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 응답

by최이삭


#24.


언젠가부터 ‘부르심’이 무엇인지에 늘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긴 낭떠러지에 끝없이 추락하더니 마침내 땅바닥에 ‘꽝’하고 부딪혔을 때 온몸이 터지고 짓이겨 나갔다. 도저히 움직일 수 조차 없는 상태로. 엄마의 울부짖음에 스스로 각성하고 몇 주 만에 병원을 찾아 억지로라도 살자는 생각을 하며 시작한 것들.


처음엔 단순히 세례를 받고자 가 아니라, 단지 일을 하지 않아 시간이 많았고 다른 생각을 줄이고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성당에 간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세례 교리 수업을 등록했다. 이번에도 수업을 듣다 중간에 포기하려나 싶었던 것이 조원들을 잘 만나 한 주 또 한 주를 정을 붙이며 나갈 수 있게 했고. 이내 다시 세상에 마음을 열게 됐다.


그 시기 무슨 마음에서 인지. 엄마가 아픈 모습을 보고 더 늦기 전에 엄마한테 반드시 유럽 여행을 시켜주고 싶다고 생각해 둘이 난생처음 함께 패키지여행을 떠났었다.


투어 중 우리는 한 가톨릭 신자인 부부를 만났고 그들로부터 많은 챙김을 받았다. 의사였던 사모님과 남편분은 아픈 엄마를 여행 처음부터 끝까지 애정을 담아 챙겨줬다. 자식인 나보다 더.


사모님은 내가 교리 공부를 하고 있다 세례를 받을 거다,라고 하니 “하느님이 이제 부르시나 보네요.” 하면서 어디서 공부를 하느냐, 세례명은 무엇으로 할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패키지 그룹에서 우리 둘만 떨어져서 자리를 배정받았는데, 옆자리에서 우연히 또 가톨릭 신자 한 분을 만났다.

첫 유럽 여행이 재밌었는지 집에 가는 길에도 내내 들떠있던 엄마는 자리에 앉자마자 다짜고짜 옆자리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갔다가 오셨어요? 우리는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갔다가 가요.”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난 여인은 “아, 네... 남편이랑 지인이랑.. 차를 빌려서 동유럽을 쭉 돌며 성지순례 다녀왔어요.” 답했다. 나는 여인이 엄마를 불편해하는 것이 염려되어 넉살 좋은 척 질문을 덧붙였다.


“아, 선생님. 혹시 가톨릭 신자이신가요?” 하니 여인이 “네.” 하고 답했다.

“어마나!” 엄마가 박수를 짝하고 치며 말했다.

“우리 딸. 지금 세례 받으려고 성당에 다니는데!”


그때 굳었던 여인의 얼굴이 경계심을 풀고 밝아졌다.

“아 그러시구나. 세례는 언제 받아요?” 꼬리가 살짝 쳐진 순하디 순한 눈매를 가진 그녀는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었다.

“하느님께서 자매님을 이제야 부르셨나 보네요. 지금에서야 부르시는, 부르심의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부르심. 그때부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게 내 숙제가 되었다. 성당에 제 발로 찾아갔는데 ‘부르심’이라니.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것이 정확히 무어냐 물어도 답을 알지 못했는데. 나는 몇 달이 지난 오늘에야 비로소 그 답을 찾은 것 같았다.


-


그날 우리의 대화가 모두 생생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언니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제가 세례명을 정할 때, 왜 계속 가브리엘라가 주변을 맴돌았는지. 마음에 차지 않아서 다른 이름을 하고 싶은데. 왜 이 이름이 자꾸 주변을 맴돌았는지 궁금했거든요. 그래도 주어지는 이유가 있겠지 하고. 그런데, 이번에 유가족들이랑 함께 걷고, 그들을 위해서 글도 쓰고 하니 마음이 너무 좋았어요. 가브리엘 천사처럼 앞으로 좋은 메시지 전하고 좋은 글 쓰라고 이 세례명을 하라고 그랬나 봐요. 어쩌면.. 저를 부르고 저분들을 만나시게 한 것도 어떤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그때 주희 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느님이 혜정이를 참 아끼시나 보다.”


언니들과 헤어져 집에 돌아오는 길. 내 마음은 따뜻한 것으로 가득 차 버려서 다시 몸이 붕 떠올라 있었다. 한참을 걷다 버스에 올라탔다. 차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난 반년 가까이 있었던 모든 일이 어쩌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16화멀지 않은 곳에서 닿은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