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법과 연설의 시대는 갔어요. 정치적 민중의 시대는 가고 창작적 민중이 나타날 것이요, 그것이 세계를 살리고 개인과 대중의 화엄 같은 시대를 열어 갈 것이오. 물론 희생당하고 이름 없이 스러져가는 존재는 어쩔 수 없어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건 당신의 착각이요. 이미 창작하는 개인은 대중화되엇어요 단지 당신이 바라는 건 밑변의 창작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
"창작하는 대중이 아니라 글로벌 플랫폼의 기획에 복무히는 개인적 차원의 창작일 뿐이지요"
나는 단두대를 바라보았다. 상송은 나를 단두대 앞으로 끌고 갔다. 저항할 수 없도록 몸을 붙잡고 정해진 자리에 눕혔다. 나무로 된 판 위에 몸이 놓였다. 그리고 목 아래에 반원형의 틀, 루네트가 놓였다. 이어 위쪽 틀이 내려왔다. 내 목은 그 두 개의 나무 틀 사이에 고정되었다.
“왜 여기 있는지 아시오?”
나는 상송을 바라보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의 혁명 때문이라고 생각하시오?”
나는 대답 대신 광장을 바라보았다.
오벨뒤주가 서 있었다 .그 옆에는 그의 아버지도 서 있었다. 검은 개 한마리가 광장을 배회하고 있다.
“민중이란 ‘정치적 영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아주 일시적인 격변기의 유령일 뿐이요. 그리고 그 실존은 역사의 바닥에 가라앉아 존재하는, 빙산 아래 거대한 본체이기도 하고요.”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우울증 자조 모임에서 '상송'이라는 닉네임을 쓰던 여자가 있었다. 왜 하필 프랑스 혁명기의 사형 집행인 이름을 품고 있는지 의아했다. 그녀는 사카모토 신이치의 만화 《이노센트》를 보았다고 했다. 만화 속에서 단두대의 집행인 샤를 앙리의 여동생 마리 조제프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은밀한 동성을 나누는 인물로 그려진다. 계급의 보이지 않는 오만은 둘을 방해했다. 혁명의 폭풍 속에서 왕비가 처형될 때, 조제프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형을 직접 집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마리 앙투아네트가 마지막 단두대에 올라가면서 그녀의 발등을 밟았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는 오만함으로, 조제프는 그 엇갈린 애증 속에서 서로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고 했다. '우울한 이들의 아침 식사'의 그녀는 자신도 그런 모멸을 당한 적이 있어 만화의 그 장면이 깊이 각인되어 닉네임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환영에 사로잡힌다. 정치적 민중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오직 개인이 아니라 '창작하는 집단적 존재'로서의 발견은 나로 하여금 80년대의 뒤주 속에서 빠져나왔다고 생각하게 했다. 그런데 다시 어두운 동굴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다. 방학 동안 딸아이가 한 번 찾아오고, 나는 최소한의 생필품을 구하러 가는 일 외에는 줄곧 동굴 속에서 살았다. 나는 동굴인지 뒤주인지 교수대인지 혼란에 사로잡혔다. 아들은 방학을 하고 난 뒤 낮과 밤이 뒤바뀐 세상에서 살았고, 덕분에 나는 아침과 낮을 고스란히 '생각'만 하고 살 수 있었다. 먹을 것 고민 없이 생각만 할 수 있었던 시간이 내 인생에서 그렇게 길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 행복하기도 했다.
환영 속에서 샤를 앙리 상송이 다가온다. 만화 속 인물인지, 영화 속 인물인지, 조선 시대 망나리인지 그냥 뿌옇게 보인다. 왜 하필 지금 그가 내게 오는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에서 마지막을 기다리기만 하는 어머니, 아버지의 다가오는 죽음,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를 짓누르는 공포—내 삶의 시간을 가치 있게 쓰지 못하고 말았다는 상실감과 박탈감.
아들의 시간은 망나니처럼 나의 목을 죄어온다. 나의 얼굴에 회칠을 하고 나의 얼굴에 물을 뿜는다. 술 냄새 섞인 망나리의 물은 내 얼굴을 적신다. '막낳이'. 정성을 들이지 않고 거칠게 무명을 짜듯, 부모가 자식을 제대로 길들이거나 교육하지 않아 말과 행동이 몹시 막되고 짓궂게 자란 사람을 비유하던 말이란다.
1학년 그 선생에 대한 욕설과 선생님으로부터 뺨을 맞은 사건 이후 아들은 점점 거칠어져 갔다. 아니면 외계인이 들어와 내 선량한 이전의 아이를 납치해 갔는가도 생각했다. 적어도 2학년 1학기 때까지는 오후 8시에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았다. 그런데 결국 어느 시간 핸드폰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아이가 되었고, 나는 더 이상 핸드폰과 게임, 인터넷 전용선에 대항하지 못한 채 그 실존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렬한 자본의 서사가 주는 세상의 구조를 직관적으로 파악당한 수많은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압도당해서 자기의 서사를 잃어버린, '눈 먼 자들의 도시'가 되어 버린 탓이라고 울부짖지만, 그들은 점점 오디세우스가 아니라 거대한 폴리페포스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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