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맹이의 하얀 수염.

너의 수염이 하얗게 되어갈 때 나에게도 하얀 세월이 스며들었다.

by보니또글밥상

그렇게도 더웠던 날씨가 9월 중순이 되면서부터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졌어.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앗, 차가워"라는 혼잣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새벽공기가 차가워졌더라.

물론 아직 낮은 여전히 더워.


오늘만 해도 낮에 따사롭게 내리꽂는 햇볕에 다시 여름의 시작인가?라고 생각될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7,8월의 끔찍하게 무더웠던 날씨에 비하면 지금의 더위는 그 기세가 한풀 꺾였어.

그래서 전보다는 날씨에 대한 원망은 덜한단다.


그리고 이젠 낮에도 보호자와 반려견이 산바카라하는 모습을 자주 보거든?

그 작디작은 몸으로 온 세상의 모든 궁금증을 다 경험하려는 듯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

그 모습을 잠시 보고 있노라면 새끼였을 적의 꼬맹이 네 생각이 나곤 해.

그럴 때면 바삐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너의 사진을 들여다봐.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네 사진이 많지만 내 휴대폰 사진첩에도 네 사진은 잔뜩 있으니까.


너의 사진을 보면서 시간이 너에게도 나에게도 공평하게 스며들었구나를 새삼 느껴.

새끼 때는 온통 까맣던 너의 주둥아리가 점점 하얗게 변해갔고 수염도 그에 질세라 하얗게 변해갔어.

꼬맹이 네 털도 군데군데 하얗게 변해갔는데 그렇게 세월을 온몸으로 맞은 너의 사진을 넘겨보다가

휴대폰을 쥐고 있는 내 손을 보게 되었지.


내 손에도 어김없이 세월의 흔적이 비껴가지 않았더라고.

전보다 더 불뚝 튀어나온 혈관들.

아무리 핸드크림을 발라도 거칠고 메마름이 느껴지는 손등.

머리카락은 검은색과 하얀색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있고.

그러다 얼굴을 보니 눈가에도 입가에도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이 내가 이렇게 늙어가고 있구나에 조금은 서글퍼지더라.

비단 얼굴만이 아니라 내 온몸이 세월을 맞고 있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네.


태어난 생명체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 존재하며 살아가고 그러다가 죽음을 맞이하며 소멸하게 되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반드시 늙어가는 게 참 슬픈 것 같아.

또 달리 생각하면 늙어간다는 건 살아있는 존재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할 텐데

좋은 점이라고 생각되기보단 슬프다는 생각이 더 큰 건 아직 삶에 대한 미련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어.


쓰다 보니 내가 가진 많은 것들이 늙어가고 있네.

얼굴도 몸도 생각도...

딱 하나 안 늙어가고 있는 건 너를 추억하고 있는 내 마음뿐이구나.

그건 좋네. 그나마 그 추억은 더 진해지면 진해졌지 옅어지진 않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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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눈이 내리면 늘 너를 안고 나가서 너에게 눈을 구경시켜 주고 맞게 해 줬는데

이 사진에서도 꼬맹이 네 주둥이가 하얗게 된걸 보니 마음이 아려온다.

나이가 들어가면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왜 이리 서글프냐...


에잇.

그만 쓰고 산바카라하러 나가야겠다.

요 근래 주변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이 계셔서 장례식장 다녀오는 일이 많다 보니 언니 마음이 좀 약해졌나 봐.

아직은 꼬맹이 넌 친구들과 신명 나게 노느라 언니 마중 나올 준비는 안 되어 있는 것 같으니

언니는 좀 더 지구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너 보러 갈게.

그때 얼굴 보자.

내 얼굴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ㅎㅎ

이왕이면 나의 젊었을 적 아리따운 얼굴로 기억해 주면 좋겠어.

(아.. 나의 아리따운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아... 본 적이 없다고... 으이구!)


아무튼 오늘도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라고 조만간에 또 소식 전하러 올게.

항상 건강하고 늘 강조하지만 내 생각도 좀 해주고!

나만 네 생각해서 나 억울해지려고 한다... 쳇.


오직 너 하나만을 마음에 품고 사는 지구인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