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시킨이다

by신지승

이현정작가의 작업은 구체성의 예술이다. 작가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그리고 작가 자신의 기억과 기록이다. 나의 작업과 비교해 본다면 나는 구체성을 상실하고 있다. 물론 얼굴, 말의 구체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나는 웃음의 예술이다라고 말한다. 웃음이야말로 찰나의 시간이지만 나는 그 찰나의 표정을 앞 세운다. 이현정 작가는 그들이 존재함으로 써 작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작업이다. '나의 가족은 고통했다 고로 내가 존재한다 '


"그러네요. 유모 아리나를 러시아 문학의 할머니로 불리는 게 당연한 건데 푸쉬킨만을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러시아문학의 구원자로 더 높이고 있네요 러시아의 언어 속에 숨겨진 민요나 이야기를 푸쉬킨에게 들려준 유모 아리나의 헌신은 러시아 문학사에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

"그렇죠 말이나 글이라는 물질적 흔적을 통해 우리가 존재를 대우한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편견이나 차별이 될 수 있죠 "

" 지금 우리에게는 인류의 집단 지성을 올바르게 볼 여유를 가지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우리의 우울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들의 위대한 작품 보다 오히려 그들의 작품 뒤에 숨은 인간의 우울 혹은 추한 모습을 통해 구원을 받을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


"제가 아는 작가분이 있는데 지금 전시를 하고 있어요 같이 함 가실래요 그분은 자신을 알기 위해 할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머니 가족의 시간을 구체성으로 접근하고 예술적으로 형상화 한 작품을 전시 중이에요 "

"어디인데요" 오벨이 물었다.

"홍티아트센터라고요"

"홍티? 처음 듣는 말이에요"

"붉은 언덕. 홍티포구가 있던 지역은 해 질 무렵이면 서쪽 하늘과 강물 전체가 붉은빛으로 물들 무지갯빛 노을이 지는 마을이 있었다네요' 신평·장림일반산업단지를 무지개 공단이라고도 한다네요 "알렉이 핸드폰으로 찾아 알려준다.

나와 오벨, 알렉은 전철을 타고 홍티아트센터로 향했다.

"제가 퀴즈 하나 낼까요?"

"어떤 퀴즈?"가 말했다.

"아내를 의심하고 그 결혼한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하는 남자와 한판 뜨는 사람의 이야기인데요"

순간 오벨이 나를 향해 불쾌한 표정을 보였다. 순간 나는 당혹했다.

"제 이야기하는 건가요?"라며 웃음을 가득 머금고 묻는다. 오벨은 다행히 그 이야기를 자신과 겹치는 것이 예민한 것임을 알아차렸을까? 옆에 있던 알렉은 한 술 더 떠 오벨에게 묻는다.

" 이형 그 남자와 한 판 뜨셨습니까?"

" 예 "

오벨은 말했다 "그 싸움에서는 누가 이겼나요? "

"아직 퀴즈를 시작도 안 했는데요."

그런 일은 나에게도 대학 때 있었던 일이다.

"아주 못생긴 남자가 있었어요 " 나는 괜히 퀴즈를 낸다고 했다는 후회가 몰아쳤지만 또 여기서 그만둔다면 좀 머쓱해질게 뻔해서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볼품없는 오리새끼로 불리던 못생긴 남자가 그 나라에서 최고의 미인에게 구혼을 합니다.

여자 집에서는 거절을 하지만 몇 번이고 구혼을 거듭하다가 "

나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살짝 식은땀을 흘리며 다음 말을 이어갔다

" 여자는 16살"

"우리 딸 나이인데 " 오벨은 아예 그 이야기와 자신을 연결 지어 자신의 이야기로 듣고 있었다.

마른침을 한번 삼키며 나는 퀴즈를 이어갔다

" 결국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미인 아내를 향한 추파를 던지는 이들이 너무 많았는데 그중에 24살 젊은 군인장교가 제일 치근거렸죠. 모욕을 느낀 남자는 그 장교에게 사생결단의 한판을 제안하죠"

"누가 이겼나요?" 다시 한번 오벨이 물었다.

"군인 장교가 이겼고요 그 자리에서 죽어요 겨우 결혼 한지 6년 만에 "

"그 여자는 그 장교와 재혼했나요? "

"아니요. 그 장교는 그 아내의 언니랑 결혼합니다 결국 38살의 젊은 나이에 죽게 되죠 함께 싸운 이는 그 사건으로 추방 당해 무려 80살까지 정치인으로 승승 장구하며 살다 죽었죠. 근데 이 못생긴 사람이 죽고 100년 뒤 그 남자를 위한 오벨리스크를 세우죠. 그 죽은 그 자리예요 "

"누구예요? 그 죽은 사람 유명한 사람 같은데요?"

알렉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푸쉬킨입니다 "나는 말했다. "

"당신 같으면 누구의 생을 살고 싶나요? "

"역사는 예술가의 편이군요 " 오벨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질문을 던진 채, 우리는 마침내 (생애 처음 부산에 머물게 된 작가가 오랜 세월 집안을 눌러온 침묵과 상처의 실체를 추적하며 완성한 공간인) 산단 입구의 홍티아트센터 전시장에 다다랐다.

알렉과 오벨, 그리고 나는 이현정 작가의 전시장에서 각자 자신에 맞는 이끌림을 찾아 정글을 헤매듯 발걸음을 옮겼다. 오벨은 전시장 입구 통로에 놓인 유리 아카이브 테이블 안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49년 10월 안동 보도연맹 사건으로 끌려간 이 작가 할아버지의 국가진실화해위원회 발간 바카라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1949년 ‘예비검속’ 사건으로 군경에 의해 희생된 할아버지, 부산 ‘문현동 소년기술원’에서 남동생(1975년생)이 겪은 인권 유린의 기억이 그곳에 있었다.

알렉은 거대한 창고 전시관의 벽면을 채운 9살 이현정 작가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서는 이현정 작가의 내레이션이 고요히 흘러나왔다. "나는 자랑스러워지고 싶다. 부모에게도 동생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다. 나는 이 사진 앞에서 다시 말한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내 가족이 피해자라고. 내가 피해자라고." 사진 속 아홉 살 이현정은 그 말을 알지 못한 채 한쪽 팔을 들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전국 웅변대회에서 ‘이승복 어린이’ 연설을 했던 아이는 어른이 되면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만나게 되는 아이러니한 9분 동안 이어지는 내레이션을 알렉은 앉아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어두운 회색 빛 바닥 위로, 하얀 제단 같은 하얀 상자들이 고요히 떠 있다.. '이 씨 표류기' 할아버지의 바카라 아버지의 바카라 1975년생 남동생 바카라들은 수백 겹의 거즈에 직접 손바느질을 해 제본한 바카라이었다 작가는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 물이 흘러내리듯 고통과 슬픔이 세대를 넘어 아래로 흡수되며 계속 이어지는 모습을 표현했죠. 그 축적된 고통 자체가 하나의 물질인 셈입니다.”

전시명 ‘물:집’은 흘러넘치고 쌓이는 ‘물’의 속성이자, 쉼 없는 마찰과 압력으로 피부에 생겨 건드리지도 터뜨리지도 못하는 아픈 상처인 ‘물집’을 중의적으로 뜻한다. 작가는 언어를 차단당한 채 슬롯적 외곽으로 밀려나야 했던 가족의 삶을 온전히 끌어안는다. 이현정 작가의 작업도 비슷한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역사바카라의 주인공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죠."


알렉이 나에게로 다가와 말했다

"우리가 전철 안에서 이야기했던 푸쉬킨과 어떤 묘한 연관성이 있는 것 같네요 "

푸시킨이 민중의 구전과 언어를 자신의 문학으로 가져왔다면, 이현정은 가족에게 남은 기억과 상처를 예술의 물질로 가져오는 것이다.

작가는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폭력의 인과관계를 이해하며 비로소 평생 억울함을 들어줄 사람 없이 쓸쓸히 생을 마감했을 아버지를 연민하고 손을 잡아드리고 싶어 했던 그 화해의 시선처럼, 타인의 고통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했다.

오벨은 멀리 흰색 벽에 걸쳐 있는 네 개의 헤드폰 그 옆에 서서 이 작가 가족과의 대화를 혼자 듣고 있었다.

이전 오벨의 모습과는 어딘가 다른 집중이 서려 있었다.


"그러네요. 푸쉬킨을 만든 것이 유모 아리나의 민요였듯, 이현정 작가를 만든 유모는 바로 가족들이었어요." 오벨이 낮고 묵직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현정 작가의 이 작품은 과연 미래의 어느 푸쉬킨을 향하고 있을까요?"

위대한 역사나 예술의 본질이란 결국 그 이름 불리지 않았던 수많은 평범한 이들의 체온과 눈물 위에 쌓아 올린 돌탑 같은 것이 아니던가. 거대한 영웅의 이름 뒤에 가려진 존재들을 향한 묵직한 질문이 전시장 공기를 가득 채운다.


이현정 작가와의 첫 만남이었던 3년 전 문래창작촌 이포에서의 기억이 문득 스친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2023년 문래창작촌 이포에서였다. 나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이란 감독 세 사람과 함께 이포 스튜디오에서 이란-한국 공동 제작 프로젝트 설명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 자리에 이현정 작가가 있었다. "혹시 제 얼굴 하나 그려줄 수 있을지요." 첫 만남에 다짜고짜 나의 얼굴을 그려달라는 그날의 무례한 부탁을 흔쾌히 싫은 내색하지 않고 그려주던 작가였다. 오랫동안 그 장면을 지울 수 없었다. 어떤 내공의 작가일까? 작가는 불쾌한 표정 하나 없이 한 번을 그리다 말고 다시 그렸다. 이현정 작가가 그린 방수천 위 나의 얼굴을 내 차의 찌그러진 부위에 붙이고 다녔다. 수많은 마을을 다니며 사람들의 얼굴과 웃음을 드라마화했던 나이지만 나의 얼굴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아마 나와 함께 영화를 만들었던 이들의 기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현정 작가의 가족들이 아리나 유모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작가는 "가장 가까운 가족의 아픔조차 함부로 가져다 쓸 수 없었어요. 피하고 싶었던 아킬레스건이었지만, 이젠 세대를 거쳐 흘러내린 그 쓰라린 기록을 어루만지고 싶습니다"라고 했지만


(푸쉬킨의 시가 유모의 입에서 흘러나온 민요에서 비롯되었듯, 우리가 기억하는 삶과 예술은 결국 이토록 아프고 구체적인 타인의 삶에 빚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자신의 아버지 자서전을 만들고 싶다며 대신 구술을 받아 달라던 오벨은 어느 순간부터 스마트폰으로 연신 전시장의 전시물을 이리저리 촬영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는 듯했다.

(중략- 전시장 안에서의 수많은 이야기는 하루 글쓰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천천히 추가수정 할 예정입니다 )

우리는 마을버스를 타고 다대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수정 중 )

https://v.daum.net/v/2026082409382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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