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떡같은 경험을 처리하는 법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

by김글리

오래전 바카라에서 본 이야기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머리에 총을 맞은 채 사지가 절단되어 죽도록 내버려진 여자가 있었다. 놀랍게도 여자는 살아남았는데, 후유증으로 영원히 눈이 멀게 되었다. 한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진행자는 그녀가 평생 동안 느낄 상처와 고통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오 안 돼요! 그 남자는 이미 내 인생의 하룻밤을 가져갔어요. 나는 그에게 1초도 더 주기 싫어요!"


자신을 영구 장애인으로 만든 범죄자에 대해 그녀는 단 한순간도 다시 떠올리는 것을 거부했다. 후회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고작 범죄자 따위에게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에겐 오직 자신이 원하는 것에 모든 시간을 쏟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있었다.


20년도 전에 본 이 이야기가 너무 인상 깊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사기를 당하고 그 여자 생각이 자주 났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나는 어림도 없다. 이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불같이 화가 올라올 때가 있다.

그 사기꾼을 만나면 사지를 찢어, 아니 회를 떠서 천천히 죽도록 만들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나의 불행을 어떤 식으로 처리해 왔던가?



나를 갉아먹고 있는 건


악마 같은 인간을 만나 전재산을 잃고, 나는 지옥 속에서 살았다. 그 경험 자체는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이후 3년을 어떻게 살았는지는 —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


머리로는 내가 겪은 일에 불행에 대해 의연하게 대처하려 했다. 엄청난 고통을 성장의 계기로 삼고 싶었다.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 같았다.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게 잘 먹히지 않았다.

울분과 분노, 피해의식, 증오심이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하곤 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이 생각을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니가 내 고통을 알아? 가장 고통스러운 건 나야.’ 그 생각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를 갉아먹고 있는 건 사기꾼이 아니라 그런 생각과 감정이라는 걸, 한참 후에야 알아차렸다.

pheladii-rain-9529581.jpgWhy me? 왜 난데? 왜? (출처 : 픽사베이)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데서 온다


불행을 절망으로 방치하면 피해자로 살게 된다. 끝없는 울분과 분노, 원망, 적개심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그게 습관이 되면 세상 전체를 향한 냉소로 굳어진다. 나는 그 경계 어딘가에 오래 서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요즘 자주 생각하는 게 있다.

'경험보다 중요한 건 그 경험을 처리하는 태도'라는 것.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한 시구가 마음 깊이 들어왔다.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김수영 시인의 '절망'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예전에 이 시를 봤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절망이란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는 태도라는 것 — 이 말이 뼈를 때렸다.



개떡같은 경험을 만났을 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개떡 같은 경험을 마주한다. 그 경험은 우리 삶에 무법자처럼 침입한다. 장항준 감독의 말처럼 불행은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고 있을 때 등뒤에서 칼을 꽂는 존재다.


불행이 닥치면 태도는 둘로 나뉜다.

절망으로 방치하거나, 성찰을 통해 희망으로 재가공하거나.


절망으로 방치하면 피해자로 평생 살게 된다.

울분과 분노, 원망, 적개심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절망에는 반성과 성찰이 없다. 오직 외부 탓만 존재한다.


반면 희망적인 태도는 나쁜 경험을 '재료'로 취급하고 계속해서 성찰한다.

"이 경험이 내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이 질문 하나가 경험을 처리하는 알고리즘이 된다.

불순물이 걸러지고 내 삶에 필요한 것들이 남는다.


개떡같은 경험도 태도에 따라 배움이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태도가 뭐 대단한 게 아니다.

어떤 경험을 앞에 두고, 잠시 멈춰 질문을 던지는 힘이다.

'이 경험은 내게 무엇을 알려주는가?'라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희망이 시작된다. 희망은 "잘 될 거야"라는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 개떡같은 경험을 겪으며 고통스럽게 나의 부족함을 마주했다. 나는 인간의 심리를 잘 알고 있고 충분히 똑똑하기 때문에 사기처럼 어리석은 일은 겪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좋은 이들을 많이 만난 덕에 인간은 선한 존재라 믿었고, 즐거운 일을 많이 겪다 보니 인생이 축제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세상도 나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모든 걸 잘 안다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오만했던가! 예전에 나는 겸손을 가식이라고 생각해서 필요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막상 자만한 태도로 살아온 나를 보니, 겸손이 단순한 예의범절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생존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싱선수로 수천억 원을 벌었던 마이크 타이슨이 자산을 거의 다 잃고 난 뒤,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 겸손하지 않으면, 삶이 당신에게 겸손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내가 틀릴 수 있고, 잘못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한다.

겸손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고, 성장할 일은 더더욱 없으니 말이다.


김수영 시인은 말했다.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고.


맞다. 구원은 내가 계획한 대로 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오지도 않는다.

절망 속에서도 스스로를 반성하고, 경험 앞에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에게 온다.

그러면 보지 못한 가능성이 보이고, 불행에서 벗어날 길이 보인다.

그게 구원이 올 수 있는 길을 닦는 일이다.


나는 지금 그 길을 닦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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