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황제 이존욱이다

by신지승

공양주의 득도

어느 날 늙은 공양주 할머니가 스님 앞에서 선문을 날린다.

평생 절에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며 불 앞에서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늙은 할머니. 그 뒤로 다가온 스님이 "할머니, 공양 준비 다 되어 갑니까" 하고 물었다.

할머니는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무쇠 주걱을 아궁이 바닥에 툭 치며 대뜸 받아쳤다.

"스님, 쌀이 밥이 되는 걸 보셨소, 아니면 밥이 쌀로 돌아가는 걸 보셨소?"

스님이 멈칫하며 대답을 못 하자, 할머니는 하얗게 재가 내려앉은 눈썹을 치켜뜨며 쐐기를 박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찾으려 하니 솥 안의 밥이 익는 줄도 모르고 바깥 산만 쳐다보지요."

수십 년을 정진했건만 스님은 의외의 순간에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만났다. 사방이 은으로 된 산과 쇠로 된 벽으로 가로막혀 도저히 뚫고 나갈 수 없는 자리였다.

"오늘 공양은 이미 끝났소이다. 허기진 건 스님 마음속 빈 바가지요."

일자무식인 줄로만 알았던 늙은 할머니의 한마디에 멍하니 서 있던 스님은, 그날 방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관세음보살을 밤새 울면서 독송하다가 , 동이 트는 아침이 되기전에 혼자 산을 내려갔다.

밥이나 짓던 할매 눈에 내가 얼마나 중답지 않았으면, 감히 나를 앉혀놓고 선문답 흉내를 다 내는가.

아마 그렇게 부끄러움과 모욕감을 안고 산을 내려갔던 것일까. 아니면 어떤 그것이 알고 싶었던 그 무엇이 있었을까 ? 이건 AI가 만든 공안 (公案)이다 (공안- 수행자가 반드시 풀어서 깨달아야 할 참나의 문제이자 옛 고조사(高祖師)들의 깨달음의 경지를 담은 실화와 선문답을 말합니다. )


누구나 한번씩은 이런 예상치 못한 경천동지하고 황당한 봉변이었다 . 어울릴지 모르지만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 남자, 아니 이제 오벨뒤주라고 하자.오벨리스크와 뒤주를 합치니 프랑스 말 같다 . '일상에 의미가 있다는 것', '당신의 그 허술한 낡은 굴뚝도 어떤 열망과 기도와 시간을 가진 당신의 오벨리스크다'는 것을 배우고 난 뒤로 오벨뒤주는 천천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생각이다. 세상에 대한 허무와 싸우는 사람에게 생각의 방향 하나가 주어졌고, 그 하나가 조금씩 '그 남자'를 '오벨뒤주'로 바꾸어놓았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다만 생각하는 힘이 자라고 나와 역사 속 인물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 오면, 그 깨달음이 가장 먼저 겨누는 것이 바로 가장 가까이 있는 권위라는 사실을 그날의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 사건을 '공양주의 쿠데타'라고 부르기로 했다.

비가 오는 낮이었다. 로또방에서 오벨뒤주가 즐겁게 운을 떼었다.

"자, 오늘은 누구인가요. 운을 띄워주세요."

역사 속 인물을 하나 정해두고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뒤지고 탐구하다가 서로의 전생을 찾아가는 여행. 그것이 우리의 놀이였다. 광대무변한 정보 가운데 어느 지점에 손가락을 짚느냐에 따라 그날의 로또 번호가 추출되었다. 국가가 직접 파는 (돈의 주인이 되어보라는) 희망고문의 공간이었고, 우리는 그 앞에서 먼저 전생을 골랐다.

"오늘은 프랑스혁명의 로베스피에르로 합시다."

"왜 하필요."

오벨뒤주는 스마트폰에 신경을 모으며 물었다.

"역사에 중립적인 민중은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격동기에는 더 그렇지요. 어느 편의 유언비어를 믿을 것인가, 그게 대중의 선택입니다."

"유언비어요."

"지금 말로는 가짜뉴스죠. 언제나 누가 더 기막히게 상상해내는가에 승패가 달렸습니다."

"저번에 우왕은 신돈의 자식이라는 건 가짜뉴스가 아니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렇죠. 그럼 상상뉴스라고 합시다. 가짜든 진실이든, 민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한한 상상뉴스가 분출하는 겁니다."

그 사이 오벨뒤주는 벌써 찾아냈다.

"왕비가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으라고 했다는 소문. 루이 16세와 귀족들이 평민을 굶겨 죽이려고 밀을 빼돌려 거대한 비밀 창고에 숨겨두었다는 소문. 왕비가 매일 밤 난교 파티를 벌이고 어린 친아들과 근친상간을 했다는 팸플릿까지 뿌려졌답니다."

"창고는 없었습니다. 브리오슈도 한 적 없는 말이고요. 재미있는 건 그걸 적절히 활용해서 권력을 잡은 로베스피에르의 운명입니다."

오벨뒤주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주인 없는 역사의 지식을 분출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유언비어,라고 입력했을 것이다. 몇 초 뒤 그가 말했다.

"스스로 독재 군주가 되려 한다, 감옥에 있는 루이 16세의 딸과 은밀히 결혼하려 한다, 자기를 신으로 숭배하게 만들려 한다. 이런 소문이 의회와 파리 시내에 삽시간에 퍼졌답니다. 결국 민중과 동료들의 지지를 완전히 잃고, 자기가 수많은 사람을 밀어 넣었던 바로 그 단두대에서 죽었습니다. 가짜뉴스의 덫에 걸려 목숨을 잃은 역설적인 희생자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는데요."

"그렇습니다. 절대왕정을 무너뜨리려고 수많은 평민이 피를 흘렸는데, 그 자리에 들어선 건 공포정치였고 그다음은 나폴레옹이라는 또 다른 황제였습니다. 주인이 바뀐 게 아니라 주인의 명단만 바뀐 겁니다. 귀족과 교회 땅을 몰수해서 나눈다고 했지만, 그 땅을 살 돈이 있는 건 부유한 평민층뿐이었습니다. 빈부격차는 다른 형태로 더 벌어졌고요."

"..."

"자유라는 이름으로 수만 명의 목을 잘랐습니다. 이성과 계몽을 핑계로 반대파를 숙청했고요. 광기에 사로잡힌 군중심리가 선동가와 결합했을 때 나라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비극적인 선례입니다."

오벨뒤주가 스마트폰을 엎어놓았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신지승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 집행위원장 -생활인과 공동창작 ,탈상업적 상상력의 대중창작시대 돌로 영화만들기 저자.현재 5060영화제작단 ,부산국제마을영화제

14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4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8화나는 폴리페모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