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 작가에게 전화가 왔다.
"가만 생각하니 그 남자의 아버님을 언제 한번 뵌 것 같아요. 제가 오래전 당근으로 나무 침대를 구입했는데, 그때 만난 사람 같아요. 그 당시 목욕탕 굴뚝이 기억나요. 오래된 동네 골목이었고, 용달을 구해서 그 골목까지 갔고, 좁은 골목 때문에 용달 사장님하고 옥신각신했기 때문에 더 기억이 또렷해요. 물론 얼굴이 긴가민가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아요."
"혹시 그때 산 나무 침대 사진 있으면 한번 찍어 보내 주세요. 그리고 그때 당근 거래 기록이나 사진이나 뭐든지 보내 주세요. 혹시 그 골목이 어딘지 기억나시나요?"
"예, 당연히 나지요. 00 초등학교 네거리에서 굴뚝이 보였어요. 그걸 보고 찾아오라고 했거든요. 요사이는 그런 목욕탕에 거의 안 가잖아요. 그런데 그 굴뚝을 보는 순간, 로마 여행에서 본 베드로 성당의 돌기둥 오벨리스크가 떠올랐어요.그냥 옛 유물처럼, 아파트 높이와 나란히 설 것 같은 묘한 착각도 일으켰고요. 덩그러니 선 그게 저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어요. 블로그에 글을 쓴 기억도 아직 나요."
"그래요? 한번 읽고 싶네요. 그런데 그 남자의 아버지는 온천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던 것 같아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저희 아버님도 그 요양병원에 계시잖아요. 그래서 간 김에 잠깐 들러서 인사드리고 왔어요."
"예? 그런데 말을 하시던가요?"
"아니요. 제가 온, 이라는 한 글자를 듣고 온천 시장까지 추측한 거예요. 그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자세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마트 한쪽, 로또 판매대 옆 작은 테이블에 그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 남자는 늘 그 자리에 앉아 있다고 했다. 그 남자의 앞에는, 이전에 나에게 보여준 10년 동안의 자살자 통계 숫자표가 놓여 있었다.
"저도 새로운 여섯 개의 숫자를 선택할 아주 쌈박한 방법을 찾아냈어요." 나는 신난 듯 그 남자에게 말했다.
"그게 뭔데요?"
"오늘이 8월 4일이잖아요. 역사적으로 8월 4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AI에게 물어보고요, 그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되는 숫자 여섯 개를 선택하는 거지요."
"재미있겠네요." 어쩌면 나는 그 남자에게, 자살자 숫자에서 선택되는 번호가 아닌 더 생동하는 상상을 보여주고 싶었고, 뭔가 큰걸 성취했다고 뻐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환하게 웃었다.
나는 이선 작가에게서 온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혹시 이 사진의 나무 침대,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선 작가가 선생님의 아버님을 이전에 만난 것 같다고, 긴가민가하시는데요..."
"그래요?"
그 남자는 사진을 유심히, 그리고 확대해 보기도 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사실 저는 오랫동안 아버지와 그 집에서 같이 살지 않았어요. 몇 년 전까지 경기도에 살다가 부산으로 내려왔어요."
나는 항상 "왜"를 빠뜨린다. "왜 내려오신 건가요?"라는 질문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묻지를 못하겠다. 그 한 글자를 꺼내 드는 순간, 나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봉인된 무덤을 모질게 파헤치는 도굴꾼이 될 것만 같아서다. 무덤 속에 무엇이 묻혀 있는지 알고 싶으면서도, 정작 그것을 꺼내 든 손을 감당할 자신은 없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 남자가 두려운 게 아니라, 내가 던진 "왜"가 언젠가 나에게로 되돌아올 것이 두려운지도 모른다. 아마 나의 그런 태도 때문에 나는 작품 취재도 깊게 하지 못하고 작품도 만들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그 남자는 다시 내 핸드폰의 사진 속 나무 침대를 유심히 바라본다.
"이 사진은 이선 작가님 방인 거지요? 배경이 우리 집은 분명 아닌 것 같아서요."
"예, 지금 그 침대를 쓰고 계시대요."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생각나시면 이야기해 주세요. 아주 희귀한 인연 같기도 해서요."
"이 나무 침대를 거래한 주소 같은 건 없나요?"
"주소는 이선 작가가 지금 찾고 있을 거예요. 아, 목욕탕 굴뚝... 굴뚝이 보이는 골목이었다고 했어요."
"목욕탕 굴뚝... 그럼 맞아요!"
나는 그 남자에게 물었다. "아버님은 젊으실 때 어떤 일을 하셨어요?"
그 남자는 짧고 분명하게 말했다. "목욕탕을 하셨어요."
나는 순간 뭔가 묘하게 어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온천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이선 작가님이 첫날 인터뷰 작업을 할 때 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던데요."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야기하셨다던가요? 시장 장사를 하시다 목욕탕을 하셨죠. 항상 거대한 굴뚝에서 연기가 시커멓게 나오곤 했죠. 제 어릴 때 생선 가게를 하셨는데, 몸에 밴 생선 냄새 때문에 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오는 게 무척 부끄러웠지요."
"보통은 어머님이 학교에 오시잖아요?"
"어머님은 저 어릴 때 집을 나가셨어요. 그 후 그 당시 작은 동네 목욕탕을 빚을 내서 하셨는데, 몇 년 못 가더라고요. 사우나 문화에 밀려 영업이 안 된 것 같아요. 그래도 그것으로 밥 먹고 살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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