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 교육에 대한 힌트는 디자인 교육에 있다.

by윤여경

[우리 시대 교육을 말한다 2] 새로운 시대 교육에 대한 힌트는 디자인 교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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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 유럽은 엄청난 변화의 기로에 있었다. 갈릴레오는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주장으로 가택연금되었고, 단테나 마키아벨리는 보편적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글을 썼다. 자신들의 주장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브루노처럼 화형당하는 것이 두려운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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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이런 말을 한다. 학교가 아닌 ‘세상이라는 큰 바카라’에서 배우겠다고. 이것은 하나의 지식이나 배움이 아니라 태도를 강조한 것이다. 거대한 변혁이 시작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가 자신이 배웠던 지식이나 스펙 등을 모두 버리고 직접 경험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태도로 모드 전환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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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업 초반에 데카르트를 언급하며 ‘믿음에서 이성으로’라고 말한다. 이를 ‘디자인 되기’가 아니라 ‘디자인 하기’라고 말한다. 믿음이란 우리말로 ‘답을 맞추기 위해 배우고 익히기’라면, 이성이란 우리말로 ‘답을 찾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기’란 생각이다. 실제로 200년 뒤 ‘순수이성=생각하기’와 ‘실천이성=행동하기’를 구분한다. 한마디로 말해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디자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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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에서 교육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문제의식은 동일한데, 그 진단과 해결바카라은 제각각이다. 나는 이 대화가 참 좋았다. 마치 디자인 수업 교실 같았기 때문이다. 김어준은 의제를 던지고 패널들은 각자의 생각을 말한다. 답이 없으니 누구나 말을 할 수 있고, 누구나 말하고 싶어 한다. 결론? 중요하지 않다. 일단 이 주제에 대해 생각과 대화라는 행동을 시작한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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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철학자 글렌 파슨스는 『디자인 철학』에서 디자이너는 ‘교사이자 산파’라고 말한다. 답이 없는 디자인 프로젝트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이를 교실로 가져오면, 선생님은 주제를 정리하고 학생들이 답을 끌어내도록 돕는다. 디자인 교실은 수업이 제각각이다. 그만큼 교육 실험이 다채로운 분야란 의미다. 예술처럼 자유롭지 않고, 뭔가 적절한 해결바카라을 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면서도 실상은 예술교육처럼 하니 독특한 풍경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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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디자인 교육자는 수업 전체를 잘 디자인(설계)한다. 첫 시간부터 마지막 시간까지 학생들은 교사가 설계한 수업을 수행하면서 각자의 답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서로의 작업을 본다. 이를 통해 자바카라도 하고, 자신감도 갖는다. 선생님은 학생이 너무 자바카라하지 않도록 지도하고, 또 너무 자만하지 않도록 독려한다. 이를 디자인 수업에서 ‘크리틱’이라고 말한다. 칸트의 바카라들은 ‘비판’이라는 말이 붙는데, 이 말이 독일어로 ‘크리틱’이다.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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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우리 시대 교육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일단 초등, 중등 교육은 우리 슬롯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 시기는 공부할 능력(수학능력)을 기르는 시기인데 공교육과 사교육이 적절하게 서로를 보완한다. 물론 공교육이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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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고등교육이다. 특히 입시를 위해 달리는 고등교육은 정말 최악 중의 최악이다. 우리 시대 젊은이들이 여기서 대부분 좌절하고, 좌절하지 않더라도 크게 지친다. 학생과 부모 모두가 너무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는 시기다. 왜?! 가장 중요한 이 시기를 우리는 왜?! 이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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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결실과 운이 좋아 좋은 대학에 갔다고 치자. 좋은 대학에는 좋은 교육이 기다리고 있을까? 정말? 서울대와 카이스트, 연고대의 최고 교수들이 학생들과 그 부모의 미래를 바카라임져 줄까? 과연? 난 이 절망적인 확률 게임이 너무 화가 난다. 어쩌면 이 대학에 오기 위해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쳤던 학원 교사가 더 뛰어난 선생님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 이들은 그 좋은 능력을 왜 이런 허망한 게임에 낭비할까… 그 답은 뻔하지… 한달에 몇백씩 돈이 몰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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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퍼붓고 대학에 들어온 대학생은 알바로 연명하며 학자금 대출을 갚는다. 입시때는 달리 대학은 한학기에 몇백일뿐이다. 그럼에도 고등학교와 달리 정작 대학때는 공부 비용을 아끼고 아낀다. 이미 4-5년간 너무 많이 소진한 상태라 버겁다. 대학생이라는 성취와 동시에 절망적 현실을 마주하다가 어떤 이는 군대를 가고, 어떤 이는 휴학을 한다. 큰 불안을 품고. 복학해봐야 달라진 것은 없고, 한탕을 노린다. 이 한탕이란 대기업 취업이거나 주식, 아니면 코인 등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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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삶을 살아가도록 만든 이들은 누굴까?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 교육 현실을 괴로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믿고 따르는 우리 스스로가 이 현실을 유지하고 있다. 이 현실이 잘못되어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혹시 나만 버려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 두리번거릴 뿐이다. 난 누구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 현실을 동시에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의 계엄이 우리를 번쩍 깨웠듯이, 우리는 이 현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두려움에 머뭇거리면 안된다. 과감하게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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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중학교까지의 교육은 답을 맞추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점에 찬성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이후의 교육은 답을 찾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데카르트가 때늦은 41세에 믿음에서 이성으로 태도 전환을 했듯이, 우리 시대 젊은이들은 17세에 이르면 믿음에서 이성으로 태도 전환을 해야 한다. 그래야 데카르트처럼 탄탄한 믿음을 바탕으로 힘 있게 나의 생각을 나의 존재로 전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힌트는 디자인 교육에 있다. 디자인 교육은 그 자체로 답 맞추기가 아니라 답 찾기 교육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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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교육도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디자인 시장은 이미 인공지능에 장악되고 있다. 이건 이미 현실이다. 그것도 너무 빨리 다가오는 현실이다. 이 현실에서 디자이너라는 소수의 직업에 집착하기보다는 디자이너적 태도라는 다수의 태도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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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대한민국은 큰 변혁이 시작되는 듯싶다. 난 꽤 오래전부터 1905년과 1945년, 1985년에 이어 2025년을 새로운 시대의 분기점으로 보았고, 그것이 현실이 되어 놀랍다. 그리고 나의 역할을 교육 문제로 좁혔다. 다행히 대학과 디학 등에서 이 실험을 거듭한 임상 경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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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관문은 입시다. 더 정확히는 고등교육이다. 무너진 고등교육(고등학교와 대학)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교육은 예부터 백 년의 큰 계획이라 말했는데, 이 문제에 우리의 진짜 미래가 있다. 그리고 그 힌트가 디자인에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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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는 태도와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방법서설』을 프랑스어로 썼다. 단테를 시작으로 앞선 선배들이 보편의 라틴어가 아니라 로컬의 언어로 자기 주장을 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과연 단지 두려움 때문에 로컬의 언어를 쓴 것일까? 아니면 로컬이라는 작은 변화라도 절실하다는 생각에서 로컬의 언어를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이런 혁신적인 생각은 모국어로 말할 때 진정성이 강해지기 때문일까. 아무튼 나는 이들의 태도 변화가 로컬과 관련이 깊다는 것도 아주 흥미롭다. 어쩌면 이건 보편적인 하나의 답이 아니라 개별적인 다양한 답이 필요한 시대에 등장하는 필연적 태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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