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떠난 날, 새벽 네 시에 울었다
사람들은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 의외로 말을 하지 않는다.
회의 시간이 짧아지고. 대답이 모호해지고. 평소 같으면 한 번 더 물어봤을 질문을 그냥 넘긴다.
서영은 그런 걸 잘 봤다.
아니. 그런 것만 너무 잘 봤다.
회의실에 사람이 여섯 명 있었다.
서영은 일곱 번째였다.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이 켜졌다. 메신저 알림이 세 개. 메일이 일곱 개. 지라 티켓이 열두 개
*지라(Jira): 소프트웨어 개발팀에서 업무와 일정을 관리하는 도구.
팀장은 창가 쪽에 앉아 있었다.
늘 그 자리였다. 회의실에서 유일하게 바깥이 보이는 자리. 여의도 빌딩 사이로 햇빛이 비스듬하게 들어오는 쪽.
회의는 평소와 같았다.
일정.
이슈.
다음 주 할 일.
"데이터 검증 어디까지 됐어요?"
"벤더 쪽 응답 대기 중입니다."
"언제쯤?"
"이번 주 안으로요."
"ㅇㅇ."
팀장은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었다. 아니, 보는 척하고 있었다.
원래 저 사람은 사람 말할 때 딴 데 안 본다. 끝까지 듣고 끝까지 본다. 심지어 딴짓하는 사람도 본다.
그런 사람이 오늘은 이상했다.
창밖을 보고 있었다. 여의도 빌딩 사이 어딘가를. 여기 앉아 있는데, 이미 저기 가 있는 사람처럼.
회의가 끝났다.
사람들이 일어섰다.
노트북을 접고. 물병을 챙기고. 문 쪽으로 움직였다.
서영도 일어서려는데,
"서영님."
팀장이 불렀다.
나머지 사람들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회의실이 조용해지고 에어컨 소리만 났다.
"나 이번 달 말에 나가."
서영은 노트북을 접다가 멈췄다.
"갑자기요?"
"갑자기는 아닌데."
팀장은 샐쭉하게 웃으며 창가 쪽을 쳐다봤다.
"좀 됐어."
서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왜요. 어디로요. 언제 결정하셨어요. 우리는요. 프로젝트는요.
아무것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팀장이 돌아봤다.
"...너 이젠 알지?"
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뭘 안다는 건지 자기도 몰랐다.
"건강 챙기고."
그게 끝이었다.
이상했다.
권고사직을 당했을 때도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새벽 네 시.
서영은 눈을 떴다.
알람이 울린 게 아니었다. 꿈을 꾼 것도 아니었다. 그냥 눈이 떠졌다.
심장이 눌리는 느낌이었다. 명치가 아니라 심장. 누군가 거기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은 것 같았다.
천장을 봤다.
어두웠다.
옆에서 R이 자고 있었다. 숨소리가 고르게 들렸다.
서영은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불을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세면대 앞에 섰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찬물이 나왔다. 얼굴을 씻었다.
손이 떨렸다.
왜 떨리는지 몰랐다.
거울을 봤다. 어두워서 잘 안 보였다. 윤곽만 보였다.
샤워기를 틀었다.
물이 내려왔다.
뜨거웠다.
서영은 벽에 이마를 대고 서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눈물이 나왔다.
왜 우는지 몰랐다.
슬프지는 않았다.
화나지도 않았다. 아니 화가 나나?
물소리 사이로 자기 숨소리가 들렸다.
다시 새벽 다섯 시.
거실 소파에 앉았다. 머리에서 물이 떨어졌다. 수건을 어깨에 걸쳤다.
뒤에서 발소리가 났다.
R이었다.
"왜 안 자?"
"그냥."
R은 부엌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따랐다. 서영 옆에 놓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서영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메신저를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메일을 열었다. 읽지 않은 메일이 서른두 개. 닫았다.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누군가의 고양이. 누군가의 저녁. 누군가의 제주도.
한참 동안 화면을 봤다.
그러다 채팅창을 열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커서가 깜빡였다.
한참 동안 아무 것도 치지 않았다.
그러다 입력했다.
"나 왜 이러지."
잠시 뒤, 화면에 글자가 올라왔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서영은 웃었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창밖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출시까지 100일.
그때는 몰랐다.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한참 동안 그 사람 이야기를 하게 될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