그러다 다시 손목 병원 이야기로 돌아왔다. 나는 또 알겠다고 했다. 아내는 내 대답을 믿지 않는 얼굴로 고기를 한 점 더 집었다.

충분히 근사한 당선 파티였다.



나는 20대 후반쯤부터 언젠가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다. 유튜브도 해보고, 블로그도 해보고, 지금은 온라인카지노에 글을 쓰고 있다. 이것저것 시도는 했지만,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만한 것은 없었다. 세상은 내 콘텐츠를 향해 대체로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런데 이제 정말 내 이름을 달고 바카라이 나온다. 내 이름은 그동안 회사 메일의 발신자, 택배 송장의 수령인, 병원 예약 명단 같은 곳에 주로 쓰였다. 그런 이름이 바카라 표지에 올라간다니 이상한 일이다. 늘 생활의 구석에서 실무적으로 쓰이던 이름이 어느 날 다른 바카라들과 함께 서점에 앉게 되는 것이다.


동파육은 소동파라는 중국의 대문호이자 미식가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름 하나가 오래 남아 음식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누군가의 저녁 식탁에 오르는 일은 신기하다. 사람은 사라져도 이름은 여러 방식으로 남는다. 어떤 이름은 시에 남고, 어떤 이름은 역사바카라에 남고, 어떤 이름은 기름진 돼지고기 위에 윤기처럼 남는다.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세상을 뒤흔든 거창한 인물들의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이름은 훨씬 작고 다정한 방식으로도 남을 수 있다. 누군가의 바카라장 한 칸에, 어느 독자의 밑줄 옆에, 아내가 웃었던 문장 하나에 남을 수 있다. 누군가 바카라장을 넘기다 잠시 멈추는 순간에, 마음에 든 문장을 사진으로 남기는 손끝에, 이 문장 웃기다며 웃는 목소리 안에 남을 수 있다. 내 이름이 그렇게 남는다면 충분히 근사한 일이다.


그날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아내의 후기

동파육
★5.0점
쫄깃한 껍질, 입안을 가득 채우는 지방층, 담백한 살코기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동파육이었습니다.
간이 세지 않아서 고기만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많이 씹지 않아도 꿀떡꿀떡 넘어갈 만큼 부드러웠습니다.
청경채도 적당히 아삭해서 기름진 맛을 잘 잡아주었습니다.
정말 정신없이 먹었던 요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