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기만 한 것도 함께한 세월이 길면 정이 들기 마련이다. 금연이 쉽지 않다는 걸 길게 말해봤다. 9년을 함께한 담배를 떠나보내며 잃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심한 입을 달래는 길은 오로지 과자나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뿐인지라 건강미를 잃었다. 무던한 성격마저 사라졌는데 동거인 규와 누가 더 성격이 더럽나 겨루기라도 하듯이 다툰다. 더러운 성격 대결에서 지는 쪽은 애석하게도, 주로 나다. 흡연 경력이 나보다 1.5배 더 긴 규가 금연에 인내심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름만 불러도 소파에 드러누운 규는 눈에 힘을 주고 나를 흘겨본다.
“왜?”
“의자에 옷 걸지 말랬잖아.”
“식탁에 올려둔 네 가방은 보이지 않나 보네.”
“말을 왜 그렇게 해?”
이때부터 우리는 누가 먼저 짜증 냈는지 담판 짓기 위해 잠도 줄인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더 세모나게 뜨며 노려본다. 나는 고민한다. 뒤로 한 발 물러설 것인가, 그의 시비에 응할 것인가. 주먹을 꽉 쥐고 나는 말없이 그가 대충 의자에 건 옷을 걷는다. 그나마 덜 예민한 쪽이 참는 수밖에.
우리가 금연을 결심하게 된 건, 아직 없는 존재 때문이었다. 규의 임용시험 이야기가 결혼을 부르고, 그 결혼이 임신을 부른 끝에 서른둘의 내가 노산의 언저리에 왔다는 걸 실감했다. 늦은 착상은 막을 수 없어도, 흡연 착상은 막아야 한다는 일종의 바카라임감이었다. 아직 없는 존재에게도 바카라임감을 느끼다니, 우스웠다. 금연은 걱정만큼이나 위기가 많았다. 금연과 동시에 규는 길에서 라이터와 꽉 찬 담배를 두 번이나 주웠다. 신이 담배를 권하듯이. 무엇보다 우리는 흡연으로 스트레스를 다뤄온 사람들인지라 스트레스 앞에서 방황했다.
규의 여섯 번째 임용시험은 담배 없이는 꺼낼 수 없는 주제였다. 시험 합격 여부와 결혼이 직결되는 만큼, 그의 어깨는 날이 갈수록 부담감에 짓눌렸다. 공부하러 갔다 하면 그는 담배 냄새를 온몸에 휘감았다. 사람은 다가오는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자와 회피하는 자로 나뉘는데 규는 후자였다. 배구와 각종 약속으로 피해 다닌 그를 보다 못해 내가 두 팔 걷어 잡도리하던 날이었다.
“나는 공부 못하는 놈은 그렇다 쳐도, 공부 안 하는 놈은 싫어.”
충격 요법으로 준비한 말이었는데 규는 생각지도 못하게 덤덤했다. 오히려 눈동자가 선명한 채로 목울대에 힘을 꽉 주고 말했다.
“공부 안 하는 것도 실력이겠지.”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시험을 그만두고 싶다는 의미냐고 물었다. 숨을 잠시 고르더니 규가 역으로 물었다.
“그래도 돼?”
그의 눈에 그제야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 한마디에 마법이 풀리듯이 지치고 파리한 안색이 보였다. 언제 저렇게 얼굴이 반쪽이 되었더라. 그러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래 한 줌 잡아보겠다고 손톱자국이 움푹 패도록 꽉 쥔 그의 주먹에 힘이 풀리며 모래들이 우수수 빠져나갔다.
규가 시험을 준비하는 여섯 해 동안, 우리는 송구스러운 사랑을 했다. 여행을 가도, 데이트를 해도 시험에게 송구스러웠다. 시험이 이런 식이면 합격 못 시켜줘, 라고 갑질을 해댔다. 그때마다 나는 아뿔싸, 하며 시험에게 규를 얼른 내어줘야 했다. 시험을 그만둔다는 건, 새롭게 연애한다는 의미와 같았다. 다른 누구에게 규를 내어주지 않고 송구스럽지 않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 생각만 해도, 어색했다. 이미 시험은 하나의 반려 형태로 우리 사랑에 많은 걸 헤집어 놓았다. 꼭 빠져줬으면 했던 것도 빠지고 나면 구멍 하나가 뻥 비어버린 것처럼 허전했다. 나는 개운하지 않은 마음을 숨기며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된다는 말로 얼버무리려던 찰나 규가 나에게 몸을 던져 와락 안겼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반려 시험을 떠나보내는 중이었다.
몇 분이 흐르고 어깨가 축축해졌다 싶을 때쯤, 조용해진 규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훌쩍이며 아직 눈물이 찰랑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제 담배 피워도 돼?”
“안돼. 인마.”
우리는 오래도록 함께한 시험과 담배와의 작별을 아직도 마치지 못했다. 무언가를 해야 할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시간을 보낸다. 8년째 연애하는 중이지만 처음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처럼 주변 부부나 커플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무엇으로 시간을 보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