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은 요즘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회의 중에 팀장이 앉던 자리를 봤다. 창가 쪽, 여의도 빌딩 사이로 햇빛이 비스듬하게 들어오는 자리. 아무도 거기 앉지 않았다. 한 달째.
서영은 그 자리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 저 사람은 거기서 뭘 봤을까.
처음부터 사고 파트너였던 건 아니다. 입사 첫 달, 대표 보고에서 두들겨 맞고 내려온 날 메신저가 깜빡였다. 그 회의에 팀장은 없었다.
"오늘 맘고생 많았네. 입사한 지 한 달 된 사람한테 그동안 못 해놓은 걸 다 바카라임지라는 거, 좀 이상하죠."
서영은 한참 커서만 봤다.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랐다.
"넹."
한 글자를 쳤다. 그게 다였다.
7월, 팀에 둘만 남은 점심.
"오늘은 우리 둘만 먹으면 되겠네요. 나 숙취때문에 그런데, 국물 먹어도 될까?"
국밥집에서 별 얘기를 안 했다. 일 얘기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밥이 먹혔다.
첫 휴가, 하루 반짜리였다. 서영이 가방을 챙기는데 팀장이 모니터에서 눈도 안 떼고 말했다.
"서영님 가지 마세요."
당연히 농담이었다. 서영도 웃고 나왔다. 근데 그 말이 지하철에서도, 그날 밤에도 떠올랐다.
처음으로 업무가 아닌 걸 보낸 날.
"속 갠찮으세요?"
보내고 괜히 창을 닫았다. 답이 왔다.
"커피 한잔?"
서영이 데이터 구조 이야기를 한참 하던 날이 떠올랐다.
십 분째.
로그 흐름이 꼬여있는 부분. 데이터가 중복 적재되는 부분. 어디서 빠지는지. 어디서 겹치는지.
팀장은 듣고 있었다. 끝까지.
그리고 한마디.
"그거 설계 문제잖아."
십 분 동안 현상을 말하고 있었는데. 한 줄로 정리가 됐다.
다른 날.
사용자 이탈 데이터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디서 떨어지는지. 어디서 머무는지.
팀장은 화면을 한 번 보고 말했다.
"그래서 다음은?"
서영은 다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뭐가 빠져있는지만 봤다. 빠진 걸 찾는 건 눈 감고도 했지만, 그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한 번도.
또 다른 날.
서영이 만들고 싶은 것들 이야기를 한참 했다. 데이터 해석. 정보 설계. AI. 두서없이. 십 분 넘게.
팀장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하고 싶은 게 생겨서 다행이다."
아이디어에 대한 피드백이 아니었다. 좋다 나쁘다도 아니었다. 그때는 뭘 들은 건지 몰랐다.
서영은 회의 때마다 적었다. 팀장 말, 농담, 다음에 볼 것들. 노트가 빽빽했다.
팀장이 한번 봤다.
"뭘 그렇게 적냐."
"안 적어두면 까먹어서요."
팀장은 안 적었다. 결론만 들고 나갔다. 서영은 과정을 통째로 들고 나왔다. 같은 회의에 앉아서.
언젠가 큰 설명회에 서영은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저는 그냥 현황 파악차..."
"참석하시고 렙업만 해주세요."
렙업. 팀장은 늘 그런 식이었다. 일감이 아니라 높이를 줬다.
밤새 정리한 문서를 새벽에 올린 날. 아침에 답이 와 있었다.
"한 번 해봤다고 진도 많이 뽑았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 업계에 몇 명 안 될 듯."
서영은 웃음이 터졌다. 그 사람은 칭찬을 거의 안 했다. 그래서 한 번 나오면 무거웠다.
별일 없는 월요일이었다.
"커피 사주세요."
사연은 안 붙였다.
"갑시다."
그런 걸 청할 수 있게 되기까지, 반년이 걸렸다.
팀장이 언젠가 그랬다. 서영이 꼭 각인된 오리새끼 같다고. 너무 깊게 맞춰진 걸 들킨 기분이었다. 팀장은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날은 안 울고 넘어갔다.
복도. 파티션. 폰부스.
늘 같은 자리들마다 작은 게 하나씩 있었다. 회의실 들어갈 때 "왔어?" 한마디. 파티션 너머로 "그거 됐어?" 폰부스에서 울고 나오면 모른 척해주는 침묵.
위로도 칭찬도 아니었다. 그냥 거기 있다는 표시 같은 것들.
회의가 조용해진 건 그쯤이었다. 조금씩, 농담이 줄었다. 잡담이 줄었다. 업무 이야기만 했다. 마감을 더 조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서영은 그런 걸 잘 봤다. 아니, 그런 것만 너무 잘 봤다. 말 바뀐 거, 숨 고른 거, 눈 안 마주친 거. 전부 저장됐다. 안 봐도 되는 건데, 봤다.
소문이 돌았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나가면 내가 곤란한데.
예감은 분석 결과가 아니었다. 갑자기 불안해지는 종류의 앎. 근거가 없었다, 숫자가 없었다, 정황도 희미했다. 근데 잠이 안 왔다.
팀장이 휴가 간 날.
별일 없겠지.
잔소리 좀 하고 있으라셨는데. 충분히 하고 있었다.
근데 좀 불안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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