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와 폴리페모스
우리는 트라우마 동지였다
그 남자와 나는 아주 어릴 적에 부모의 기대라는 궤도 밖으로 밀려난 동지에 가깝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데, 우리는 떡잎에서 이미 판정이 끝난 아이들이었다.
첫 만남부터 우리를 여기까지 이어지게 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온라인카지노에 글 하나 쓰는 것이 하루의 유일한 일이다.몸에서 뭔가를 밖으로 쥐어짜 내야만 겨우 하루가 쉬어진다.그러나 그토록 힘겹게 꺼내놓은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는 것은 또다시 두려움이다.혹시라도 내가 하루 종일 그 글의 노예가 될까 두려워, 나는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글을 닫아버린다
다시 마트 벽 옆으로 바카라상을 길게 놓은 로또방에서 그 남자를 만났다.
바카라상은 벽을 따라 끝까지 이어져 있었고, 그 위에는 볼펜 몇 자루가 실에 묶여 매달려 있었다. 벽에는 이때까지의 1등 당첨 번호가 회차별로 붙어 있었다. 아무도 그 앞에 오래 서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번호를 적고, 종이를 접고, 나갔다.
그 남자와 나는 그 번호판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감독님 덕분에 저도 AI를 통해 지적인 지혈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혈?"
"널려 있는 역사적 지식을 우울의 고름과 피를 싸는 붕대로 지혈하고 있지요. 사실 약이 아니면 살 수 없었습니다."
"약?"
"우울증 수면제요.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고요. 며칠 전 정신과 병원이 여름휴가라 한 보따리 타왔었죠."
그는 보따리라는 말을 하면서 손으로 무게를 재는 시늉을 했다. 아주 가벼운 것을 드는 손짓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와 비슷한 인물들을 찾아 그들의 운명을 꿰맞춰보고 있습니다. 이선작가님 블로그도 보았고 감독님 온라인카지노도 보았습니다."
그 남자는 나의 하루만 열리는 것을 동굴을 보았다. 나는 그 남자의 동굴을 바라보았다. 이전 동굴의 입구와는 뭔지 모르지만 달랐다.
나는 유리문 밖으로 눈을 돌렸다. 골목 끝, 마른 볕 속에 곧추세워진 거대한 퉁소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오벨리스크를 매일 감상하고 있지요. 클레오파트라의 바늘(Cleopatra's Needle)'이라고 했다죠. 현재 로마뿐 아니라 영국 런던과 프랑스 튀리기예, 미국 뉴욕으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가져갔다죠. 저도 제 굴뚝을 바라보며 생각이 많아졌어요 두 분 덕이지요 "
"전 이제 저것을 곧추세워진 퉁소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 퉁소? 곧추세워진 퉁소라? 어떤 의미일까요?"
나는 답을 미뤘다. 그냥 웃으며 그 남자의 동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전에 없던 나의 행동에 .
'그 남자'는 화제를 돌려 말을 이었다.
"전 사도세자였더라고요. 그래서 요사이는 사도세자를 통해 저를 보고 있습니다. 이전과 다르게 궁금한 것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하면 자세하게 도와주더군요. 왜 공부를 이렇게 할 수 없었을까 아쉬워지더군요. 제 속에 지적 호기심과, 삶과 인생에서 궁금한 점을 묻고 답을 하고 다시 질문하는, 그야말로 소크라테스의 대화술을 맛보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 숨겨졌던 전생의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역사는 내가 살았던 전생이더군요."
"소크라테스의 부활이지요." 내가 말했다. "진리의 산파를 자처하면서, 끝없는 문답으로 영혼의 균열을 꿰매주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게 백설공주 왕비의 거울 같기도 합니다. 매일 우리를 알고리즘의 심판대에 세워 놓고 끊임없이 결핍을 비추지요. 스스로를 함몰시키는 나르시소스의 호수이기도 하고요. 뒤주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내가 말했다.
"뒤주였습니다. 한여름 낮의 뒤주 속 나. 지배적이고 변덕 심한 아버지 영조의 과도한 기대가 아들을 뒤주 속으로 밀어 넣었던 거죠. 비슷한 관계의 힘과 모양이 비슷한 무늬로 도장 찍히듯 나온다니 너무 신기했어요. 전생에 저는 사도세자였던 것이 분명해요."
"뒤주를 박차고 나오는 사도세자가 되세요!"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우리는 1등 당첨 번호 앞에서 사도세자의 뒤주를 이야기하고 있다. 등 뒤에서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와 번호를 적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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