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보코프다

by신지승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중 아무도 우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네이버 길찾기를 켜놓고 셋이 같이 걸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소리에 주위를 둘러본다. 왼쪽 지하에 나다소극장이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나다소 극장이라고 외우고 있었다. 나다 소극장이었다.

공연 십 분 전이었다. 무대 바닥에 하얀 종이조각이 규칙 없이 흩어져 있고 한 구석에는 돌탑처럼 쌓여 있었다. 덩그러니 놓인 하얀 의자 두 개와 하얀 벤치 하나. 종이는 꽃상여의 한지 같기도 했고, 어릴 적 비행기에서 논밭 위로 뿌려지던 삐라 같기도 했다.

검은 커튼으로 된 출입구는 열려 있었고 사람들이 띄엄띄엄 들어오고 있었다.

티켓을 확인하는 여자는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비가 오다 보니 늦는 관객이 있어 십 분쯤 뒤에 시작해도 되겠냐며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무대 안쪽에서 남자가 하나 걸어 나왔다. 절룩거리면서. 처음에는 공연 전에 무대를 점검하러 나온 스태프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걸음과 분위기는 분명히 연기였다.

"공연이 시작되는 거예요?"

알렉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나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커튼은 닫히지 않았고 유니폼 여자는 아직 출입구에 단정하게 서 있었다. 시작부터 참신했다.

절룩거리며 객석 바로 앞의 하얀 벤치까지 걸어 나온 남자는 영락없이 가난하고 무력한 인물이었다. 벤치에 걸터앉은 그가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켜는 연기를 했다. 그때 출입구로 다리에 장애가 있는 한 사람이 보호자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와 맨 앞줄에 앉았다.

연기와 현실이 충돌하고 있었다.

무대 뒤편에 제목이 떴다. 「엄마를 절에 버리려」.

연극은 무능력하고 알코올에 젖어 살던 아버지가 죽은 뒤, 빚을 떠안은 딸과 현실을 등지고 출가를 결심하는 어머니.두모녀의 절로 향하는 길 위에서의 짧은 여정의 이야기다.



"소주 한잔 하시죠."

알렉이 제안했고 우리는 고기와 소주가 있는 가게를 찾았다. 한 무리의 남녀 손님들이 왁자지껄했다. 우리는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비 오는 거리로 가끔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가게 안 텔레비전에서 네팔 뉴스가 조용히 나오고 있었다. 사망자 육백여든두 명, 실종자 삼천 명. 빙하 쓰나미라고 했다. 그런데 화면에 뜬 홍수라는 두 글자가 창밖의 비를 보는 마음을 참담하게 만들었다. 지구의 사람들이 지금 모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울었죠? 아까 보니까 우시던데요."

알렉이 오벨뒤주를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

"…"

"알코올중독으로 요양병원에 누워 계신 아버지도 생각나고, 저희 하얀 개도 생각나고요."

"개요?"

"제가 며칠씩 방에서 안 나온 적이 있어요. 그러다 하루는 문을 열고 나갔는데 꼬리를 흔들면서 다가오더라고요. 그동안 혼자서 사방 아파트하고 굴뚝만 바라보면서 하루를 보냈을 거 아니에요. 괜히 나 때문에 이 개도 우울이 심하겠구나 싶었어요."

"…"

"그런데 눈이 맑았어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내 아들의 하얀 개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콘돔을 팔아서 용돈을 벌었다는 대목은 의미심장했어요."

내가 말했다.

"태어남에 대한 저주죠. 아주 상징적이었어요."

알렉이 말했다.

"저는 아들 편애로 차별받은 딸, 무능력한 아버지, 엄마의 출가길에 동행하는 딸, 모녀의 갈등과 이해. 나쁘지는 않았는데 뭐랄까, 참신하지는 않은 화두였어요. 좀 익숙하다고 해야 하나."

오벨뒤주가 아버지 때문에 울었듯이, 사실 나는 아들 때문에 울었다. 세상을 거슬러 연극 같은 헌실에서 살아온 아비 때문에 화가 만들어진 아들이 생각났다.

울지 않은 알렉이 말했다.

"저는 차라리 그 무능력한 아버지가 빚만 남기고 죽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죽으니까 남는 게 두 모녀 이야기로 좁혀지잖아요. 서사가 동행 하나로 집중되는 효율은 분명 있지만요."

"그렇죠. 안 죽으면 휠체어 밀고 딸과 아내를 절에 데려다주는 가족여행이 되는 건데, 그러면 이야기가 좀 지저분해지는 거죠."

"너무 비극이기도 하고요. 그동안 밥만 축내는 남자를 뒷바라지한 사람이 이제 와서 출가한다는 건 논리가 안 맞아요. 세속에서 자기 할 일을 다 했고 그제야 홀가분하게 나선다는 건."

"너무 전형적이에요."

내가 말했다.

"그 남자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술만 찾았을까요. 아들마저 팽개치고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산 사람은 아닐 겁니다. 가난한 살림에 선택과 집중은 필요한 거고, 그 선택과 집중이 실패했을 수도 있고요. 말년에 다들 무능력해지는 건 고령 고용이나 복지하고 얽힌 문제이기도 하잖아요. 술과 도박을 좋아해서 무능력해지는 것하고, 무능력해서 술밖에 의지할 게 없었던 것하고는 다르죠."

"…"

"결과적으로는 그 빚을 딸자식한테 떠안겨버리기는 했지만요."

오벨뒤주가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엄마와 아빠와 딸이 여행이나 절 같은 마지막 안식처, 도피처를 찾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적인 목적을 설정하는 이야기가 우리 슬롯에 더 필요한 거 아닌가 싶어요."

"…"

"예술은 항상 슬롯의 모순과 아픔을 노출시키거나 관객을 값싸게 힐링시키는 데 충실한 것 같아요. 이제 진력이 났어요."

아마 그 연극이 오벨뒤주에게 자신과 아버지를 이야기에서 배제하고 싶지 않다는 욕구를 일으켰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덩달아 그의 말에 이데올로기를 더 보태고 싶어졌다.

"드라마가 일상을 자꾸 단순하게 만들어요. 새로운 층위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요. 무능력한 아버지하고 딸하고 어머니, 셋이 같이 희망적으로 감당해보는 현실적 능력이 작가에게 없는 거 아닐까요."

"…"

"너무 우울해요. 가난한 모녀의 애잔함이 가슴을 아프게 했어요. 왜 자꾸 예술은 우리를 힘들게 해요? 구체적으로 누군지 알면 후원금이라도 낼 텐데, 이렇게 사람을 후벼 파기만 하죠?"

그때 문자 알림이 왔다.

-현재 부산 지역에 강하고 많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하천 산바카라로, 계곡 등 위험지역에 절대 접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 사람이 각자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양평 살 때요."

내가 말했다.

"용문산 기슭에 살았어요. 마을에서도 가장 먼 골짜기였는데, 어느 날 장군봉이라는 데를 혼자 올라갔어요. 거기 형제약수라는 데가 있는데, 큰 홍수가 나서 마을 사람들이 몇 달씩 피난 갔다가 그 약수를 먹고 버텼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산꼭대기에 약수가 있어요?"

"있더라고요."

"…"

"용문산 근처에 어비산이라는 산도 있습니다. 물고기 어에 날 비."

"…"

"큰물이 지면 물고기가 산을 넘어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에요."

오벨뒤주가 고개를 들었다.

"물고기가 산을 넘어요?"

"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산에 배너미재라는 고개가 있어요. 배가 넘어 다니던 고개라는 뜻이죠."

알렉이 말했다.

"노아의 방주가 생각나네요."

"우리나라 산에 배너미재라는 이름을 단 고개가 여럿입니다."

"…"

"아무 이유 없이 그런 이름이 붙지는 않았을 거예요. 분명 큰 물난리가 있었겠죠."

오벨뒤주가 말했다.

"네팔 이야기가 단순히 남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탄허 스님도 우리나라에 지진이 나서 남동 지역이 흐물거릴 거라고 예언했다잖아요."

알렉이 말했다.

"맞아요. 얼마 전에 일본 고베 지진 때문에 부산 쪽이 흔들렸잖아요. 해수면 상승으로 부산이나 서남해안은 위험하다는 과학적 예측이기도 하고요"

아무도 고쳐주지 않았다.규수인데도.

"영상 보니까 너무 참혹해요. 자연의 폭력에는 어떤 저항도 못 하고요. 일은 선진국이 내고 희생은 후진국이 감당한다는 말이 맞죠."

"그럼 우리가 지금 여기서 숯불로 고기 먹는 것도 이산화탄소 내는 거잖아요."

오벨뒤주가 갑자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네팔 참사의 공범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집에 튜브라도 준비해야 하나."

"닭이나 돼지보다는 소가 문제래요. 목초지하고 메탄이 자동차보다 심하다던데요. 우리는 돼지고기잖아요."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창밖으로 비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고 여자 둘이 들어왔다.

한 사람이 우리 쪽을 보다가 멈췄다. 내가 먼저 알아봤다. 시민극단에서 연습을 구경하며 보았던 추보코프였다. 추보코프는 《청혼》에서 나탈리야의 아버지 이름인데, 극단이 어머니로 각색해 그녀가 나탈리야의 엄마를 연기하고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여기 어떻게."

"친구가 연극 보러 가자고 해서요. 아까 엄마 공연 보셨죠. 뒤에서 봤어요."

"아, 그러셨어요."

그 말을 마치고 두 여자는 주방 가까운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여든 명쯤 들어가는 소극장에서 나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보았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로 내가 추보코프에게 공연되고 있었다는 것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두 번 극단을 찾아가 연습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단원 모두에게 나를 소개하는 시간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그들은 공간을 찾아온 손님을 소개하거나 인사를 시키지 않았다. 어쩌면 극단이 바라는 손님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나이도 많고, 연극을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유월부터 시작된 공연 연습에 연기로는 끼일 틈이 없는 존재였다. 첫날 대표와 이야기하면서 나중에 기술 스태프로라도 끼워준다는 말에 그저 기쁘기만 했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새로운 창작의 영감을 주는 곳이라 토요일이 기다려졌고 그 시간에 즐겁게 매달렸다.

하지만 추보코프는 달랐다.

왜 이런 걸 사 오셨어요, 이제 가방 내려놓으세요, 하고 말을 건넨 사람이 추보코프였다. 《청혼》 대본을 복사해서 내게 건넨 사람도 추보코프였다. 다른 사람들은 연습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녀만은 나를 배려했다. 그걸 모를 바 아니었다.

잠시 뒤 그녀가 우리 쪽으로 옮겨 앉았다.

옆에서 오벨뒤주가 물었다.

"요사이도 극단 나가시나 보네요."

"두 번 갔죠. 안톤 체호프 《곰》이랑 《청혼》을 십이월에 올리려고 연습 중인데, 아직은 그냥 구경만 하는 거예요. 공연 때 스태프 하면서 연극 공부를 좀 하려고요."

"《청혼》은 어떤 작품인가요."

오벨뒤주가 물었다.

"한 남자가 이웃집 여자에게 청혼을 하러 갑니다. 목적이 아주 분명해요. 서른다섯이고, 심장이 별로 안 좋고, 밤에 잠을 못 자고, 더 미루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추보코프는 오벨뒤주의 반응에 맞추어 대본을 낭독하듯 이야기했다.

"그래서요?"

"청혼을 하러 가서 땅 문제로 나탈리야랑 싸웁니다. 목장이 누구 땅이냐. 그다음엔 개 때문에 또 싸워요. 우리 집 개가 좋은 개냐, 너희 집 개가 좋은 개냐."

"개요? 하얀 개인가요?"

당연히 오벨뒤주는 자기 하얀 개를 떠올렸을 것이다.

"결혼은 합니까?"

"그건 모르죠. 싸우다 화해하고 청혼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로 끝나요."

"…"

"그렇게 보면 연극이 좀 시시하긴 하죠.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이겨보려는 사람들의 심리극이에요.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 안 하려는 욱하는 성격들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어떤 역할인가요."

"전 추보코프 역이에요. 나탈리야의 엄마요. 원래는 아버지가 나오는데, 남자 역할 맡을 사람이 없었는지 나이 때문인지."

"…"

"처음에는 나탈리야를 꿈꿨는데요. 제가 안 예뻐서 그랬나, 고민이 많아요."

알렉이 피식 웃었다.

"청혼이라는 목적을 위해 갈등을 뒤로 미루는 사람들이 아니라, 목적을 잊어버리고 감정이 앞서는 자존심 센 남녀 이야기인 거죠. 그런 건 요즘 드라마에 너무 흔해요."

오벨뒤주가 잔을 들다 말았다.

"연극은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대사하고 배우의 호흡을 바로 눈앞에서 느끼는 거잖아요."

"연출은 대게 세심하게 저의 연기를 지적하지만 연기평하고는 다른 거잖아요. 잘하는데 이렇게 해야 돼. 이 말만 십 년 들었어요."

"…"

"저는 궁금해요. 남들이 내 연기를 어떻게 보는지."

오벨뒤주가 나를 봤다. 내가 본 추보코프의 연기평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 같았어요."

내가 말했다.

"네?"

"그냥 날아다니는 새 같더라고요. 대사가 입에 붙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한몸이 돼 있어요."

추보코프가 나를 한참 봤다.

"그거 처음 들어요."

"…"

"진짜로 처음 들어요."

그녀에게는 열다섯 살 아들이 있고, 아들과 함께 대사 연습을 한다고 했다.

"애가 그러더라고요. 엄마는 왜 주인공을 못 해."

"…"

"뭐라고 대답을 못 했어요."

그리고 잔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저 주인공 하고 싶어요."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아들과 같은 나이인 추보코프의 아들이 궁금해졌다. 내 아들은 아빠의 의지를 그토록 증오하는데, 엄마의 연기를 위해 함께 대사를 맞춰준다는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지금이 당신의 마지막 공연이 아니잖아요."

추보코프가 나를 봤다.

"배우도 전략이 있어야죠."

"전략이요?"

"한 번에 되는 로또는 없잖아요. 잘생기지 못하고 돈 없고 부모 덕 없는 사람은 전략이 그들과 달라야 하는 거 아닌가요."

"…"

"분명한 건 우리가 카스트제도 같은 서열과 계급 속에 살고 있다는 겁니다."

"저는 어느 쪽인데요."

"…"

"말씀하세요."

"오래 끌어야 하는 쪽이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내지 않았다.

"주인공이 되는 시간을 곰처럼 기다려야 합니다. 아니면 주인공이 아닌 추보코프 역으로 계속 가능성을 높여가야 하는 거고요."

"곰이요? 얼마나요. 뮤지컬도 하고 연기도 하고 벌써 십 년인데요."

"저는 삼십 년이 넘었는데요."

"…"

"지금도 고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추보코프,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써도 됩니까."

"네?"

"지금 하신 말들이요. 생각이나 연기나, 그 어떤 것들요."

그녀가 물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쓰세요."

"…"

"저는 제 얘기 써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나는 고맙다고 했다.

"대신 제 글도 한번 읽어주세요. 다음에 프린트해서 가져올게요."

"…네."

"진짜요?"

"네."

그녀는 종이에 번호를 적어 내 앞에 놓았다.

알렉이 물었다.

"평소에도 그렇게 에너지 많으세요?"

"아니요."

"…"

"집에만 있어요. 말도 잘 안 해요. 남편은 야구 보러 가고 회식 가고, 저는 집에 있고."

"그럼 무대에서는요?"

"거기서만 대사로 말하고 에너지를 내뿜죠."

연극은 추보코프에게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볼지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가짜 세계이자 제2의 인생일 것이다.

추보코프가 일어나 친구가 있는 자리로 갔다.

한참 뒤에 오벨뒤주가 말했다.

"아까 그 말이요."

"어떤 말이요."

"주인공."

"…"

"그분한테 기다리라고 하셨죠."

"…"

"세상에 주인공이 어디 있어요. 인간은 누구나 한 조각일 뿐이에요 그 조각들이 또 다른 조각을 만나 무늬를 만들 뿐이죠 일개 작품의 주인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다 그때 뿐이죠"

목소리가 컸다. 그날 처음이었다.

"다 주인공이지."

알렉이 오벨뒤주를 쳐다봤다. 오벨뒤주는 물컵을 밀어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잠깐 기다렸다가 말했다.

"문학이나 예술이 주는 나쁜 것 중에 하나가 그겁니다."

"뭐가요."

"주인공 의식이요. 슬롯의 단면을 주인공 서열로 형상화하는 거죠. 성공한 자 중심의 슬롯를 다시 주인공 중심의 서사로 만들어버립니다."

"…"

"카스트는 현실에 있죠. 그건 어쩔 수 없어요. 그런데 작품이, 예술이 하나를 더 만듭니다. 주인공하고 조연. 그걸 아주 어릴 때부터 주입시켜요. 유치원 학예회부터요."

"…"

"솔직해집시다. 주인공은 대사가 더 많아요. 카메라가 더 오래 봐요. 조명이 따라다니고요. 결국 작품 안의 시간을 얼마나 점령하느냐의 크기입니다."

오벨뒤주가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은 평생 어디에서도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건가요."

"…"

"우리 아버지도, 우리 하얀 개도, 그렇게 살다 사라지는 건가요."

알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프지만 주인공은 엄연히 있어요. 하지만 저도 줄곧 그 문명하고 싸워왔어요. 줄이는 겁니다. 나누는 거죠, 주인공을. 대사를 나누고, 클로즈업을 나누고, 마지막 장면을 한 사람한테 안 주고. 그리고 주인공 없음의 축제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 축제를 벌이는 겁니다. 일종의 기도죠."

"…"

"드라마는 현실을 못 바꿔요. 백 편, 수억 편을 찍어도 못 바꿉니다. 그런데 영화 안에서는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어요. 물론 서사 자체가 공동성을 가져야 하고요. 예술과 문화민주주의는 거기서 연결됩니다."

오벨뒤주가 물었다.

"주인공이 한 명도 아니고 몇 명도 아니고, 모두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존재할까요. 그런 드라마가 대중에게 흥미를, 아니 사유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요. 탁월한 작품은 사유와 흥미를 같이 유발하는 거잖아요."

"존재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재난 영화에서는 가능하죠."

알렉이 말했다.

"재난 영화라도 결국 몇 사람만 살아남잖아요."

"…"

"살아남는 사람이 주인공이죠."

"…"

"살아남는 사람이 주인공이라. 그래서 재난 자체가 주인공이거나, 마을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계속 만들어져야 하는 겁니다."

"그런 게 있어요?"

"제가 계속 해온 게 그런 영화예요. 마을의 이야기, 마을의 영화, 그리고 그 영화를 마을의 제단에 바치는 축제."

"…"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지켜가야죠. 빙하 쓰나미로 휩쓸려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떤 작가가 대신 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당사자들이 자기 이야기로 삶을 되돌아보고 희망을 가져보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는 건 비극입니다. 사라진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것이기도 하지만, 더 살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삶을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그게 아쉬운 겁니다."

알렉이 말했다.

"어차피 죽으면 다 없어질 텐데요. 자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생각할 수 없는 까마득한 검은 세상으로 사라질 텐데, 이야기라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그렇긴 하죠."

"…"

"그래도 살아가면서 조금 더 즐겁고 조금 더 숨 쉬고 조금 더 가족과 나누는. 추보코프의 엄마와 아들처럼요. 그것뿐이지요."

"먼저 간 제 딸 생각이 납니다."

오벨뒤주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옆자리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고기 굽는 소리만 들렸다.

근데 이혼은 왜 하셨어요. 묻고 싶었지만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술의 힘을 빌려 그동안 묻고 싶었던 것을 물어보려는데 오벨뒤주가 나를 봤다.

그는 잠시 젓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이제 어떤 말도 할 힘이 없어지네요."

사실 나는 주인공 중심의 세계와 문명을 비판하고 작은 대안을 찾으려 했지만, 나 역시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술은 가장 양이 적으면서 아주 무거운 물이다.

《청혼》에서 추보코프는 짧게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딸 나탈리야와 로모프가 싸우는데 중재하지 못하고 같이 흥분한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는 의미 있는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자기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딸의 결혼이 성사되는 것이 좋고, 로모프라는 상대도 조건이 나쁘지 않다. 그래서 연극 속 추보코프는 멜로 코미디의 조연일 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두 나탈리야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이야기가 바뀐다면 그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남녀의 욱하는 감정을 중재하고 해결하는 이야기라면 그의 역할과 대사는 연애 이야기 밖에서 다른 자리를 가질 수 있다. 배역에도 크기가 있고, 대사에도 분량이 있고, 관객이 기억하는 이름에도 차이가 생긴다.

그래, 이미 내가 오래 고민한 것이기도 했다.

주인공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바꾸면 되는 것 아닐까. 모두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만들자. 그렇게 시작한 나의 여정 아닌가. 나는 현실의 추보코프가 집착하는 것을 오래전에 고민했고 또 해결했다고 오만해했다. 대본에 이미 적혀 있는 추보코프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는 방법을 스스로, 또 함께 찾는 것이다. 그래야 되는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는 나다소극장에서 나는 나다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모두 《청혼》의 추보코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청혼이라는 목적보다 욱해서 감정에 휩쓸리는 두 젊은 남녀 같은 현실의 싸움과 소란 속에서, 그래도 소박하고 순하고 대사 없고 역할 작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서사를 이끌어가야만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물로 떠내려가기 전까지는. (수정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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