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프트 펑크 레전드 콘서트가
제품이 된다

경험에서 다음 제품을 찾는 브랜드들

by정나영

2007년 6월 프랑스 파리 베르시 아레나. 헬멧을 쓴 두 로봇이 빛으로 뒤덮인 거대한 피라미드 위에 올랐다.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ALIVE 2007’ 투어 무대다. 피라미드는 공연 배경을 넘어, 팬들이 다프트 펑크의 전성기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꺼내는 장면이 됐다.


19년이 지나 무대가 상자에 담긴다. 레고그룹은 2026년 10월 22일, 어제 다프트 펑크와 공식 파트너십을 맺고, 첫 프로젝트로 ALIVE 2007 피라미드 무대 세트를 선보이겠다고 발표했다. 출시일과 가격은 2027년에 공개된다. 레고가 이번에 제품으로 삼은 것은 자동차도, 건축물도, 캐릭터도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기억해 온 콘서트의 한 장면이다.



팬이 먼저 쌓은 피라미드

피라미드 세트의 설계는 레고 디자이너가 아니라 팬에게서 나왔다. 코로나19 봉쇄 기간 패트릭 하분(Patrick Harboun)은 아들과 함께 피라미드 무대를 브릭으로 재현했다. 2020년 레고와 유니버설뮤직이 연 공모전 ‘Music to Our Ears!’에서 대상을 받았지만 정식 제품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분은 2024년 10월 팬 창작 플랫폼 레고 아이디어(LEGO Ideas)에 작품을 다시 올렸고, 지지자 1만 명을 모아 이듬해 심사 단계에 올랐다. 공모전 수상 6년 만에 공식 세트가 되는 셈이다.


레고는 앞서도 경험을 브릭으로 옮겼다. 2023년 BTS ‘Dynamite’ 세트는 뮤직비디오 속 레코드숍과 도넛 가게를 재현했다. 2024년 폴라로이드 원스텝 SX-70 세트는 카메라의 외형을 넘어 셔터를 누르면 사진 조각이 실제로 밀려 나오는 손맛까지 담았다.


무엇을 만들었느냐보다 무엇을 경험했느냐가 제품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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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대신 '잘 자는 밤'

2025년 3월 세계 수면의 날을 맞아 이케아 오스트리아는 잘츠부르크주 필즈모스의 알프스 산자락에 거대한 파란색 프락타(FRAKTA) 가방 모양의 컨테이너 침실을 세웠다. 이름은 '슐루머타셰(Schlummertasche)', 영어로 하면 '슬럼버 백(Slumber Bag)'이다. 투숙객은 개인 수면 상담을 받고, 가이드와 함께 눈 덮인 산길을 설피를 신고 걸은 뒤 스웨덴식 저녁을 먹었다. 하룻밤 추첨에 1440명이 응모했다.


이케아가 내놓은 것은 새 침대가 아니라 잘 자는 하룻밤이었다. 가구 회사는 오랫동안 매트리스의 탄성과 베개의 높이, 가격을 하나하나 설명해 왔다. 고객이 원하는 경험을 먼저 정의하면 셈법이 달라진다. '숙면'을 기준으로 보면 침구와 조명, 저녁 식사, 산바카라까지 모두 하나의 브랜드 세계 안으로 들어온다. 제품에 경험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제품의 범위를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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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첩 회사가 만든 타투 잉크

하인즈 로고나 케첩병을 몸에 새긴 팬은 적지 않다. 영국 가수 에드 시런의 케첩 타투도 잘 알려져 있다. 하인즈 브라질은 팬들의 타투를 광고 이미지로 쓰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2023년 3월 현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소코(SOKO), 타투 잉크 제조사 일렉트릭 잉크(Electric Ink)와 함께 '하인즈 타투 잉크' 개발을 발표했다.


2020년 케첩에서 뽑아낸 공식 색상 '하인즈 57 레드'를 구현한 잉크다. 유럽연합이 2022년 문신용 화학물질 4000여 종을 금지하면서 붉은 잉크의 안전성이 도마에 오른 시점이었다. 브라질 타투이스트 5명은 하인즈를 소재로 한 도안 57개를 그려 공개했다. 같은 해 6월 칸 국제광고제에서는 해변 행사장을 찾은 방문객에게 잉크로 직접 타투를 해 줬고, 캠페인은 칸 라이언즈 브랜드 경험 부문 동상을 받았다.


하인즈가 넓힌 것은 케첩의 맛이 아니라 하인즈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에 충분히 강한 경험이 쌓였다면, 케첩 회사의 다음 제품이 꼭 먹는 것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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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체 행동을 상품으로 만든 치폴레

미국 멕시칸 음식 체인 치폴레(Chipotle) 매장에서는 무료 물컵에 레모네이드를 '실수로' 따라 마신다는 팬들의 농담이 소셜미디어에서 오래 돌았다. 치폴레는 단속 대신 상품을 택했다. 2022년 8월 매장 물컵 모양에 레모네이드 향을 입힌 '워터 컵 캔들'을 온라인 굿즈 숍에서 팔았다. 구매자에게는 탄산음료 무료 쿠폰까지 얹어 줬다. 치폴레에 따르면 캔들은 4분 만에 다 팔렸다.


치폴레는 팬들이 브랜드를 경험하는 습관을 계속 상품으로 만들었다. 고수에서 비누 맛이 난다는 오랜 논쟁에서는 2021년 '고수 비누'가 나왔고, 차 안에 치폴레 냅킨을 잔뜩 쌓아 두는 습관에서는 2023년 차량용 냅킨 홀더가 나왔다. 2024년 11월에는 세 제품을 묶어 ‘All I Want Is Chipotle’ 컬렉션으로 다시 내놨다. 캔들 가격은 28달러(약 3만8000원)였다.


치폴레는 고객에게 새로운 행동을 가르치지 않았다. 고객이 이미 하고 있던 엉뚱한 행동을 제품으로 만들었다.


향으로 남긴 공간의 기억

교보문고는 2014년 매장 전용 향을 만들었다. "교보문고 향을 어디서 살 수 있느냐"는 문의가 이어지자 2017년 디퓨저와 캔들로 내놨고, 200개씩 만든 첫 물량은 3주 만에 동났다. 2025년 ‘The Scent of Page’로 리브랜딩한 바카라향은 섬유 향수와 핸드크림까지 품목을 넓혔고, 언론 보도에 따르면 누적 매출은 약 400억원에 이른다.


아모레퍼시픽은 2023년 9월 서울 북촌의 1960년대 양옥을 '조향사의 집'으로 꾸몄다. 방문객은 한국 자생식물로 만든 향과 단종 제품의 향을 맡아 보고, 자신만의 향을 직접 조합해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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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밖에서 찾은 다음 제품

음식 체인이 양초와 비누를 팔고, 케첩 회사가 타투 잉크를 만들고, 가구 회사가 알프스의 하룻밤을 내놓는다. 서점은 매장의 공기를 판다. 제품 카테고리로 보면 뜬금없지만, 경험을 따라가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신제품 개발은 대개 익숙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기존 제품에 무엇을 더할 것인가, 어떤 기능을 개선할 것인가, 어느 카테고리에 새로 진출할 것인가.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 브랜드로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제품을 보고 다음 제품을 만들면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답을 찾게 된다. 자동차는 다음 자동차로, 케첩은 다음 소스로, 침대는 다음 침대로 이어진다. 경험을 보면 지도가 달라진다. 브랜드가 갈 수 있는 영역은 기존 카테고리보다 훨씬 넓어진다.


다음 제품은 회의실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먼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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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s : MusicRadar · DJ Mag · LEGO · BlachReport · HORIZONT · It’s Nice That · Marcas pelo Mundo · Chipotle · 이데일리 · 디지털데일리 · Amorepaci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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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나영
NWHY 대표이자 브랜드 컨설턴트. '브랜드 다음 NWHY'를 통해 지금 주목받는 브랜드의 움직임에서 다음의 WHY를 짚습니다. jeongnayo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