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벨 뒤주를 만나던 로또방을 찾아갔다.
‘1등 당첨 3번’이라고 붙어 있던 현수막 위에 숫자 하나가 덧붙어 있었다.
‘4.’
이번에도 1등 당첨자가 나왔다는 뜻이었다.
“목욕탕 집, 그분 일주일 동안 보이지 않았어요. 오면 항상 저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지요.”
로또방과 작은 마트를 함께 하는 여자가 말했다.
“자동으로는 하지 않는 사람이잖아요.”
나는 순간 며칠 전 당첨된 로또 번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7, 10, 11, 24, 27, 32
“여보! 이번에 당첨된 사람이 그 사람일까요?”
여자는 옆에 있던 남편에게 물었다.
“그걸 알려면 며칠 기다리면 돼. 영원히 다시는 우리 가게에 오지 않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일 테지.”
“우리 집에서 3번 당첨됐잖아요. 대강 누군지는 알 수 있지만 누군지는 우리도 몰라요. 그 뒤 안 오면 좁은 동네니까 소문도 나고, 그래야 아는 거지.”
“이전 한 사람은 공무원이었는데, 당첨된 후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 가버렸다고 하던데.”
나는 당첨된 번호를 곰곰이 바라보았다.
오벨뒤주를 찾아 높은 목욕탕 굴뚝, 그 오래된 오벨리스크를 이정표 삼아 골목으로 들어갔다.
굴뚝은 가까이서 보니 삼층 건물에서부터 솟아 있었다. 좀 어울리지 않는 상상이지만 거북이 몸에서 비석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오래된 철제 대문 옆으로 담벼락을 따라 쇠창살이 이어져 있었다. 꽃 모양인지 소용돌이 모양인지 알 수 없는 문양이었다. 자세히 보니 어딘가 그리스의 문양을 닮아 있었다.
어쩌면 우리의 감정도 오래전 그리스에서 건너온 문양 같은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 전, 나는 오벨뒤주와 함께 하얀 개를 찾으러 금정산으로 왔었다. 그때 금정산을 잘 안다는 ‘우울한 사람들의 아침 식사’ 모임의 방장 알렉산더가 동행했다.
알렉산더는 이번에도 모자와 마스크만 했을 뿐 안경은 쓰지 않았다.
물론 나는 이번에는 모자도 마스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세 명이 금정산을 걸었다. 동문에서 시작해 남문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벗어나 작은 소로까지 살폈지만 개떼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빨간 망개 열매를 보았다. 이전 망개나무라고 착각한 적도 있었던
“낮에는 잘 볼 수 없어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개들도 처음과 다르게 익숙해지면 점차 사람을 경계하고 나타나지 않아요. 배고플 때는 인근 금정산성 마을에서 보일 때도 있다고 하던데, 차라리 저녁때쯤 산성마을에 한번 가보지요.”
“그래도 본 사람들이 있다 하니 북문에서 범어사까지는 한번 가보고 싶은데요.”
“그럽시다. 그럼.”
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조금만 벗어나도 멧돼지의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개 하고 멧돼지 하고 싸우면?”
“서로 피하겠지요. 서로 이길 승산이 없다는 걸 잘 아니까요. 멧돼지는 눈이 어두워도 귀는 예민하고 개는 눈도 밝고 소리에도 민감하고. 서로 부딪힐 일이 없을 거예요. 부딪히면 개는 멧돼지에겐 상대가 안 되죠.”
나는 걷다가 문득 물었다.
“근데 왜 하필 닉네임이 알렉산더예요?”
“닉네임이 우울증과는 전혀 거리가 멀 것 같아요.”
알렉이 잠시 웃었다.
“이 작은 변방에까지 영향을 미친 , 미친 정복자죠. 저는 알렉산더가 열흘 동안 앓다가 전장에서 죽은 이유를 알고 싶었어요. 정확한 병명이 무엇이었느냐보다, 그렇게 거대한 세계를 손에 넣은 사람이 마지막 열흘 동안 무엇을 보았을까, 그때 그의 깊은 우울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게 궁금했어요.”
알렉산더가 바빌론 원정의 막바지, 고열에 시달리며 생을 마감한 열흘은 거대한 정복 뒤에 찾아오는 실존적 허무를 생각하게 했다. 어떤 학자는 그는 단지 몸은 마비되었을 뿐 아주 가녀린 숨은 쉬고 있었기에 일주일 동안 시체가 썩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단다. 그 기분은 어떨까? 자신의 정신을 말짱한데 귀는 열려 있는 멧돼지인데 눈은 보이지 않는 그 정복자의 마음이 얼마나 우울했을까?
평생을 분신처럼 의지했던 연인이자 전우 헤파이스티온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알렉산더는 자신이 평생 쫓아온 아킬레우스의 신화도, 세계를 뒤흔든 제국의 위상도 자신을 지탱해주지 못하는 순간을 맞았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부재 앞에서 그를 지탱하던 신화와 주술은 갑자기 한 줌의 의미도 갖지 못했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알렉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전 역사를 권력이 대중들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한 수준 낮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교과서나 드라마는 더욱 그렇죠 ”
오벨뒤주와 나는 동시에 알렉을 바라보았다.
“역사는 열등감과 우울증에 걸린 소수의 인간들이 멧돼지들이 들쑤셔놓은 저 흔적들처럼 흉한 낙서를 한 것이지요. 아까 사도세자나 오벨리스크 이야기도 하셨는데요. 사실 사도세자도 단순히 권위적인 아버지와 심약한 아들의 갈등만으로만 본다면 그야말로 난센스이지요.”
알렉은 잠시 멈추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