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뮤직·구글·MIT의 로고 디자인 방식
빛이 낮게 깔린 스튜디오. 얕은 수조에 담긴 미네랄 오일 아래서 진동 장치가 낮게 울린다. 소리가 닿을 때마다 오일 표면에 파문이 번지고, 수면 너머의 로고가 물결처럼 휘었다 돌아온다. 2026년 10월 21일 애플 뮤직이 공개한 새 로고 '소리로 만든(Made by Sound)'의 제작 현장이다. 영국 프로듀서 Fred again..이 음향 스튜디오 NEST 어쿠스틱스와 함께 쓴 짧은 곡이 오일을 흔들었고, 애플은 몇 달에 걸친 실험 끝에 모든 장면을 카메라로 담았다. 곡은 그대로 새 사운드 로고가 됐다.
AI가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로고를 수십 개씩 뽑아내는 시대, 결과물은 흔해졌고 과정은 귀해졌다. 이제 로고에 관해 가장 많은 것을 말해 주는 것은 모양이 아니라 만든 방식이다.
애플의 '굳이'는 처음이 아니다. 2025년 11월 공개한 애플 TV의 5초짜리 로고 영상도 단 한 프레임도 컴퓨터로 그리지 않았다. 애플 로고와 'tv' 글자를 커다란 유리 조각으로 잘라 세우고, 로고 대신 카메라를 움직였다. 글자 위를 흐르는 빛은 스태프가 조명을 손으로 옮겨 만들었다. 영상은 2026년 칸 라이언즈 디자인 부문 그랑프리를 받았다. 아이폰 화면에 디지털 '리퀴드 글래스'를 입히던 바로 그때, 애플은 로고 속 유리만큼은 진짜 유리로 찍었다.
우연이 아니다. 애플은 2025년 크리스마스 광고 '크리터 캐럴'에서 손으로 빚은 숲속 동물 인형을 아이폰으로 찍었고, 2026년 맥북 네오 광고도 수공예 소품과 실제 촬영으로 완성했다. 토르 미렌 애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은 2025년 칸 라이언즈에서 "소비자는 무언가를 느껴야 하고, 그 일은 기계보다 사람이 더 잘한다"고 말했다. AI를 도구로 쓰더라도 감정이 닿는 자리에는 사람의 손을 남기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로고의 역사에는 몇 초 만에 태어난 걸작이 있다. 1976년 그래픽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는 택시 뒷좌석에서 봉투 한 장에 'I♥NY'를 끄적였다. 뉴욕주 관광 캠페인이 두어 달이면 끝나리라 여겨 보수도 받지 않았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손으로 그린 스케치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돼 있다. 디자인 회사 펜타그램의 폴라 셰어는 시티은행 경영진과의 첫 미팅에서 냅킨에 로고를 그렸고, 최종안은 냅킨 스케치와 거의 다르지 않았다.
택시 뒷좌석의 봉투도, 오일 수조의 파문도 로고와 함께 전해진다. 사람들은 로고를 볼 때 로고가 태어난 순간까지 함께 떠올린다. 모양은 베낄 수 있어도, 태어난 순간은 베낄 수 없다.
디자이너가 펜 툴을 내려놓은 로고도 있다. 2011년 MIT 미디어랩은 알고리즘에 로고를 맡겼다. 도형 3개와 색 12가지가 얽혀 약 4만 가지 변형이 나오고, 구성원마다 자기만의 로고를 받았다. 노르웨이 최북단 노르킨 반도의 관광 로고는 실시간 기상 데이터를 받아 바람과 기온이 바뀔 때마다 모양을 바꾼다.
구글은 숫자로 자기다움을 새겼다. 2015년 로고를 바꾸며 파일 크기를 약 1만4000바이트에서 305바이트로 줄였다. 수많은 곡선 위에 점을 찍어 그리던 세리프 글자를 원과 직선 위주로 다시 짠 결과다. 느린 통신망에서도, 손목시계만 한 화면에서도 로고는 순식간에 떠야 했다.
AI 시대의 구글은 같은 정밀함으로 빛을 설계한다. 구글 디자인팀이 공개한 AI 서비스 제미나이의 시각 언어는 원에서 출발한다. 제미나이 로고는 맞닿은 원 네 개 사이의 빈 공간으로 그렸다. 그라데이션은 앞쪽 끝을 거의 불투명할 만큼 짙게 세우고 꼬리로 갈수록 흩어지게 해 시선이 흐를 방향을 정한다. 모든 움직임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속도를 끌어올려 기대를 만든 뒤 풀어 준다. 빛이 어디에 짙게 모이고 어디서 흩어질지, 아이콘이 언제 맥박처럼 뛸지까지 설계도에 적혀 있다.
방식을 고르는 기준은 하나였다. 브랜드가 무엇을 파는가다. 사람이 느끼는 경험을 앞세우는 애플은 손을 남겼고, 실험을 업으로 삼는 MIT 미디어랩은 하나의 정답 대신 끝없는 조합을 골랐다. 자연에 기대어 사는 땅, 노르킨은 바람에게 로고를 맡겼고, 어디서나 빠르게 닿는 기술을 파는 구글은 바이트와 빛의 밀도까지 계산했다. 사람의 손을 덜어 낸 로고에도 브랜드의 선택은 고스란히 남는다.
손과 데이터는 정반대 끝에 있지만, 원리는 같다. 만드는 방식은 디자인 부서가 고르는 기법이 아니라 브랜드의 믿음이 묻어나는 지문이다. 지문은 저마다 다르고, 누구도 베낄 수 없다. AI가 어떤 모양이든 대신 그려 주는 시대, 경쟁자가 끝내 흉내 내지 못하는 것도 결국 지문이다.
새 로고를 앞둔 브랜드가 먼저 던질 질문은 그래서 '어떤 모양으로 만들까'가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만드는 브랜드인가'다.
로고는 모양으로 알아보지만, 브랜드는 방식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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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s : Creative Boom · Fast Company · 9to5Mac · t2 · Creative Bloq · MoMA · The Next Web · Neue · Google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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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나영
NWHY 대표이자 브랜드 컨설턴트. '브랜드 다음 NWHY'를 통해 지금 주목받는 브랜드의 움직임에서 다음의 WHY를 짚습니다. jeongnayo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