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톤 체호프다

by신지승

그날은 나에게 너무 많은 걸 안긴 날이었다. 그날은 바로 알렉과 내가 오벨을 따라 편의점 앞에 서 있었던 바로 그날이다.

그날 이후 4일 뒤 나는 어느 극단의 연기 연습장에 앉아 있었다. 전문 배우들의 극단이 아니라 낮에는 일하고 토요일에 만나 공연 연습을 하는 시민배우들의 극단이었다. 신기하게도 안톤 체호프의 〈곰〉이었다. 물론 이 우연은 로또처럼 다가왔다. ‘신의 섭리’가 아니라 ‘문화의 섭리’인 셈이다. 오래전부터 내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에는 연극과 가까워지는 게 있었다. 어느 날 당근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연극’이라는 모임을 보았다. 매주 토요일 연습을 하고 있으니 부담 없이 찾아와도 된다는 글이었다. 나는 신청 버튼을 눌렀고, 토요일 오후 그 극단으로 향했다.

연기를 연습하는 사람들 사이에 불쑥 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어색한지 나도 알고 있었다. 이미 만들어진 관계와 리듬 속에 낯선 사람이 들어간다는 것은 서로에게 불편한 일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렇게 문턱을 낮추어 놓았을까. 누군가에게는 그저 시민극단의 홍보 문구였겠지만, 나에게는 이상하게 오래 남는 질문이었다.

내가 아는 연극 연출가가 한 사람 있다. 한 번쯤 그의 연습장에 초대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2년 동안 나를 연습장에 초대하지 않았다. 대신 몇 차례 공연 초대장을 보내왔다.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나와 어떤 사적인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시간이 지나도 어떤 개인적인 진화가 없는 관계에 대해서는 이제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공연 자체보다 공연이 만들어지기 전의 시간이 궁금했다. 배우들이 처음 대본을 읽는 순간, 연출가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한 장면이 몇 번이고 무너졌다가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 아직 작품이라고 부르기 전의 그 태아의 시간이 나에겐 필요한 경험이었다. 그걸 공개한다니 난 그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자신과 과정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오래전 광화문 근처의 한 전시장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전시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한 적이 있다. 나는 기꺼이 돈을 받지 않고 그의 작업 과정을 3일 밤낮으로 같이 생활했다. 그런데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나에게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도, 수고한다는 말도 없었다. 어쩌면 자신은 나와 다른 일을 하는 예술가라는 껍데기가 너무 단단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그 다큐멘터리의 촬영본을 건네지 않았다. 몇 년 뒤 그의 조수였던 작가가 다시 그 영상을 요구했지만, 나는 주지 않았다.

직접 그 작가가 전화를 걸든지 왔다면 주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


그때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예술가의 작품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난 그때 그 예술가의 인간성을 보고 내 작업의 가치를 그렇게 사용하는 것에 대해 모욕감을 느꼈었다. 예술가는 스스로를 권위로 치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나의 바람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요양병원에 갈 때마다 들고 가던 비타민 음료 한 통 사서 들고 갔다. 연습이 시작되는 1시보다 일찍 도착했다. 연습 중간에 들어가면 서로 어색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참여신청자가 나 혼자였기에 그들은 금방 알아보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뭘 이런 걸 사 오셨어요?” 시간이 지나도 어색해하는 나에게 누군가가 말했다. “메고 있는 가방 여기 놓으세요.” 그때까지 가방을 메고 있는지 몰랐다. “이미 가방과 한 몸이라서요.”

나는 한동안 그들이 배우인지, 스태프인지, 혹시 나처럼 구경하러 온 사람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30평이 채 되지 않는 널찍한 공간 한쪽 바카라상에는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반대편에는 5단 바카라장과 소파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들의 바카라상 위에는 프린트된 대본들이 놓여 있었다.

“어떤 작품이에요?” 대본에서 제목을 보았다. 〈청혼〉. 안톤 체호프였다. “그런데 두 작품을 해요. 〈곰〉하고 〈청혼〉이에요.” “청혼은 들어봤는데…” 〈곰〉은 낯설었다.

잠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내가 찾아온 곳에서, 바로 안톤 체호프를 만나다니. 너무 정확한 우연은 오히려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내가 순서를 잘못 기억하고 있는 루프 영화처럼, 이미 한 번 지나온 장면을 다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새벽의 이야기가 바로 안톤 체호프였기 때문이다. 나는 며칠 전부터 체호프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오벨뒤주와 알렉과 함께 있었던 일 때문에 체호프를 더 깊이 바라보게 되었다.

그날 새벽 알렉과 오벨, 나, 톨스, 우리는 편의점 앞에 있었다.

유리창 안의 오벨뒤주는 편의점 점원과 한참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이유는 사소했다. 계산을 하려던 그에게 점원이 직접 QR코드를 찍고 계산하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옆에 GS에는 무인계산대가 두 대나 있는데, 여기는 작은 편의점이잖아요. 손님이 직접 QR을 찍고 나가라는 게 어디 있어요.” 그는 화가 나 있었다.

나는 순간 아들을 생각했다. 게임을 하고 있는 아들은 나의 말 한마디도 듣기를 원하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하는 것 자체가 귀찮아지고, 다른 음식은 먹지 않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지치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 그때 나는 오벨뒤주의 분노를 단순히 편의점의 작은 갈등으로만 볼 수 없었다.

알렉과 나는 오벨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벨이 말했다. “사실 저도 중학교 때부터 구멍가게 일을 했어요.”

아버지가 빚 때문에 집을 비운 동안 그는 신문 배달을 했다. 아버지가 돌아온 뒤 동네에 작은 가게를 열었고, 늦은 밤에는 자신이 가게를 지켰다고 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다. 어린 그는 가게 문을 잠그고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소년가장 같은 거였죠.” 나는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오벨의 아버지는 술을 좋아했다. 생선가게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아버지에게서는 생선 비린내와 술 냄새가 났다고 했다. 어머니도 옷수선집을 했지만 형편이 좋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생존을 배워야 했던 오벨 아이가 어른이 된 뒤에도 삶을 쉽게 놓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오벨은 말했다. “왜 이렇게 나는 운이 없죠.” 우리는 한동안 침묵했다. “40억이었는데.” “왜 안 사신 거예요?” 나는 그가 로또를 사지 않았다고 믿고 물었다. “그날 가르쳐 준 대로만 했었어도…”

병원에서 오벨 아버지가 혀를 깨물었다고 했다. 피가 시트에 흘렀고, 간호사들이 달려와 팔과 다리를 묶었다고 했다. 자신이 병원에 가보니 아버지는 그렇게 누워 있었다고 했다. “참, 어찌 이렇게 내 인생을 그렇게 막을 수가 있나요.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세상의 우연이 필연이나 섭리, 운명 같아 보이는 날들이 어디 하루 이틀이던가?

알렉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알렉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그가 바라보는 곳을 보았다. 목욕탕 굴뚝이 도로에 반사되는 불빛 위로 우뚝 서 있었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알렉이 말했다. “운이 비껴간 것이 아니라, 운이 아주 가까이 와 있는 겁니다. 지나가 버린 게 아니라요. 로또가 우리의 운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가까이 떠돌고 있는 천운을 빨리 잡아야 됩니다.”

아, 이렇게 불운 가득한 분위기를 저런 해석을 통해 위안과 희망을 다시 안기려는 알렉의 눈빛을 나는 다시 바라보았다. 과연 알렉의 그 말이 오벨에게 위로가 될까. 다시 나는 오벨의 눈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순간 오벨뒤주가 뭔가를 손을 휘저으며 이야기하다가 마시던 음료수 통을 떨어뜨렸다. 때마침 뛰어가던 여학생의 신발 앞에 떨어졌다. 여학생은 뛰어오던 관성을 무시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 버렸다. 덩달아 우리 모두도 숨이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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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 집행위원장 -생활인과 공동창작 ,탈상업적 상상력의 대중창작시대 돌로 영화만들기 저자.현재 5060영화제작단 ,부산국제마을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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