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넘치던 내가 바닥과 한 몸이 된 이유

아무렇지 않게 살아온, 버텨온 대가

by김글리

요즘 지독한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다.

요즘이 아니다. 벌써 6개월째니까.

일이 끝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냥 있어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정말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image.png"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짤방 시리즈의 원조격 이미지 (출처: 나무위기)


아무리 피곤하고 무기력해져도 며칠에서 몇 주 쉬면 나아지는데, 이건 도통 나아지지 않는다.

지난겨울에 한 달 동남아로 휴가도 다녀왔지만 휴가지에서도 나는 무기력했다.

하고 싶은 건 없는데 스트레스는 쌓이고, 풀자니 그럴 힘도 의욕도 없고.

피곤하니까 만사 귀찮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바닥과 한 몸이 되었다.

바카라 읽기도 귀찮고, 생각은커녕 뇌 자체를 쓸 생각도 안 든다.

그럴 때 딱 좋은 게 쇼츠 보는 거다.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으니까.

사는 낙이 사라진 내게 쇼츠는 유일한 낙이었다.



2년 동안 불타오른 끝에 재가 되다


'외상 후 소진'이란 게 있단다.

심각한 트라우마 사건을 겪은 후, 감정적, 신체적, 정신적으로 극심하게 지쳐 냉소적이고 무기력해지는 상태를 말한다. 공식 학술용어는 아니고, 외상을 겪은 이후 사건을 처리하거나 일상을 회복하려고 과하게 에너지를 쏟은 끝에 완전히 방전된 상태를 빗댄 표현이다.


이 시리즈를 읽은 분들은 알다시피 나는 2023년에 사기사건으로 전 재산을 잃고, 엄청난 심신의 타격을 입었더랬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고통과 극심한 감정의 파도 속에서 무너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또 쳤다.

덕분에 내 일상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대신 내 몸이 무너져 내렸다.


사건이 터지고 30개월이 지났을 무렵,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머리꼭대기까지 치솟기를 2주째,

어느 날 뇌에서 퓨즈가 훅, 나간 느낌이 들었다. 뭔가 뚝, 끊긴 느낌.

이게 뭐지?라는 생각도 잠시, 그때부터 무기력, 피로감, 우울감이 한 번에 밀려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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