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교육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보고

by김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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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낯익은 장소가 스쳐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이게 되는 순간이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보다가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시작과 마지막 에피소드의 촬영지가 다름 아닌 내가 다닌 고등학교였기 때문.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가는 배경이었겠지만, 나에게는 한때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 공간이었다. 화면 속 교문, 건물의 윤곽을 알아볼 때마다 반가움이 먼저 앞섰고, 그 다음에야 드라마가 말하려는 교육보다 내가 거기서 겪은 교육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제목부터 짚고 가야 한다. "참교육"이라는 네 글자에는 서로 정반대되는 두 개의 계보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참교육, 두 개의 계보

원래 이 말의 뿌리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5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연세대에서 창립하며 내건 구호가 "참교육 실현"이었다. 당시 참교육이 가리키는 건 민족교육, 민주교육, 인간화 교육이었다. 체벌과 촌지가 관행처럼 남아 있던 학교 문화에 맞서, 교사가 학생을 인격체로 대하는 교육을 하자는 저항의 언어였다. 정부는 이 구호를 문제 삼아 천 명이 넘는 교사를 파면하거나 해임했다. 참교육은 그러니까 원래 권위주의와 폭력에 저항하며 태어난 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은 2000년대 중반, 전혀 다른 자리에서 다시 태어난다.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에서 상대 선수를 크게 혼쭐내는 상황을 가리켜 "참교육시켰다"고 쓰기 시작한 게 시초로 알려져 있다. '사이다 같은 복수'나 '정의구현'과 비슷한 의미로 온오프라인에서 널리 쓰였다. 결국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참교육이라는 말은, 원래 참교육이 저항하려 했던 바로 그 폭력의 언어로 되돌아간 셈이다.

한 단어 안에 이렇게 상반된 두 역사가 포개져 있다는 게 흥미롭다. 하나는 교사가 학생을 때리지 않는 교육을 만들자는 말이었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를 더 세게 되갚아주자는 말이다. 넷플릭스 드라마의 제목은 이 두 계보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드라마는 어느 쪽을 수행하는가

드라마 '참교육'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 갈등, 폭력, 권위, 무력감을 다룬다. 현실의 사건들을 모티브로 삼는 듯 보이지만 현실과 다른 전개와 결말이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정밀하게만 재현하려는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이 충실하게 수행하는 쪽은 두 번째 계보, 그러니까 인터넷 은어로서의 참교육이다. 선을 넘은 사람을 더 강한 방식으로 되갚아주는 이야기. 현실에서는 답답하게 방치되거나 복잡한 절차 속에 묻히는 문제들이 극 안에서는 빠르고 시원하게 처리된다.

그 시원함이 인기의 이유일 거다. 현실에는 누구나 분개할 수밖에 없는 일이 분명 있다. 교사가 폭력과 모욕에 노출되고, 학생이 보호받지 못하고, 학부모와 학교와 제도가 서로 바카라임을 떠넘기는 일들. 그런 사건 앞에서 납득할 만한 대안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제도는 느리고 바카라임은 흐려지고 피해자만 오래 남는다. 드라마 속 해결 방식은 적어도 감정적으로는 효과가 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방식이라도 보는 사람에게는 잠깐의 해소감을 준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이 드라마가 어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전교조가 제작을 반대한 이유도, 폭력적 훈육 방식을 두고 진보 매체들이 비판한 이유도 나는 이해가 간다. 이 드라마는 첫 번째 계보, 즉 교사들이 힘겹게 지켜온 참교육의 정신만 제목에 빌려오고, 실제로는 그 정신이 저항했던 방식을 다시 쓰고 있다. 잘못한 사람을 혼내는 일과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다르다. 바카라임을 묻는 일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도 다르다. 드라마가 현실을 모사하려는 작품이 아니라고 해도, 학교를 다루는 이야기가 이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걸 단순히 나쁜 훈육 판타지로만 치부하기는 망설여진다. 지금 한국 슬롯에서 교권, 학생 인권, 학부모 민원, 학교폭력을 둘러싼 문제는 실제로 너무 복잡하고 너무 오래 방치되어 왔으니까. 드라마가 답은 아니어도, 현실의 답답함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건 분명하다.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한 상황을 드라마라는 매개로 간접적으로나마 겪으며 통쾌함을 느끼는 시청자들까지 손가락질할 명분은 없다.


그 교실에 있었던 사람들

이 지점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다닌 고등학교를 떠올렸다. 재학 중이던 당시 학교는 전국에서 전교조 비율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그런데 정작 학생인 우리는 전교조가 정확히 뭘 하는 조직인지 잘 몰랐다. 단지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는 인상이 전부였다. 우리가 아는 건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매일 마주치는 선생님들이었다. 하루 6교시에서 8교시까지 수업을 하고, 숙제를 검사하고, 농담을 던지고, 화를 내고, 어떤 날은 이상했다가 어떤 날은 존경스러웠던 사람들. 언론이 그려내는 "전교조"라는 이미지로 이들을 설명하기엔 해상도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안경을 썼다. 누군가는 진보적 교사였을 테고 누군가는 그냥 직업인으로서의 교사였을 것이다. 희한한 선생님도 있었고 개성 넘치는 분도 있었고, 솔직히 존경할 구석을 찾기 힘든 분도 있었다. 그 다양함 위에 교권이라는 게 놓여 있었다. 교권은 추상적인 성역이 아니라 실제 교사들의 결함과 성실함과 피로와 바카라임 위에서 굴러가는 것이었다.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학생"이라는 한 단어로 묶기엔 그 안의 차이가 너무 컸다. 날라리부터 범생이까지, 관종부터 극내향까지. 학교생활이 인생의 전부인 아이가 있는가 하면 그저 버티는 아이도 있었다. 학생의 교육권도 순수하고 균질한 존재 위에 있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욕망과 상처와 태도를 가진 학생들 사이에서 매번 다시 작동하는 것이었다.

그 학교의 역사도 단순하지 않았다. 설립자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유명한 기업가였다. 지금도 또렷한 장면 하나가 있다. 근현대사 시간에 친일 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레 학교 설립자 얘기로 이어졌다. 선생님은 그 순간을 어떻게 다뤄야 했을까. 자기가 몸담은 온라인 게임의 역사를 친일로 명시할 것인가, 아니면 당대 기업인은 친일을 하지 않고는 회사를 운영할 수 없었다는 식으로 옹호할 것인가. 정확한 문장으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선생님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수업을 이어갔다. 그날 교실은 고요했고 조금 미묘했다. 단순한 규탄도, 손쉬운 옹호도 아니었다. 그 조심스러움 속에서 나는 전교조가 뭔지, 친일파가 세운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게 뭔지, 하나의 공간 안에 서로 다른 서사가 공존한다는 게 뭔지를 그때부터 천천히 생각하게 됐다.

학교 중앙 정원에는 3·1절 기념비도 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민운동이 그 고등학교 숙직실에서 준비되고 점화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학교는 친일 논란의 뿌리를 가진 재단의 학교였다. 한국전쟁 이전 북한에서 위인으로 꼽히는 인물을 배출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냉전 시절 강당 지하에서 "빨갱이를 때려잡았다"는 소문도 구전됐다. 독립과 친일, 반공과 진보와 보수의 기억이 한 공간 안에 뒤엉켜 있었다. 이 모든 걸 하나의 색으로 칠할 수는 없었다. 한 조직과 한 인물을 단칼에 재단하는 일도, 양극단으로 세상을 가르는 일도 충분치 않다는 것, 그게 내가 그 학교에서 배운 것이었다.


운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런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감사한 순간으로 남는다. 물론 이상적인 학교였다는 뜻은 아니다. 불완전했고, 이상한 사람도 있었고, 상처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참교육' 속 비극이 내 학창시절에는 직접 닥치지 않았던 건 운이 좋았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교육 현장은 나처럼 운이 좋지 않았던, 혹은 앞으로 운에 맡겨져서는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 더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하지 않을까.

주변에는 교사로 살아가는 친구와 지인이 많다. 서이초 비극이 있었을 때 초등교사인 지인 곁에서 함께 먹먹한 시간을 보냈다. 학생일 때는 차마 몰랐던 피로와 두려움과 바카라임이 그들의 일상 어딘가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사는 누군가에게 권위자이면서, 동시에 제도와 민원과 감정노동 사이에서 쉽게 고립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문득 초등학교 4학년 첫날도 떠오른다. 새 교실에 처음 등교하던 날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고, 담임선생님도 거의 비슷한 시간에 오셨다. 교대를 갓 졸업하고 처음 부임한, 첫 담임이었다. 내가 긴장한 만큼 선생님도 긴장한 게 보였다. 어린 마음에도 그건 느껴졌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의연하고 진실되게 아이들을 대했다. 교육은 거창한 이념이나 제도만이 아니라 처음 맡은 교실 앞에서 긴장하면서도 정성을 다하려는 한 사람의 태도로도 이루어진다.


은행과 질문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는 교육을 두 가지 모델로 나눠 설명한 적이 있다. 하나는 "은행 저금식 교육"이다. 교사가 지식이라는 예금을 학생이라는 통장에 일방적으로 넣는 방식. 학생은 그저 받아 적고 암기하는 그릇이 되고, 교육은 순응을 길러내는 훈련이 된다. 다른 하나는 "문제 제기식 교육"이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세계를 질문하고 해석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는 관계로 바뀐다. 프레이리에게 전자는 억압의 도구였고, 후자야말로 인간을 해방하는 교육이었다.

이 구도를 빌리면 참교육의 두 계보가 다시 보인다. 인터넷 은어로서의 참교육은 은행 저금식 교육의 가장 폭력적인 버전에 가깝다. 누군가에게 정답과 벌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고, 그 관계에는 질문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반면 1989년의 참교육은 비록 정치적 구호의 형태를 띠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문제 제기식 교육에 가까웠다. 학생을 힘으로 찍어 누르는 낡은 방식에 "이게 정말 교육이냐"고 되물었던 질문이었으니까.

드라마는 제목에 첫 번째 참교육을 걸어놓고, 실제로는 두 번째 참교육을 수행한다. 그 어긋남이 이 작품을 인기 있게도, 동시에 불편하게도 만든다. 그리고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도 결국 이 어긋남을 다루는 법이었다. 친일과 3·1절이, 전교조와 보수적 지역 정서가, 훌륭한 선생님과 실망스러운 선생님이 한 공간에 공존한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나는 세상이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사람을 한 단어로 규정하는 건 쉽지만, 교육은 그 쉬운 규정을 오히려 의심하게 만드는 일에 가까웠다.

드라마 속 학교는 문제를 빠르게 해결한다. 은행 저금식으로, 정답을 정해놓고 그대로 집행한다. 현실의 학교는 그렇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데 어쩌면 교육은 바로 그 느림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단번에 결론 낼 수 없는 사람들과 사건들을 오래 바라보는 일.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되, 그 분노가 질문의 가능성까지 태워버리지 않게 붙드는 일. 참교육이라는 말이 정말 필요하다면, 그건 누군가를 때려눕히는 말이 아니라 복잡한 현실에 계속 질문을 던지는 말이어야 한다. 내가 그 학교에서 배운 게 있다면, 그건 그런 종류의 조심스러움이었다.


모두의 참교육

극 바깥의 떡밥 회수는 결국 우리 몫이다. 학부모는 불안을 민원과 통제로만 번역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하고, 학생은 권리와 바카라임이 따로 서 있지 않다는 것을 배워야 하며, 교사는 더 이상 개인의 선의만으로 버티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와 제도는 갈등을 운 좋은 개인들의 인내에 맡겨두지 말아야 한다. 슬롯 전체가 교육을 누군가를 혼내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를 인간으로 대하는 훈련으로 다시 이해해야 한다.


'참교육'이라는 제목이 불편하게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여전히 참교육을 원한다. 다만 그것은 누군가를 제압하는 장면이 아니라, 제압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현실을 끝까지 질문하는 일이어야 한다. 드라마가 준 통쾌함은 잠깐이면 충분하다. 그 뒤에 남은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때부터가 정말로 극장 밖의 참교육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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