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시브 어택,'시대유감'을 불렀더니 시대유감이 시작됐다

후지록과 펜타포트에서 본 매시브 어택

by김원상

일주일 사이 나는 같은 밴드의 공연을 두 번 봤다. 두 공연의 핵심 영상과 담론은 유지하되, 번역과 일부 데이터·뉴스·정치 정보가 지역별로 달라졌다. 7월 26일 일본 후지록페스티벌 마지막 날, 매시브 어택은 그린 스테이지의 마지막을 맡았다. 일주일 뒤인 8월 1일에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둘째 날 헤드라이너로 같은 시간대에 무대에 올랐다.


후지록에서 가장 큰 무대인 그린 스테이지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가족적이었다. 국민성 같은 말로 일반화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그날 그 자리의 관객들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거대한 화면이 쏟아내는 무거운 메시지를 환호로 덮는 대신 가만히 받아내고 있었다. 공식 현장 리포트의 제목도 '분노를 조용히 계속 불태우고 있다'였다. 공연은 앙코르 없이 끝났다. 마지막 〈Teardrop〉 때, 그토록 많은 정보가 지나가던 화면은 검게 비어 있었다. (후지록 공식 일정, 현장 리포트)


펜타포트는 달랐다. 공연이 시작될 때 무대 앞을 가득 채웠던 관객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공연 도중에 빠져나갔다. 내가 그동안 봐온 다른 헤드라이너 무대들과 비교해도 눈에 띄는 장면이었다.


그 이유가 정치적 메시지에 대한 거부라고 단정할 수 없다. 관객들을 붙잡고 물어본 것도 아니다. 막차와 교통, 폭염에 누적된 피로, 다음 날 일정, 느리게 전개되는 음악, 그리고 끊임없이 읽어야 하는 자막까지. 떠날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이 공연이, 페스티벌 헤드라이너에게 통상 기대하는 즉각적인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에서 꽤 멀리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후지록 관객이 더 성숙했다거나 펜타포트 관객이 메시지를 견디지 못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하나는 산골짜기 숲속에서, 다른 하나는 도심의 공원에서였다. 축제마다 다른 동선과 문화, 시간표와 관객 구성이 만든 장면일 수 있다.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다. 같은 무대가 서로 다른 축제의 리듬 속에서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순간을, 운이 좋게도 일주일 간격으로 직접 봤다는 것.


그날 공연의 주연은 전광판이었다

보통 대형 공연은 연주자의 얼굴과 몸짓을 확대한다. 카메라는 보컬의 표정을 좇고, 스포트라이트는 스타가 무대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시킨다.


매시브 어택은 정반대로 갔다. 두 공연 모두 연주자를 향한 조명이 극단적이라 할 만큼 절제돼 있었다. 로버트 델 나자와 그랜트 마셜은 물론, 엘리자베스 프레이저나 호러스 앤디, 데버라 밀러 같은 보컬리스트들도 대부분 어둠과 실루엣 속에 머물렀다. 연주자 얼굴을 친절하게 보여주는 클로즈업도 거의 없었다.


가장 밝은 빛과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건 무대 뒤편의 거대한 전광판이었다. 그날의 주연은 로버트 델 나자도 게스트 보컬도 아닌, 말 그대로 '간판'이었다.


〈Angel〉, 〈Unfinished Sympathy〉, 〈Teardrop〉 같은 히트곡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곡들조차 관객을 안심시키는 떼창의 안전지대로 쓰이지 않았다. 화면은 음악을 설명해주는 배경 영상이 아니라, 음악과 대등하게 관객을 압박하는 또 하나의 연주자였다. 음악과 영상 중 한쪽만 떼어놓고는 그 공연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화면은 관객의 얼굴을 포착해 허구의 신상정보를 붙였고, 팔란티어의 감시·전쟁 인프라와 알고리즘이 인간을 분류하는 방식을 조롱했다. 콩고에서 코발트를 캐는 아이들과 그 광물로 쌓이는 먼 나라의 부, 가자와 우크라이나의 희생자, 무기산업에 돈을 대는 사모자본과 은행과 자산운용사, 트럼프와 푸틴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차례로 지나갔다. 희생은 국경 안에 갇혀 있는데 이익은 세계의 금융망을 따라 이동한다는 고발이었다.


그런데 전광판에 흐른 게 단정적인 주장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하나 따라 읽기 버거울 만큼 많은 정보와 질문이 화면을 가로질렀다. 그 속도와 밀도 탓에 어떤 문장은 읽는 순간 다음 문장에 밀려 사라졌다. 정보의 시대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정보에 압도돼 맥락을 잃는 경험 자체를 관객에게 돌려주는 방식이었다.


질문들은 대략 이런 방향으로 몰려왔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내린다고 믿는 선택은 어디까지 나의 것인가. 알고리즘이 골라준 세계 안에서 나는 정말 자유롭게 판단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복잡한 세계에서, 나는 판단할 권리를 누구에게 위탁해버렸는가.


매시브 어택은 자기 입장이 어디를 향하는지 숨기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데이터 전시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관객에게 구호를 복창시키거나 모든 문제를 하나의 정답으로 봉합하지도 않았다. 외부의 권력자를 겨누던 시선은 결국 객석의 '나'에게 돌아왔다. 결론의 방향은 제시하되, 최종 판단의 부담은 다시 개인에게 돌려주는 문법이었다.


로버트 델 나자도 이 공연을 정보화 시대와 통제, 권력, 극단적 개인주의, 포퓰리즘, 음모론이 슬롯를 분열시키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자동화된 세계에서 창작하는 개인, 판단하는 개인이 어디에 놓이는지도 핵심 주제다. (델 나자와 UVA의 인터뷰)


그래서 화면 속 공격적인 문장 몇 개만 발췌해 공연 전체를 선전이나 선동으로 규정하면, 그 문장들 사이를 메우고 있던 질문의 홍수와 개인의 판단을 요구하던 공연의 문법이 통째로 사라진다. 한 문장을 맥락에서 떼어내 공연을 진영 표식으로 바꾸는 순간, 이들이 비판한 바로 그 '맥락 붕괴'가 객석에서 재현되는 셈이다. 맥락에서 잘려 나온 한 문장이 플랫폼 알고리즘을 타고 진영의 표식으로 소비되는 순간, 알고리즘을 비판한 공연은 역설적으로 그 알고리즘의 작동을 입증하게 된다.


매시브 어택에게 화면과 정치는 부가적인 기능이 아니다

이 무대를 '갑자기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변한 공연'으로 읽으면 맥락을 놓친다.


매시브 어택은 특정 정치 캠페인을 위해 급조된 팀이 아니다. 1991년 데뷔작 《Blue Lines》 이후 브리스톨 사운드와 트립합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수십 년간 세계 주요 공연장과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사랑받아온 밴드다. 음악적 성취와 역사만으로도 어느 록 페스티벌에서든 섭외될 이유가 차고 넘친다.


동시에 정치적 영상이 이들의 음악에 나중에 붙은 장식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매시브 어택은 이미 2003년부터 유나이티드 비주얼 아티스츠(UVA)와 함께 정치·경제 통계와 현지 뉴스가 흐르는 거대한 LED 화면을 공연의 중심에 뒀다. 현재 투어 역시 델 나자와 UVA, 다큐멘터리 감독 애덤 커티스가 함께 설계했다. 공식적으로 내건 주제부터가 알고리즘의 편향, 가짜뉴스, 맥락 붕괴, 군산복합체다. (UVA의 투어 소개, 매시브 어택의 공연 아카이브)


델 나자는 공연의 핵심 영상과 담론은 나라가 바뀌어도 유지되지만, 현지 번역가와 연구자들이 그 지역의 뉴스·정치·정보를 채워 넣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전 세계에서 한 글자도 안 바꾼 동일한 공연'도, '인천에서 누군가 정치적 내용을 새로 주입한 공연'도 아니다. 공통의 골격을 지역의 언어와 기억에 연결하는 것. 이들이 오랫동안 써온 방식이다.


엄밀히 말하면 매시브 어택은 전형적인 기타 록 밴드라기보다 브리스톨의 사운드시스템 문화와 힙합, 덥, 펑크의 감각이 뒤섞인 집단이다. 그래도 이들의 태도는 록 페스티벌이 이어온 중요한 전통, 그러니까 전쟁과 권력과 주류 질서에 질문을 던져온 계보와 맞닿아 있다.


물론 록의 본질이 곧 저항이라는 말은 아니다. 록에는 유희도 상업도 도피도 있다. 그래도 록 페스티벌에 정치적 메시지가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를 장르의 일탈처럼 취급하는 건 그 역사의 상당 부분을 도려내는 일이다. 반대로 "록은 원래 저항이니 무대 위 모든 문장은 옳다"고 하는 것도 또 다른 교조주의다. 저항의 전통이 사실 검증까지 면제해주지는 않으니까.


왜 하필 〈시대유감〉이었을까

일본에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장면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이었다. 앞서 여러 언론은 매시브 어택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곡을 리메이크했다며 헤드라인을 띄웠다.


〈시대유감〉은 삼풍백화점 붕괴로 드러난 슬롯의 무바카라임을 바라보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곡이다. 기성 권력의 위선, 정직한 사람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를 공격적인 얼터너티브 록에 담았다. (〈시대유감〉의 창작 배경)


1995년 한국공연윤리위원회가 슬롯 비판적인 가사를 고치라고 요구하자 서태지는 거부했다. 가사를 고치는 대신 아예 노랫말을 전부 빼고 연주곡만 4집에 실었다. 팬들의 항의는 정태춘을 비롯한 음악인들이 오래 벌여온 사전심의 철폐운동에 대중적 증폭제가 됐고, 법 개정과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거치며 음반 사전심의는 사라졌다. 가사를 복원한 〈시대유감〉은 1996년 싱글로 다시 나왔다. (서태지 공식 설명, 국가기록원의 대중문화 검열 기록)


그러니 매시브 어택의 〈시대유감〉은 낯선 한국 노래를 빌린 팬서비스라기보다, 한때 제도에 목소리를 빼앗겼던 노래를 현재로 다시 불러내는 행위에 가깝다.


밴드 스스로도 2026년, 기업에 의한 문화의 흡수와 정치적 표현을 이유로 한 예술가 검열이 다시 커지는 상황에서 이 곡의 역사가 중요한 교훈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커버를 서태지를 향한 '연속성, 부활, 연대의 행위'라고 불렀다. 공개된 제작 크레딧으로 보면 서태지나 서태지컴퍼니와의 공동 협업한 것이라고보다 매시브 어택이 독자적으로 구성한 라이브 커버다. 원곡의 빠르고 공격적인 록·펑크 골격도 느린 트립합으로 눅이지 않고 강한 밴드 사운드로 밀어붙였다. (밴드의 커버 설명)


〈시대유감〉 자체가 5·18을 다룬 곡은 아니다. 매시브 어택은 이 노래를 광주와 노동자·학생들의 대정부 시위 영상에 연결해, 한국 민주화 역사의 더 긴 흐름 안에 배치했다. 검열과 권위주의에 맞선 저항의 연속성으로 볼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시대와 사건을 너무 넓게 묶은 몽타주라고 비판할 수도 있는 연결이다.


같은 몽타주라도 두 나라에서 똑같지는 않았다. 후지록에서는 5·18 당시의 참혹한 장면들이 모자이크 없이 지나갔는데, 펜타포트에서는 같은 장면들이 전부 모자이크 처리돼 있었다. 누가 어떤 판단으로 편집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니 의도를 사실처럼 못 박을 수는 없다. 다만 두 공연을 연이어 본 내게 그 차이는 검열이라기보다, 국민적 트라우마를 한국 관객에게 다시 꺼내 보이는 방식에 대한 배려로 읽혔다. 메시지는 유지하되 지역의 기억과 감각에 맞춰 표현의 강도를 조정한 것. 적어도 한국 관객을 자극해서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 했다는 해석과는 잘 맞지 않는 장면이었다.


중요한 건 이 구성이 올해 5월 27일 헬싱키에서 열린 투어 첫 공연부터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이후 유럽 공연과 후지록에서도 반복됐다. 인천에서 처음 만들어진 장면도, 한국 관객만을 위해 급조된 연출도 아니라는 얘기다. 적어도 이 몽타주가 인천에서 처음 급조됐다는 추정의 설득력을 크게 낮추는 대목이다. (헬싱키 첫 공연 보도)


'지원했다'라는 동사

펜타포트 전광판에 나온 정확한 문구는 이렇다.

"1980년 미국은 광주에서 한국 정부가 자행한 민간인 학살을 지원했다."


이 문장을 역사 교과서의 한 문장처럼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이 논쟁의 한 가운데에 있다. 국가기록원의 5·18 연표에는 신군부가 광주 진압에 필요한 20사단 병력 사용을 미국으로부터 승인받았다고 서술돼 있다. 공개된 미국 외교문서에서도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5월 27일 최종 진압 하루 전에 작전 계획을 통보받은 사실이 확인된다. (국가기록원 5·18 기록, 공개 외교문서 보도)


공개 문서는 미국이 20사단 투입을 협의·수용했고, 5월 22일 백악관 회의에서 광주의 질서 회복을 우선하며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았고, 5월 26일 최종 재진입 계획을 미리 통보받았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미국이 신군부의 무력 진압을 정치·군사적으로 용인하고 뒷받침했다는 평가는 사료상 근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이 최초의 특전사 투입이나 발포·학살을 명령하고 직접 지휘했다는 증거와 같은 것은 아니다. (1989년 미국 정부 성명 원문)


그러니까 화면의 ‘지원했다’는 최종 재진입 계획의 사전 인지, 20사단 투입에 대한 동의·수용,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은 정바카라 판단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지원’이라는 하나의 동사에 눌러 담은 표현이다. 근거 없는 날조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논쟁의 여지가 없는 정밀한 역사 서술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정치적 고발을 위한 압축에 가깝다.


그 압축이 적절했는지 따지는 건 정당하다. 다만 문구를 다르게 인용해놓고 곧장 역사왜곡으로 단정하거나, 반대로 공연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이유로 문구에 대한 질문 자체를 막아버리면 토론은 시작도 전에 끝난다. 예술적 몽타주라는 사실이 비판을 막아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 비판은, 작품이 실제로 무엇을 말했는지 정확히 읽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문장에 대한 비판이 배후설로 이동할 때

국내에서 가시화된 반응은 곧 익숙한 좌우의 문법으로 번역됐다.


처음엔 '지원했다'라는 표현의 역사적 정확성이 쟁점이었다. 논쟁은 곧 화면 속 문장이 옳은지 따지는 단계를 지나, 누가 그 문장을 만들었는지를 추정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이범석 인천시의원은 국내 관계자의 개입 가능성을 암시하고, 주최 측이 리허설 등을 통해 내용을 사전에 인지했는지와 그 바카라임을 물었다. 별도의 온라인 논쟁에서는 공연장에서 관객에게 물을 뿌린 소방차를 두고 행정력과 세금 낭비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록이 좌파의 문화인지, 우파의 것인지로 싸우기 시작했고,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이 좌파의 이벤트라는 손가락질이 행해졌고, 정치색이 있는 페스티벌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아예 정치색이 있는 밴드를 부르면 안 된다는 얘기도 나왔다.


현재까지 인천시가 영상 내용을 지시했다거나 외압을 가했다는 공개된 증거는 없다. 문제의 5·18 몽타주는 인천보다 두 달 앞서 헬싱키에서 시작됐고 후지록에서도 사용됐다. 오히려 한국 공연에서는 참혹한 장면들이 모자이크 처리돼 표현의 강도가 낮아졌다.


행정력 낭비로 지목된 소방차의 물 살포도 올해 처음 등장한 정치적 장치가 아니다. 이번 현장 보도들부터가 살수차와 쿨존, 샤워시설을 폭염 대바카라으로 소개하면서 살수차를 '펜타포트의 상징 중 하나'라고 부른다. (2026년 현장 보도, 2025년 물 살포 현장)


의혹을 제기할 자유는 있다. 다만 의혹이 사실의 자리를 차지하려면 주장 너머에 그만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후지록 이후이자 펜타포트에 앞선 7월 29일, 싱가포르 공연에서 델 나자와 마셜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펼치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싱가포르 당국은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채 밴드 멤버 두 명을 조사해 엄중 경고하고 재입국을 금지했다. 현장 영상과 보도는 이 두 사람이 델 나자와 마셜임을 보여준다. 밴드는 이와 별개로 전체 밴드가 경찰에 붙잡혀 각각 분리돼 조사받았고, 일부 멤버의 호텔 객실이 수색됐으며 여권도 일시적으로 압수됐다고 주장했다. 이 내용은 밴드 측 설명이며 싱가포르 당국이 별도로 확인한 사실은 아니다. (AP 보도, 밴드의 추가 주장 보도)


이 사건은 매시브 어택이 개최 도시의 주문을 받아 갑자기 정치화되는 팀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그렇다고 일관된 신념이 모든 주장의 정확성을 보증하느냐 하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제다. 일관성은 이들의 정치적 태도가 개최 도시의 주문으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님을 보여줄 뿐, 현지화된 개별 문구의 작성 경로와 사실성까지 보증하지는 않는다.


동시에 매시브 어택의 메시지들이 각 나라의 맥락 안에서 어떻게 백래시를 받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공지원은 사상 일치의 계약이 아니다

이범석 인천시의원은 관련 내용을 인천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따지겠다고 밝혔다. 시의회가 피감기관의 행정을 살피는 절차다. (관련 보도)


공공예산이 들어간 행사라면 계약과 안전관리, 예산 집행과 섭외 과정은 당연히 감사할 수 있다. 그러나 절차를 감사하는 것과 무대의 사상을 심사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주최자와 공연자가 같은 정치적 견해를 가질 필요도 없다. 누군가를 무대에 세운다는 게 그가 말할 모든 문장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공공지원은 지자체의 정치적 승인 도장이 아니고, 공연 내용을 편집할 권리를 사는 대가도 아니다.


모든 미섭외가 검열인 것도 아니다. 페스티벌에는 제한된 무대와 고유한 기획 방향이 있다. 그러나 공공축제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일치하는 예술가만 골라 세우고,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연자를 배제하거나 이미 확정된 출연을 문제 삼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거야말로 정치적 선별과 검열, 블랙리스트의 논리에 가까워진다.


공공축제의 민주성은 정치색 없는 예술가만 골라 세우는 데 있지 않다. 지원기관과 다른 견해를 가진 예술가도 무대에 설 수 있게 거리를 지키는 데 있다. 표현을 허용하는 것과 그 표현에 동의하는 것은 다르다.


헬싱키와 일본, 싱가포르의 주최자들이 매시브 어택의 모든 정치적 견해에 동의해서 초청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매시브 어택의 음악적 위상과 공연의 완성도만으로 섭외 이유는 충분하다. 여기에 숨은 국내 정치적 의도를 먼저 덧입히는 쪽이 오히려 무리한 해석이다.


반대편의 반응도 마냥 생산적이지는 않다. 비판자들을 '록도 모르는 사람'이나 '반동적 검열주의자'로 한데 묶어 조롱하면, 역사 표현의 정확성을 따져볼 기회가 사라진다. 물론 예산과 감사 권한을 가진 정치인의 압박과 온라인의 조롱은 영향력의 무게가 같지 않다. 그래도 본론을 보기 전에 사전 사상검증처럼 상대의 정체성부터 판정한다는 점에서, 사고방식은 서로 닮았다.


결국 필요한 건 찬반 사이의 무색무취한 중간지대가 아니라, 더 정확하게 묻는 태도다. 이 메시지는 누가 만들었나. 여러 도시에서 반복된 건 무엇이고 현지화된 건 무엇인가. 화면 속 문장은 확인된 사실인가, 해석인가, 정치적 압축인가. 공공기관은 무엇을 감사해야 하고 어디서부터는 예술적 거리를 지켜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표현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허용할 수 있는가.



요컨대, 세 가지를 염두에 두면 이번 일을 조금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독해할 수 있겠다.

1. 작품의 맥락을 읽는 일이 개별 문장의 사실성을 면제하지는 않는다.

2. 개별 문장의 부정확성이 작품 전체를 하나의 진영 표식으로 환원할 권리를 주는 것도 아니다.

3. 표현을 허용한다는 것과 그 표현에 동의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내 상식에 가해진 대규모 습격

두 번째 공연이 끝났을 때 내게 남은 건 헤드라이너다운 해방감이 아니라 묵직한 후폭풍이었다.


한여름 늦은 밤, 느리고 끈적하게 늘어지는 트립합의 저음 속에서 나는 어느 순간 공연을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을 되짚고 있었다. 내가 누려온 편리함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모르기로 선택했는지, 세계를 판단할 때 누구의 언어를 빌려왔는지. 하나씩 불려 나왔다.


특히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심취해 그 효율과 발전을 이야기해온 내 머릿속에, 이 공연은 정확히 명중했다. 나는 팔란티어나 알고리즘을 이용한 거대 기술기업을 멀찍이서 심판할 수 있는 객석 밖의 존재가 아니었다. 이미 그 세계의 사용자였고 소비자였으며, 어쩌면 자발적인 구성원이었다.


내가 기술을 이용한다고 믿는 동안, 기술은 나를 어떻게 분류하고 있었을까. 내 취향과 판단은 어디까지 내 것이었을까. '기술은 결국 쓰는 사람의 문제'라는 익숙한 상식은, 바카라임을 너무 쉽게 개인에게 떠넘기면서 정작 기술을 설계하고 소유한 권력을 안 보이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매시브 어택은 내게 정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내가 너무 빨리 답을 골라온 습관을 공격했다. 편리함 속에 미뤄둔 질문들을 억지로 내 앞에 돌려세웠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 질문들은 저음의 잔향처럼 머릿속을 빠져나가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내가 살아온 삶과 머릿속 상식에 가해진 '대규모 습격'이었다.


그날 나는 록을 사랑한다는 게 기타의 굉음이나 군중의 도약, 해방감만 사랑하는 일은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누구의 사전 허가도 받지 않은 질문이 무대에 오르게 하는 것, 그 질문에 동의하거나 반박하면서 자기 판단을 되찾는 것, 그리고 내가 믿는 것과 내가 누리는 편의까지 공격받을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는 것까지 포함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매시브 어택은 이름 그대로 나를 습격했다. 그리고 나는 그 습격이 남긴 균열 속에서, 록을 향유하고 공감하고 사랑한다는 게 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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