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빡침1.2

일상의 평화를 깨는 것들에 대하여

byChanghee

소소하게 빡치는 순간들이 내 일상의 평화를 깬다.


첫 번째, 열림 버튼


예약 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오래된 빌딩이라 엘리베이터 체계라는 게 없다.

한 대를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다음 걸 탈 수 있다.

마침 기다리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서너 사람과 함께 올라탔다.

그때 멀리서 한 여성이 급하게 달려온다.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려 줬다.

누가 봐도 고마워할 상황인데, 그 여성은 목례 하나 없이 쓱 타더니 문 앞을 보고 선다.

그러려니 했다.


내가 가야 하는 층에 도착했다.

문 앞에 서 있던 그녀가 잽싸게 나가서 병원으로 쏙 들어간다.

내가 가야 하는, 바로 그 병원이다.

내 덕분에 엘리베이터를 가장 늦게 탄 사람이, 나보다 먼저 쏙.


대기 환자가 많아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시간이 더디게 간다.

내 순서도 못 찾아 먹은 자신에게 갑자기 화가 치밀고,

괜히 뻔뻔해 보이는 그녀의 뒤통수를 쏘아본다.


'재수 없어. 얄미워.'


두 번째, 은색 재규어


여의도에서 올림픽대로로 진입하던 날이었다.

출근 시간대가 지났는데도 유난히 차가 많았다.

3차선이 2차선으로 줄어드는 구간이라 깜빡이를 켜고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합류하는 중이었다.

그때 은색 재규어가 앞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올드 클래식 카다.

급한 일 있나 보다, 하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먼저 가라, 가.


그런데 재규어가 머뭇거리는 사이 내 앞차가 앞으로 빠져나갔고,

결국 나는 합류 차선 끝까지 다다르고 말았다.


이쯤 되면 한 대씩 번갈아 합류하는 게 순서다.
그런데 내가 다시 진입하려 하자 재규어가 또 꾸역꾸역 차 머리를 들이민다.


내가 무리하게 끼어드는 차라도 되는 것처럼. 그걸 막는 게 사명이라도 되는 양, 아주 악질을 떤다.
순간 운전석을 확인했다.
중년의 여성, 그리고 옆자리와 뒷좌석에는 멋을 한껏 낸 부인들.


왜 저러지?

내가 자기 앞길을 막은 것도 아니고, 차들은 이미 순리대로 흘러가고 있는데 굳이 내 차를 막는다.


나는 운전할 때 절대 무리해서 끼어들지 않는다.

무리해서 끼어드는 차가 있어도 브레이크를 한두 번 밟아 준다.

저렇게 막겠다고 지랄을 해봐야 전체 교통 흐름만 방해할 뿐이니까.


그런데 이 양반은 도무지 양보라는 걸 모른다.

올드 클래식 카를 끌고 땀을 삐질거리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저 운전자는,

자기 차 앞에 다른 차가 들어오면 무조건 비켜주면 안 된다!라고 배운 것처럼.


더구나 그날은 티맵까지 가세했다.

티맵의 개빡치는 교통 안내로 한 시간이면 가는 길이 세 시간 반이나 걸렸다.

티맵이 추천하는 도로마다 공사 중이거나 사고가 났다.

평생 운전하면서 이토록 개빡친 날은 처음이다.


재규어 운전자에게 운전 매너와 차선 변경 요령을 제대로 교육해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저러다 성질 더러운 운전자라도 만나면 큰일 날 텐데.

운전할 때는 신부님도 욕을 한다던데, 하물며 나 같은 미물은 평생 할 욕을 몰아서 해댔다.


스스로가 더러워질까 봐 혼자 운전할 때도 가급적 입을 열지 않았는데,

이날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제발요. 내가 억지로 끼어드는 게 아니라 차선이 줄어드는 거라고요, 이 양반아!!"


내 차가 벤틀리나 마이바흐쯤이었으면 바로 비켜 줬으려나?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날의 은색 재규어를 생각하면 깊은 빡침이 몰려온다.


그리고, 소소한 결심

생각해 보면 두 사건 모두 대단한 일은 아니다.


엘리베이터에 타다 보면 나중에 탄 자가 먼저 순서가 되기도 할 수 있고,

언젠가 나도 내가 욕한 그녀처럼 행동했을 수도 있다.

머리로는 안다. 문제는 그 순간에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거다.


나는 이제 누군가 달려와도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눌러주지 않고 싶다.

이러다 나도 은색 재규어가 되는 건 아닐까.

아, 그건 더 빡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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