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벨뒤주와 나는 내가 하얀 개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부산대 앞 사거리에 서 있었다.
나는 사거리 네 방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벨뒤주는 길가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여기서 저 방향으로 가는 걸 마지막으로 보았어요.”
하얀 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개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하얀 개를 찾으려 할까. 누군가 보았을 것이고, 그 기억을 하나씩 이어 붙이면 개가 간 길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벨뒤주는 나를 따라왔지만, 나의 적극적인 움직임과는 분명 달랐다. 내가 가자고 하면 가고, 멈추면 멈췄다. 가끔 담배를 피우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24시 편의점 사장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 방향으로 갔어요.”
오래전 휴가 중이던 강원도에서 잃어버린 개를 찾아 무려 30일간 사람들에게 묻고 다니며 결국 찾은 적이 있다. 사람들의 기억을 조각조각 맞추던 그 시간이 무언가를 찾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주었다. 그 30일간의 기록은 영화가 되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등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그 넓은 강릉에서도 찾았는데, 어쩌면 사람의 밀도와 감시가 더 높은 이 도시 한복판에서 하얀 개 한 마리 찾는 것쯤은 시간과 발품을 팔면 나에게는 가능하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증명하고 싶은 것인지 몰랐다.
다행히 금정구 유기견센터에서는 최근 한 달간 대형견 신고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오벨뒤주에게 연락해서 직접 찾아다니기로 했던 것이다.
“목줄 없는 하얀 대형견 보신 적 없나요?”
나는 부지런히 묻고 수소문하는 ‘적극적인 추적자’였지만, 오벨뒤주는 그저 터덜터덜 내 뒤를 따를 뿐이었다. 그는 개를 찾으러 나온 사람의 절박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어딘가 싱겁고 소극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동동이를 찾을 수 있겠어요?”
내가 채근하자, 그는 걸음을 멈추고 멀리 금정산 자락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이층 계단에 빨래를 널어 쳐 둔,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경계선도 넘지 않고 놀아주지도 못하는 그 따분한 시간을 하루 두 번의 먹이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버티더군요. 그게 오히려 저를 괴롭혔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요양병원의 아버지와 다름없어 보여서…… 사실 대문 빗장을 잠그지 않았어요.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지요. 바람이 불어 대문이 조금 열렸을 겁니다.”
오벨뒤주의 그 나지막한 고백은 내 발걸음을 쿵 하고 멈춰 세웠다.
그렇다. 그는 처음부터 그 개를 다시 ‘잡으러’ 나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혹시 하며 짐작은 하고 있었다. 마지못해 나를 따라오고는 있었지만, 내가 듣고 싶었던 솔직한 고백이었다.
오벨뒤주는 하얀 개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더불어 자기에게도.
나는 문득 내 아들을 생각했다. 아이 역시 시골에서 자랐다. 호박벌을 잡고,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개울에서 물고기를 건지며 자란 아이였다.
그런데 언젠가 학교로부터 부모 동행하에 학교폭력위원회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선생님에게 욕을 했다는 이유였다.
아이의 입장은 달랐다. 컴퓨터 정보 과목을 가르치러 오는 외부 기간제 교사의 입에서 늘 담배 냄새가 역겹게 풍겼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 냄새를 놀렸고, 아들은 쉬는 시간에 친구들에게 말했다.
“아, 그놈 냄새 때문에 미치겠다. 고추를 그냥 잘라버릴까 보다.”
농담 섞인 투덜거림이었다. 멀리서 그 소리를 들은 다른 학생이 내 아들을 고발했다.
하지만 교사가 없는 공간에서 아이들끼리 나눈 것을 두고 징계를 논하는 것은 어딘가 이상했다. 성적인 비하나 모독으로 포장하기에는 그저 사춘기 아이들의 유치한 투덜거림에 불과했다고 생각했다.
법정 같았던 그 자리에서, 이제 중학교 1학년 아이의 아버지로서 교사를 향해 그런 거친 표현을 쓴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제까지 거친 표현을 하지 않았던 아이이니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학부모회장은 부모가 보는 아이들과는 다를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굳이 그런 이야기를 아들이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다는 양식에 속으로는 부글거렸다.
교감은 더 보탰다.
“이 결과를 당사자 선생님에게 알려도 되겠지요?” 이 사람이 선생이 맞나 싶었다.
“어차피 선생이 없는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고 그 사실을 모른다면 , 굳이 상처받을 이야기를 당사자에게 알릴 필요가 있을까요?”
결국 아들은 집에서 한 시간, 오고 가는 데 두 시간이 걸리는 외부 성폭력 연구소에서 세 차례의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때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떠올랐고, 조지 오웰의 《1984》가 겹쳐졌다.
학교폭력위원회도 마찬가지였다. 사춘기 남자아이들이 언제나 정제되고 긍정적인 화법으로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그것을 학교 선생과의 대화를 통해 자근 자근한 대화로 풀 수 없는 것인가? 외부 상담의 전문기관이 가지는 온기 없는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변화를 아이에게 줄 수 있을까 고민되긴 했다. 결국 나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나의 학창 시절과는 너무 큰 차이가 있는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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