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FSD와 BYD ‘신의 눈’이 바꾸는 자동차 경쟁의 공식
유럽 각국에서 ‘완전자율주행(FSD)’이라는 명칭이 실제 능력을 오인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테슬라는 이달 유럽 공식 홈페이지에서 FSD를 ‘테슬라 보조주행(Tesla Assisted Driving)’으로 바꿨다. 간판 상품의 이름을 내린 것이다. 자동차의 가치는 더 이상 공장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출고 뒤 어떤 기능을 더할 것인지, 그 기능에 얼마를 받을 것인지, 그 능력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지가 자동차의 가치를 계속 바꾼다.
자동차는 출고되는 날 가장 새것이었다. 더 나은 차를 원하면 다음 모델을 기다려야 했다. 브랜드의 승부도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대부분 끝났다.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은 이 순서를 뒤집는다. 차체와 모터는 그대로인데 밤사이 무선(OTA) 업데이트를 받으면 새로운 주행보조 기능을 얻는다. 배터리를 바꾸지 않고도 제어 방식을 개선해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스마트폰이 운영체제 업데이트로 새로운 기능을 얻는 것과 비슷하다.
2년 된 차가 새로운 능력을 얻는가 하면, 갓 나온 신차도 업데이트에서 뒤처지면 금세 구형이 된다. 자동차의 나이는 이제 연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신차 발표회에서 한 번 평가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주차장에서, 업데이트가 도착할 때마다 다시 평가받는다.
이 변화를 일찍 사업으로 만든 회사가 테슬라다. 2015년 10월 무선 업데이트를 통해 모델S에 차선 유지 기능을 제공했는데, 이용하려면 2500달러(약 340만원)짜리 ‘오토파일럿’ 옵션을 활성화해야 했다. 이후 더 높은 수준의 주행보조 기능을 FSD라는 별도 상품으로 확장했고, 현재 미국에서는 월 99달러(약 13만원)에 구독할 수 있다. 올해 2분기 활성 FSD 이용은 148만 건에 달한다.
자동차를 한 번 팔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출고한 뒤에도 매출을 만드는 구조다. 테슬라는 최근 더 밀어붙였다. 올해 1월 북미에서 새로 판매하는 모델3와 모델Y의 기본 사양에서 차선 유지 기능 ‘오토스티어’를 뺐다. 2019년부터 기본 제공해 온 기능이다. 신규 구매자가 오토스티어를 쓰려면 FSD를 구독해야 한다.
중국 BYD는 반대로 움직인다. 지난해 2월 ‘신의 눈(God’s Eye)’ 보급형을 21개 모델에 별도 옵션 비용 없이 적용했다. 6만9800위안(약 1380만원)짜리 소형차 시걸도 포함됐다. BYD는 그해 순수전기차 판매에서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가격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선명해진다. 중국에서 테슬라 FSD 패키지는 6만4000위안(약 1270만원)이다. 두 시스템의 기능과 성능, 가격 구조가 달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신의 눈’을 탑재한 BYD 시걸 한 대 가격과 거의 맞먹는다.
BYD가 던진 질문은 그래서 기술의 우열만이 아니다. “누구 기술이 더 뛰어난가”보다 “이 정도 기능에 왜 따로 돈을 내야 하는가”에 가깝다. 소비자의 기대도 움직이고 있다. 맥킨지의 2026년 중국 자동차 소비자 조사에서 응답자의 69%는 도심 주행보조 같은 첨단 기능을 ‘필수’로 꼽았다. 기업이 돈을 받고 팔던 기능을 소비자는 기본 사양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기본 제공이 곧 승리를 뜻하지는 않는다. 막대한 개발비를 회수하고 성능을 계속 높이려면 테슬라의 구독 모델이 더 지속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번 기본값이 된 기능에 다시 가격을 붙이기는 어렵다. 기술 격차는 더 좋은 기술로 따라잡을 수 있지만, 소비자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인 가격의 기준을 되돌리는 일은 훨씬 어렵다. 선발주자의 가장 무서운 적은 더 좋은 제품을 내놓는 경쟁자가 아니다. 내가 비싸게 팔던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경쟁자다.
소프트웨어는 기능과 가격만 바꾸지 않는다. 자동차 회사가 고객에게 건네는 약속도 바꾼다. FSD는 기술의 완성보다 이름이 먼저 미래를 선언한 상품이었다. ‘완전자율주행’이라는 이름은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에 테슬라가 먼저 꽂은 깃발이었다. 그러나 현재 FSD는 운전자의 지속적인 감독을 요구한다. 테슬라가 상품명에 ‘감독형(Supervised)’을 붙인 이유다.
문제는 이름이 기술보다 너무 멀리 앞서갈 때 생긴다. 중국은 샤오미 SU7 사망 사고 이후 주행보조 규제를 강화하고 차량 광고에서 ‘자율주행’과 ‘스마트 주행’ 같은 표현을 제한했다. 테슬라는 중국에서 FSD 명칭을 ‘테슬라 보조주행’으로 바꿨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차량관리국(DMV)은 오토파일럿과 FSD 명칭이 소비자를 오도한다고 판단했다. 유럽에서도 같은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테슬라는 이달 유럽에서도 같은 명칭을 적용했다.
제도와 판단은 달라도 문제의 핵심은 같다. 기술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곳까지 이름이 먼저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거 자동차의 약속은 카탈로그의 숫자에 가까웠다. 마력과 연비처럼 출고 시점에 확인할 수 있는 성능이 브랜드의 약속이었다.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은 다르다. 지금 가진 능력뿐 아니라 앞으로 업데이트를 통해 갖게 될 능력까지 상품 가치에 포함한다.
테슬라는 FSD라는 이름으로 미래를 설명하는 언어를 누구보다 먼저 선점했다. 그러나 미래를 먼저 약속할수록 현재의 기술은 더 엄격한 검증을 받는다. 소프트웨어 시대에는 기술과 이름 사이의 거리가 곧 브랜드가 감당해야 할 신뢰의 거리가 된다. 이름을 먼저 선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업데이트가 약속을 따라잡아야 한다.
독일차의 엔지니어링, 일본차의 품질은 여전히 강력한 브랜드 자산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가 자동차의 능력을 계속 바꾸는 시대에는 과거의 명성이 다음 경쟁력까지 보증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수십 년간 쌓은 품질의 기록이 다음 차의 신뢰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지난 업데이트가 만든 경험과 다음 업데이트에 대한 기대가 그 신뢰를 계속 다시 쓴다.
테슬라는 출고 뒤에도 새로운 능력을 판매하는 시장을 만들었다. BYD는 그 능력의 가격 문턱을 기본 사양까지 낮췄다. 규제 당국은 그 능력을 어디까지 약속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능력, 가격, 그리고 약속. 자동차 회사가 출고 이후에도 계속 관리해야 할 세 가지다.
자동차 브랜드가 답해야 할 질문도 하나 늘었다. “다음 차는 무엇인가”와 함께, “이미 팔린 차에 다음에는 어떤 능력을 더할 것인가.”
과거 자동차 브랜드는 신차로 미래를 보여줬다. 이제 미래는 이미 팔린 자동차에도 다운로드된다.
참고 자료: Reuters · CNBC · Electrek · California DMV · McKinsey & Company · Tesla · BYD · CnEVPost · Yicai Glob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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