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난반, 부추볶음
수천 년 전 인류가 나 같은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동굴 속 삶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이 신호를 보내면 다른 사람은 사냥감을 몰아야 했고, 숨어 기다리던 사람은 정확한 순간에 창을 던져야 했다. 어렵게 얻은 식량은 불을 지키는 이웃, 독이 든 열매를 구분하는 어르신, 아이를 돌보는 가족과 나누어야 했다.
힘센 사람 혼자 오래 살아남는 세계가 아니었다. 그때 혼자 지낸다는 건 취향일 수 없었다. 눈 밝은 사람, 기억 좋은 사람, 손 빠른 사람, 겁은 많아도 섬세한 사람이 서로의 곁에 있어야 했다. 문명은 똑똑한 개인이 밀어 올린 탑이 아니라, 옆 사람과 다정함을 나눈 사람들이 간신히 일궈낸 것이었다.
원시 시대에 나는 분명 위태로운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위험성은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참혹하게 발견되었다. 사건 현장은 카지노톡 대화창이었다. 아내가 내 휴대폰 화면을 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이건 너무 심각한데?"
금융 사고도 아니고, 보안 사고도 아니었다. 인간관계 사고였다.
맨 위에는 아내와의 대화방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부모님과 동생이 있는 가족 단톡방이 있었다. 세 번째 대화창부터 곧바로 사고의 흔적이 드러났다. 광고, 알림, 이벤트, 쿠폰, 배송 안내가 줄지어 있었다. 내 카지노톡은 기업들의 홍보 게시판이었다. 브랜드만 나를 찾았다. 한결같이 내 소비만이 목적이었다.
스크롤을 한참 내리자 그제야 희미한 인간의 흔적이 다시 나타났다. 일 년에 서너 번, 송년회나 스승의 날을 핑계 삼아 잠깐 살아나는 대학원 연구실 단톡방. 한때는 시답잖은 이야기들로 분주했지만, 이제는 누군가 결혼할 때마다 청첩장 전달용으로만 부활하는 회사 동기 단톡방. 더 아래로 내려가면 2년째 아무 말도 없는 대학 동기 단톡방도 있었다. 누군가 다들 잘 지내는지 메세지를 보내도 소생에 실패할 단톡방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모두가 잘 지내고 있어서 답이 없는 건지, 이제는 잘 지내는지 물어볼 사이도 아닌 건지 알 수 없는 곳들이었다.
가족 말고 평소에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 기준에서는 편안했다. 불필요한 소음도, 쓸데없는 약속도, 갑작스러운 모임 제안도 없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하지만 아내의 눈에는 달랐던 모양이다. 그 화면은 평온이 아니라 적막이었고, 정돈이 아니라 단절이었다. 한마디로 멸종 위기 인간관계였다. 복원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당사자의 의지가 희박한 상태였다.
취미도 대체로 혼자 한다. 바카라도 혼자 읽고, 글도 혼자 쓰고, 요리도 혼자 고민한다. 함께 나누는 즐거움은 덜할지 몰라도, 나름의 균형을 찾아 일군 최적화된 시스템이었다. 약속이 없으면 외롭기보다 먼저 안심했다. 주말 일정표가 텅 비어 있으면 내 체력의 관점에서는 대형 호재였다. 주말 최고의 계획은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데도 안 가고, 아무도 안 만나는 것이다. 이토록 완벽한 계획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다 보니 회사 이외에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마저도 회사는 사적인 친분을 다지지 않더라도, 정해진 시스템과 프로세스 속에서 일이 돌아가는 공간이다. 정을 쌓지 않아도 회의는 잡히고, 어색해도 메일은 오고, 서로의 사생활을 전혀 몰라도 결재선은 정확히 올라간다. 나는 자주 연락해야 하거나 가끔은 통화해야 하는 동료가 생기면, 스마트폰에 번호를 저장하는 대신 차라리 외워버리는 인간이다. 관계가 업무와 함께 종료되면, 그 번호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따로 삭제 버튼을 누를 필요조차 없다.
그런 내가 요즘 아내에게 들려주는 뜻밖의 이야기가 있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 잠들려 하다가도 그 이야기를 시작하면 몸을 들썩이고 눈을 반짝인다. 그저 내가 사람들과 점심시간에 모여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평소 사람 만나는 일을 에너지 누수로 여기는 인간이 회사 사람들과 점심시간에 자발적으로 모였다니, 아내 입장에서는 남편의 인간관계 회복 징후를 발견한 셈이었다. 멸종 위기 직전에 포착된 희소식이었을지도 모른다.
3개월 전쯤 새 부서로 옮긴 뒤, 나는 비공식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 온라인 게임인에게는 금값보다 귀한 점심시간을 내어주는 모임이었다. 온라인 게임인의 점심시간이 어떤 시간인가. 오전의 피로를 수습하고 오후의 피곤을 준비하는 절박한 완충지대다. 그 시간을 회의실에서 보낸다는 건 보통 결심으로는 어렵다. 그런데도 나는 초대에 응했고, 희귀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임 방식은 이랬다. 먼저 회의실에 둘러앉아 오늘의 기분에 점수를 매긴다. 그리고 왜 그런 점수인지 이야기한다. "오늘 저는 5점 만점에 4점입니다. 잠도 잘 잤고 오전 업무도 잘 풀렸는데, 약간 감기 기운이 있네요.” 같은 식이다. 그다음에는 각자 이 시간을 위해 가져온 것을 소개한다. 모두가 한마디씩 나눈 뒤 30분 동안 각자 가져온 것에 몰입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가며 그 30분 동안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느꼈는지 이야기한다.
우리가 가져온 것은 읽을 거리였다.
난생처음 독서모임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바카라을 너무 사랑해서 바카라장 앞에서 매일 밤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아니었다. 이렇게라도 활자를 읽어야 하지 않을까,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다가 뇌가 짧은 영상 전용 기계로 개조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위기감에서 만들어진 모임이었다.
그래서 방식도 느슨했다. 정해진 바카라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모임도 아니었고, 미리 읽고 와서 밑줄 친 문장을 발표하는 방식도 아니었다. 각자 읽고 싶은 것을 가져오면 됐다. 누군가는 종이바카라을 가져왔고, 누군가는 전자바카라을 보기 위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만 챙겨왔다. 바카라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신문을 읽는 사람도 있었고, AI가 요약한 바카라 내용을 보거나 유튜브에 올라온 바카라 해석 영상을 들으며 내용을 정리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날은 물성을 가진 형태, 그러니까 손가락으로 종이를 넘기고 페이지를 세어가며 읽는 바카라을 들고 온 사람이 나뿐이기도 했다. 그저 각자 자기 앞에 놓인 활자 근처에 잠시 머물렀다가, 그곳에서 주운 생각을 하나씩 꺼내놓으면 됐다.
매주 목요일 진행되는 이 모임을 아내는 나보다 더 기대하고 있다. 결국 회사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 사람들과 일이 아닌 일로 모여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보기 드문 사건이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이 있었던 날 저녁, 그 시간을 아내에게 들려주고 싶어졌다. 즐거운 이야기에는 맛있는 음식이 함께하면 더 좋다. 메뉴판 없는 우리 집 식당이 다시 문을 열었다.
메뉴는 치킨난반이다. 잘 튀긴 닭고기 위에 새콤달콤한 타래를 입히고, 그 위에 묵직한 타르타르 소스를 올린 요리다. 닭다리살에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했다. 밑간한 닭다리살에 튀김가루를 묻히고, 다시 계란물을 입혔다. 기름에 닭고기를 넣자 곧바로 기분 좋은 소리가 올라왔다. 그사이 타래를 만들었다. 간장, 식초, 설탕을 섞었다.
타르타르 소스도 준비했다. 양파와 삶은 계란을 다지고, 마요네즈를 넉넉히 넣었다. 후추, 설탕,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부추를 잘게 썰어 넣었다. 원래 타르타르 소스에는 피클이 들어가야 그럴듯하겠지만, 오이를 못 먹는 나는 부추로 대신해보기로 했다. 부추가 들어간 타르타르 소스는 낯설었지만, 느끼함을 잡아주고 향을 보태기에는 충분했다.
튀긴 닭고기에 타래를 뿌렸다. 뜨거운 튀김옷이 새콤달콤한 양념을 머금으며 살짝 촉촉해졌다. 그 위에 타르타르 소스를 올리자 치킨난반이 완성됐다.
부추가 많이 남아 올리브 오일에 다진 마늘과 페퍼론치노의 향을 먼저 입힌 뒤, 빠르게 볶았다. 간단히 부추볶음도 만들었다.
상을 차리고 아내와 마주 앉았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독서모임 있었어."
아내의 젓가락이 공중에서 멈췄다.
"맞네! 오늘 목요일이구나. 무슨 일 있었는지 빨리 얘기해봐."
기다렸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독서모임은 재미있는 일이 폭죽처럼 터지는 곳은 아니다. 막상 이야기를 해보려니 자신이 없었다.
"별로 재밌는 일 없었는데? 내 독서모임 얘기가 그렇게 재밌어?"
아내는 치킨난반을 한입 먹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난 너무 재밌는데?"
닭고기는 다행히 잘 튀겨졌다. 겉은 살짝 바삭했고, 타래가 스며든 부분은 촉촉했다. 타르타르 소스는 부추 덕분에 생각보다 산뜻했다. 요리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내 기억력이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일인데,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닭고기 속 수분이 뜨거운 기름 속에서 증발하듯 머릿속에서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부추를 집어 먹으며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오늘 누가 몇 점이라고 했더라. 왜 3점이라고 했지. 아니 4점이었나. 나는 무슨 이야기를 했고 어떤 바카라을 소개했더라. 아내는 그 어설픈 복원을 흥미롭게 들었다.
"아, 맞다. 한 분이 아이 생일 선물이 고민이라고 했어."
내가 겨우 하나를 떠올리면 아내는 바로 반응했다.
"오, 그래서?"
그러면 나는 다시 기억을 긁어냈다.
"그래서... 음... 아마 자전거를 사줄 것 같다고 하셨어."
그 사이 아내는 치킨난반을 한입 더 먹었다.
"이거 맛있다. 난 올리브 오일이 좋아."
요리처럼 맛을 살려낸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아내는 완벽하게 정리된 이야기를 바라는 것 같지 않았다. 누가 어떤 바카라을 읽었는지, 어떤 통찰을 얻었는지, 독서모임의 생산성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궁금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내가 읽은 바카라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반응이 크지 않았다.
아내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내가 누구와 마주 앉았는지,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누가 오늘 기분을 몇 점이라고 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그런 것들을 더 궁금해했다.
나는 아직도 왜 아내가 그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짐작은 한다. 혼자 바카라을 읽고, 혼자 글을 쓰고, 혼자 요리를 고민하던 사람이 회사 사람들 사이에 앉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왔다. 짧게라도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고 왔다. 그게 작고 기특한 사건이었나 보다. 독서모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아내에게 중요한 건 '독서'보다 '모임'인 듯하다.
아내의 후기
치킨난반
★4.7점
본인 요리에 칭찬을 잘 안 하는 신랑이 부드럽고 맛있다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ㅋㅋㅋㅋ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는 쫀득한 걸 더 좋아해 부드러워서 감점했는데, 신랑에게는 그 부드러움이 오히려 가산점이었던 것 같아요.
소스도 부드럽고 닭고기도 부드러워서 튀는 맛 없이 조화롭게 맛있어서 기분 좋게 잘 먹었습니다.
부추볶음
★5.0점
부추를 이렇게 먹을 수 있다니!
완전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올리브유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아주 딱 맞는 요리였어요 ㅎㅎ
아삭한 부추 식감에 올리브유 향이 더해지니 산뜻하고 고소해서 계속 손이 갔습니다.
느끼함도 잡아주고, 존재감도 확실했습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P.S.
공모전 제출하고 한 달 만에 돌아왔습니다!!
4월은 바빴고, 힘들었고, 요리는 거의 못 했습니다.
온라인카지노를 쉬는 동안 구독자도 줄어들고, 조회수는 바닥으로 수직 낙하했네요 ㅜㅜ
이제 다시 요리도 하고 글도 올려보겠습니다.
메뉴판 없는 우리 집 식당 한 달 만에 다시 영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