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프카다

by신지승

그 남자 오벨뒤주는 로또방구석에 앉아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 옆에 앉았다. 흘낏 나를 보더니 외면하는 듯 고개를 다시 로또 종이로 돌렸다. 아무 말 없이 몇 분이 흘렀다. 내가 먼저 운을 떼었다. “가까운 동네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만나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오벨뒤주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다시 말했다. “미안합니다.” 나도 왜 미안한지 몰랐지만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것은 카프카의 「단식 광대」 주인공이 죽기 전에 했던 말이었다. 아니다. 실제로 예민하고 억압된 삶을 살았던 죄의식을 내면화한 카프카가 죽기 전 자신의 인생을 두고 남길 수밖에 없었던 말인지도 모른다.

오벨뒤주는 고개를 돌려 나의 동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벽을 향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둘 사이에는 많은 말이 오고 가야 했다. 그런데 ‘미안합니다’라는 말과 한숨 하나로 무언가가 이어진 느낌이 들었다. “버럭 화를 내신 것, 인정하시는 건가요?” 약간 이해되지 않아 나는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벨뒤주는 나에게 야망이라고 했다. 나를 또 다른 로마를 꿈꾸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것이 나의 감정을 상하게 했고, 나는 침묵했을 뿐이다. 화를 낸 것도 아닌데 오벨뒤주는 그것을 ‘버럭’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꿈꾸는 야망이 아니라 행위하고 혁명하는 사람이며, 로마를 꿈꾸는 게 아니라 작은 로마를 세계 곳곳에 만들어가려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도 할 말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말을 아껴야 했다. 실어증이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다 하다가는 이 자리가 이어질 수 없다.

그런데 그건 맞을지도 모른다. 화를 내지도, 표현하지도 않았지만 오벨뒤주는 나의 감정을 읽고 있었다. 오벨뒤주는 내 눈을 다시 한번 짧게 보더니 말했다. “저의 아버지는 순간순간 감정이 달라졌어요. 순간 화를 내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면서 이야기를 걸어왔지요. 상대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아, 오벨뒤주는 나의 표면이 아니라 내면에 드러나지 않는 감정을 읽고 있었구나. 그때 비로소 오벨뒤주의 예민한 감각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미안할 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관계에서 필요한 말과 대화는 얼마나 많은 양이 개입되어야 하는 것일까. 가족이라면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시간의 힘, 관계의 바탕으로 묻어둘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 아닌 다음에야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말로 크레바스처럼 벌어진 관계를 메울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요양병원에서 겪은 일을 오벨뒤주에게 솔직히 말했다. “아버님이 실어증 증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어 외에는 말을 이어갈 수 없는 상태입니다.” 오벨뒤주는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 나의 동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요양병원에서 대화가 없으니 병원 간호사들도 잘 몰랐다. 며칠 전 수간호사에게 물어보아도 내가 본 것이 맞다고 했다. “실어증.” 그 한마디를 내뱉고 오벨뒤주는 오래전 로또 당첨 번호가 적힌 벽보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 ‘실어증’이라고 입력하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어떡해야죠?” 오벨뒤주는 나를 보며 물었다.

로또방 주인이 유튜브로 송소희의 「태평가」를 틀어놓았는지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로또방 주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부려서 무엇하나. 인생 일장춘몽인데 아니 놀고서 무엇하리.'

그 노래가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은 그 노래를 듣고만 있었다.

“제가 볼 때 아버님의 실어증은 심각한 건 아닐 수도 있어요. 기분에 따라 금방 달라질 수도 있고요. 뇌의 문제인지 일단 큰 병원에는 가봐야 하겠지만요.” “편지를 써보세요.”라고 말하려다가 삼켜버렸다. “우리 각자 편지를 써볼까요.”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이었다.

사실 기질이나 익힌 성향이 있다 보면 아무리 관계의 기술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실행하기는 어렵다. 우선 나부터 요양병원에 있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쓸 수 있을까. 내가 말했다. “어젯밤에 카프카에 대해 유튜브로 좀 찾아봤어요. 「변신」이라는 소설을 쓴 카프카라는 사람 아시죠? 카프카는 어릴 때부터 엄격하고 권위적인 아버지로 인해 죄의식이 강하고 예민한 아이로 성장했어요. 아버지에게 인정받지도 못했고요. 어쩌면 우리랑 비슷하더라고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평생 자신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작품도 다 쓰지 못하거나 숨겨놓기만 하다가 결국 죽기 전에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썼잖아요. 물론 그의 아버지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 문학작품으로 남았지만요. 우리처럼 할 말이 많았던 거죠.”

오벨뒤주는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아마 ‘카프카’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검색했을 것이다. 쉽게 입력해서 나올 수 없는 이야기를 해야 했다. 아직은 AI가 나보다 지식은 광대하나 나의 해석을 따라올 수 없다는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카프카의 「단식 광대」 이야기를 꺼냈다. 한 단식 예술가가 사람들 앞에서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굶는 공연을 한다. 사람들은 그의 놀라운 기록에 감탄하고, 흥행주는 그를 여러 도시로 데리고 다니며 공연을 이어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단식 공연에 싫증을 내고 새로운 볼거리를 찾기 시작한다. 인기를 잃은 단식 예술가는 서커스단의 한쪽 구석으로 밀려난다. 그곳에서 죽음을 앞둔 그는 자신에게 맞는 음식을 단 한 번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굶었다는 유언을 남긴다. 사람들의 환호에 응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정작 내게 맞는 음식이 없었던 거라고. 사람들의 환호가 잦아들자 비로소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그가 죽은 뒤 철창에는 단식 예술가 대신 한 마리의 표범이 들어오고, 사람들은 생명력 넘치는 표범을 보며 즐거워한다.

“카프카의 인생과 그 소설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강한 아버지,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키워진 사람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더라고요.” 오벨뒤주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나의 말에 집중했다. “카프카가 마흔한 살에 죽었는데, 그전에 쓴 작품이 「단식 광대」 예요. 40이라는 숫자가 서구 문명에서는 여러 가지 상징을 가지잖아요. 모세의 40일, 엘리야의 40일, 예수의 광야에서의 40일, 노아의 홍수에서도 비가 40일 밤낮 내렸다고 하고요. 그런데 「단식 광대」에서도 굶은 기간이 40일을 넘기면 안 되는 것으로 못 박아 놓습니다. 자기가 40년을 살다 갈 것을 직감하고 40이라는 서구 문명의 숫자를 작품 속으로 가져온 것 같아요.” “오늘 로또 번호에서 꼭 40번을 적어야겠네요.” 오벨뒤주가 웃으며 말했다.

"카프카는 세상을 원망하거나 자신을 그렇게 위축시킨 아버지를 탓하지 않고, 끝까지 그 탓을 자기 자신에게 돌렸어요. 놀랍기도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버지와 당대의 종교, 그리고 예술의 구조 바라보는 언어가 부족했다고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단식광대는 죽기 전에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모두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난 나에게 맞는 음식을 찾지 못했어.' 물론 이건 제 해석입니다. 문학 비평은 종교의 영역까지 깊이 닿지 않으니까요." “아버지나 종교, 예술계를 향한 조롱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 카프카의 이버지는 당대 종교 정치 예술 구조속에서 영향받은 개인에 불과했다는 생각을 카프카는 놓치고 있었다고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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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 집행위원장 -생활인과 공동창작 ,탈상업적 상상력의 대중창작시대 돌로 영화만들기 저자.현재 5060영화제작단 ,부산국제마을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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