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 끝을 사선으로 길게 잘라 놓은 거베라 꽃들이
유리병 속에서 발 모양을 드러낸다
엄지발가락 끝으로 위태롭게 서서
발레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늦된 꽃봉오리 하나가 눈길을 끈다
한 뼘 큰 꽃들보다 더 상기되어 연습에 몰두한다
온종일 힘주어 선 발끝, 푸른 멍이 들도록
소녀 같은 이 꽃은
호두까기 인형의 클라라를 꿈꾸지
왕자가 다가와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려 준다면
그제야 무거운 발끝을 내려놓을 수 있겠지
얇은 허리를 부드럽게 안아주면
백조처럼 우아하게 날아오를 수도 있어
지금은 발끝, 점 하나에 몸을 싣고 있지만
거베라, 너의 꿈은 유리병 속 물거품은 아닐 거야
아직은 토슈즈를 신을 수 없고
발끝이 작열하는 하루가
무대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해도
고개를 숙이지는 마
햇살도 저 우주 멀리 태양에서부터 달려왔지
맑고 푸르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던 하늘에서
어느 날 아침 커튼을 젖혔을 때
마법처럼 구름이 떠올라 있었어
너는 서 있는 게 아니고 이미 출발한 거야
언젠가 만날 무대를 향하여
지금은 푸르게 번진 한 개의 점을 딛고 있지만
너의 점묘화가 무대를 수놓을 날이 멀리서 다가오고 있어
후들거리는 발끝에서 네 시선의 거미줄을 거두고
무거운 고개를 들어 먼 그곳을 바라봐, 거베라
요즘 글이 도통 눈에 안 들어와서 글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인후염으로 시작한 감기가 기침이 되면서 열흘을 넘기고 약기운에 힘이 드네요. 요즘도 감기 걸리는 사람이 있나 싶게요.
어느 시인이 영상에서 말합니다
바쁘다, 아프다, 시간이 없다, 일이 생겼다. 이런 구차한 변명은 다 필요 없지요.
게을러지고 절실함이 없어질 때 핑계가 늘어나지요.
오늘은 무념무상 꽃병을 보다 시 한 수를 써봤습니다.
힘들면 꼭 발행일을 안 지키더라도 되는 만큼만이라도 써보려고 합니다.
트럭에서 6000원에 샀다면서 딸이 거베라 한 묶음을 사 왔습니다.
집에 식물은 많아도 꽃병을 둔 적은 없습니다.
꽃이 비싸기도 하고 오래가지도 않고 화분도 많고, 굳이 꽃병이 있을 이유가 없는데, 분홍색 거베라를 대량으로 싣고 와 싸게 판매하는 트럭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자세히 본 적은 없었는데 참 예쁜 꽃입니다.
당장 꽃병이 없어서 빈 유리병을 급조했고, 검색해서 오래가는 법도 익혔습니다.
줄기 끝을 사선으로 잘라 물을 빨아들이는 면적을 넓게하고
물에 식초나 락스 한두 방울을 떨어뜨리면 물이 오염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줄기는 매일 조금씩 사선으로 잘라주고 물도 교체해 줍니다.
그런데도 쉽게 줄기가 뭉개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속성으로 부실하게 재배한 꽃인지 모르겠습니다.
급하게 다이소에서 꽃병도 사 오고 야심 차게 출발했는데 금방 줄기가 꺾여버리네요.
그 이후에 같은 트럭에서 튤립을 또 사 왔습니다.
거베라
튤립이 이렇게 활짝 피는 건 처음 봅니다.
완연한 봄입니다. 봄날을 만끽하시고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