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바위 치기

동성부부 토크콘서트를 다녀오며

by지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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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의 작은 무대에 여섯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담당자의 간단한 인사를 끝으로 여섯 여자가 무대 위에 올랐다. 두 명씩 붙어 앉은 그녀들은 부부들이다. 금요일 밤, 불수리 된 혼인신고에 대해서 말하고자, 세 부부가 무대 위에 섰다. 이성애자인 나를 포함해서 스무 명의 사람들이 관객석에 듬성듬성하게 앉았다. 명찰 속 내 이름은 초록색으로 사진에 얼굴이 나와도 좋다는 의미다. 검정과 주황색의 이름은 찍히는 사진에 얼굴이 드러나는 게 싫다는 의미였다. 검정과 주황의 이름들 사이에서 내가 어쩌다 레즈비언 토크 콘서트에 다다르게 되었는지 신기해하는 동안 슬롯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뉴스민 기자 김보현입니다. 이 자리는 법 제도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기도 하겠으나. 퀴어 부부가 어떻게 사랑과 가족을 만들어가고 있는지까지 전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소개를 먼저 해볼 텐데요, 배우자를 서로 소개해보는 건 어떨까요?"

관객들이 작게 들썩였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든 건, 까만 커플티를 입은 맨두와 깜빡 부부였다.

"제 아내가 되는 ‘맨두’라고 하고요. 세계적인 드러머이자 오케스트라에서 타악기를 치시고 글쓰기 모임도 하고 다재다능한 매력을 가졌습니다."

"여기는 아내인 ‘깜빡’입니다. 자주 깜빡하지만, 저를 좋아하는 것만큼은 절대 깜빡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맨두의 소개에 깜빡의 어깨가 잔뜩 올라갔다. 감탄하는 관객들 사이에서 나 또한 어깨가 으쓱했는데 맨두를 소개하는 말에 글쓰기 모임이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수상소감에 이름을 언급해준 것처럼 남몰래 마음이 웅장해졌다. 맨두의 토크 콘서트 초대에 응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다른 두 부부 또한 소개말이 강렬했다. 대구에서 가장 나대는 레즈비언 부부인 진아와 아현, 서로의 원칙을 많이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중이라는 여름과 나루. 다들 반려자를 이보다 더 잘 찾을 순 없다고 느낄 정도로 부부끼리 똑 닮은 아우라를 뿜었다. 가족이 되었다고 실감이 난 순간을 묻자 나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최근에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어요. 함께 돌보는 존재가 있고, 돌봄을 위주로 일정을 짜야 할 때마다 가족이 되었다고 실감이 났어요."

나루가 답하는 동안, 여름이 꿀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나루를 바라봤는데 누가 봐도 따끈한 신혼이었다. 고양이를 키우는 건, 청바지에 흰 티를 맞춰 입은 진아와 아현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고양이랑 아내랑 세 가족 안기를 입으로 말하면서 껴안아요. 그러면 진짜 가족이 되었구나, 실감해요."

그들이 말하는 가족의 한 장면에 소박한 웃음이 깃들었다. 나였다면 뭐라고 답했을까. 각자 가는 길은 달라도 돌아오는 길은 같은 것. 퇴근하고 돌아온 집에서 마주하는 얼굴, 멀리 여행을 다녀오면 안도하게 되는 얼굴. 모두 동거인 준규의 얼굴이었다. 우리가 사는 방식이 이미 가족의 형태였다. 가족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으나, 세 부부는 불수리 된 혼인신고 앞에서 한없이 거창해져야 했다. 때로는 토크 콘서트로, 때로는 유튜브 브이로그로.


준규를 엄마에게 소개했던 날은 눈을 감고도 똑똑히 그릴 수 있다. 어릴 적에 닳도록 오고 다녔던 본가의 대문 앞에서 준규와 손을 잡고 오래 서성거렸다. 우리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기에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준규가 임용되기 전까진 절대 결혼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사전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혼인신고하러 간 구청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는 진아와 아현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불수리 될 걸 알아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에는 마음이 한없이 쪼그라든다. 아현은 혼인 신고했던 날을 회상하며 앞에 놓인 휴지 한 장을 뽑았다.

"거절당하는 일에는 씩씩해지려고 애를 쓰는데 사실 되게 불안했어요. 구청에 미리 동성 부부인데 혼인 신고하러 갈 예정이라고 통보까지 했어요. 연락받고 직원분도 미리 메뉴얼을 준비하셨더라고요. 오히려 친절하게 대응해주셨어요. 끝나고 나니 정말 후련했어요." 그들이 고민 끝에 구청의 문턱을 넘을 수 있던 건, 누군가의 선례 덕분일지도 모른다.


숲에서 노루가 천적을 만나 방향을 급히 바꾸면 발굽에서 나오는 분비물로 흔적을 남긴다. 친구들에게 자신이 발견한 걸 알리기 위해서다. 노루가 분비물로 선례를 남긴다면, 나루와 여름은 셀프카메라로 기록을 남겼다. 혼인 신고하러 간 구청에 무려 셀프카메라를 대동했다. 불수리 브이로그는 친구들에게 증인을 부탁하는 장면부터 400원의 불수리 통지서를 받는 과정까지 나온다.

"대구에는 동성 부부가 혼인신고하는 사례를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선례를 남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셀프카메라를 켜게 되었어요. 다행히, 저희가 찾아간 구청 직원분도 침착하고 친절하게 받아주셨어요. 그게 오히려 아쉽더라고요."

아현이 구청 가기 전날까지 몇 번이고 돌려보며 긴장과 불안을 다스렸던 영상이 바로 불수리 브이로그였다.


맨두와 깜빡은 두 번의 불수리를 통보받았다. 우편으로 제출한 혼인신고서가 달랑 두 글자의 불수리 통지서로 날아왔었다. 동성.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구청 담당자에게 장문의 메일을 보내며 따졌다는 깜빡의 무릎에 맨두가 지그시 손을 올려두고 토닥였다. 한바탕 뒤에 다시 날아온 통지서는 두 글자보다는 조금 더 긴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현행법의 통상적인 해석으로는 동성인 신청인들의 혼인신고를 적법하다고 볼 수 없음.

"네. 저희는 그렇게 적법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날의 허무한 피로감이 아직 그들의 얼굴에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늘 서글퍼만 할 수 없는 일. 부부는 부부대로 산다. 진아와 아현는 싫어하는 걸 서로 봐주면서 산다. 축구 중계를 소리치며 보는 아현을, 자기 전에 말랑이 asmr 릴스를 보는 진아를, 서로 귀여워서 봐준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귀여워서 봐주는 마음은 다 똑같다.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어둔 준규의 외출복을 치우며 나도 생각했다. 귀여운 놈 옷 하나 더 치워준다고. 신혼인 나루와 여름은 합의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녀들의 신혼집에는 노란불 조명만 들어올 수 있다. 나루가 좋아하는 백색 등과 여름이 좋아하는 주광등의 합의점이 노란 등이니깐. 합의점이 꼭 중간일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백색과 주광의 공존을 위해 머리를 쓰고 있다. 하지만 살 만하다고는 쉽게 말할 순 없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부터 일상에 찬물을 끼얹는 말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진아와 아현이 패소했던 혼인 평등 소송 1심의 판결문이 그랬다.

"판결문의 요지를 제가 해석해보자면, 이렇습니다. ‘너희 지금 같이 살고 있고 가족들이랑 잘 지내고 먹고사는데 크게 문제없잖아. 동성 부부 법제화까지 꼭 필요해?’ 생활동반자법 이야기도 나오면서 굳이 이런 거까지 필요하냐는 말을 많이 들어요. 저희는 부부로 인정받고 싶어요. 다른 권리로 대체할 순 없습니다."

발바닥에 긴 가시가 박혔다고 상상해보자. 깊숙하게 박혔거나 얄팍하게 박혔거나 걸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절반만 가시를 빼주고는 ‘걸을 만하지?’ 묻는 것과 똑같다. 가시는 일상의 작고 큰 부분을 뒤흔들 준비가 된 것처럼 서슬 퍼렇게 뾰족했다.

"내년에 아내가 타지역으로 발령 나면, 제가 따라가야 할지도 몰라요. 법적 부부였다면 배우자의 온라인 게임 여건으로 인한 통금 불능으로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어요. 근데 저희는 그게 안 되고요."

"아내가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아도 제가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없다는 불안함도 항상 있어요."

"법적 부부가 아니면, 죽고 나서도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저희는 유서도 미리 써두었어요."

동성부부는 최고보다 최악을 먼저 그려야만 한다.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아서 그들은 늘 차선으로 산다. 그 중, 가장 무서운 최악은 사람에게 있다.

진아와 아현은 결혼식을 준비하며 뉴스민 언론사에 ‘결혼일기’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공공연해진 결혼 소식에 축하 소식도 많이 듣지만, 개인 인스타그램까지 찾아와 무지성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지금 아내와 하는 모든 것들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인데 왜 계속하냐는 질문을 종종 들어요. 그러면 저는 ‘죽을 것 같아서’라고 말해요. 최근 인스타그램에 악성 댓글이 많이 달리면서 그런 생각을 종종 해요. 내가 죽어야 끝이 나나. 근데 이런 발화하는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살아가요. 당장 내 일이니깐. 꼭 비장할 필요도 없고, 무거워질 필요도 없고, 내 일이라는 감각으로 계속하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근무하는 나루와 여름 또한 최악의 댓글을 마음 한쪽에 간직하고도 사람에게 다가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친해진 학생이 배경화면 속 아내를 궁금해하면 여름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한다.

"아내라고 솔직하게 말해요. 안 좋은 댓글 때문에 커밍아웃할 때마다 긴장되지만, 상대방이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눈빛에 중독되는 게 있어요. 그래서 세상 밖으로 나를 작게 혹은 크게 내보이는 것 같아요."

무거워진 분위기는 슬롯자의 마지막 질문으로 다시 공중 위로 붕 떴다.

"만약에, 동성부부 법제화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가장 먼저 뭘 해보고 싶으세요?"

세 부부는 다이어트 끝에 치킨을 떠올리는 것처럼 한껏 상기된 얼굴이 되었다. 맨두와 깜빡은 사랑하는 친구들과 축배를 들 계획을 세웠다. 진아와 아현은 기념일은 어떤 날로 골라야 하는지 기분 좋은 고민을 하다가 슬롯자인 김보현 기자와 눈이 마주쳤다.

"구청 가기 전에 기자님한테 연락해서 빨리 취재하러 오라고 부탁해야죠."

역시 방송의 진가를 아는 여성들이었다. 가장 마지막에 마이크를 든 여름과 나루는 한 단어에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말했다.

"가족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먼저 받아보고 싶어요. 보면 눈물 날 것 같지만.."

다른 두 부부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든 여정이 종이 한 장에 담기는 그 날을 다들 똑같이 그리는 듯했다.

토크 콘서트가 끝나고 관객석으로 마이크가 넘어왔다. 질문이 있다면 무엇이든 물어달라는 말에 나는 손을 들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잠자코 있었다. 이성애자라고 밝히는 순간, 이방인이 될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간 나에게 커밍아웃해준 여러 얼굴을 떠올리며 속으로 열심히 물었다.

'더 많은 당사자가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로 슬롯에 나오기 위해서는 이성애자의 어떤 태도가 가장 필요할까요?'

끝내 묻지 못한 질문을 속으로 되뇌는 중에 가장 먼저 손을 든 사람이 있었다. 앳된 얼굴에 가장 앞줄에 앉은 여성이었다.

"저는 퀴어 청소년입니다. 혹시 먼저 살아본 퀴어 선배로서 해주실 조언이 있을까요?"

세 부부의 얼굴이 이전 같지 않게 비장해졌다. 할 말을 고르느라 잠깐의 정적 끝에 입을 연 건, 맨두였다.

"퀴어성은 자신의 일부지, 전부가 아니라는 점만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내 질문에도 퍼즐처럼 꼭 들어맞는 달변이었다. 더 입체적인 모습을 당사자에게 기대하는 태도. 퀴어로만 상대방을 제한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겠구나. 나는 주최 측에서 나눠준 스티커 한 장을 필통에 붙이며 자리에서 정리했다. 변화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는 스티커 문장이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일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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