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핑계도 여러 가지네.
"바카라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대학 시절, 소설가 이기도 했던 담당 교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그 말을 30년 동안 방패처럼 들고 다녔습니다.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니 아무렇게나 쓸 수는 없고, 그러니 아직은 쓰지 않는 거라고.
게으름에 이보다 근사한 명분은 없었습니다.
죽기 전에 바카라 한 권, 드라마 한 편.
욕심 없는 척, 언젠가는 할 사람인 척하며 지냈습니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게 가장 큰 핑계였습니다.
프리랜서인 방송작가에게 들어오는 일은 바카라과 거리가 멀었고,
그러니 나중에,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일단은 돈부터 벌자. 그렇게 미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됐습니다.
더 기다릴 시간이 없는 나이가 되었다는 걸요.
용기를 내서 바카라상 앞에 앉았는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내 문장도, 내가 붙들고 있던 소재도 어설프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습니다.
더 난감한 건 바카라을 내고 드라마를 쓰고 싶었던 이유마저 어느새 희미해졌다는 겁니다.
게다가 요즘은 AI가 저보다 잘 쓴다는 결론까지 내려버렸습니다.
문장도 고쳐주고 제목도 뽑아주고 막힌 다음 문장까지 제안해 줍니다.
그렇다면 나는 굳이 왜 써야 하나.
쓰지 않을 이유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그 한마디
처음 드라마 원고를 제작사에 내밀던 날이 가끔 떠오릅니다.
회의가 끝나고 복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사무실에서 보조 일을 하던 분이 옆에 와서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작가님 원고, 재밌어요."
안면만 있던 사이였고, 굳이 제게 칭찬할 이유가 없는 제삼자였습니다.
다른 작가들에게는 그런 인사치레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꼭 쥐고 집에 왔습니다. 그리고 10년을 놓지 못했습니다.
돌아보면 두 사람의 한마디에 제 삶이 양쪽으로 끌려 다녔습니다.
한 분의 말 때문에 대충 쓸 수 없어 아예 쓰지 않았고, 다른 한 분의 말 때문에 끝내 놓지도 못했습니다.
그 드라마는 제 인생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쓰기로 마음먹기만 하면 잘 쓸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정말 써보고 그렇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가능성으로 남아 있는 동안에는 적어도 실패한 작가는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앞에 바위가 있으면 넘을 궁리보다 돌아가거나 샛길부터 찾는 사람입니다.
온라인카지노도 그랬습니다.
올려둔 글이 어느 날 갑자기 몹시 부족하고 창피해 보여서 발행을 취소해 버렸고,
그 뒤로 오래 외면했습니다.
지금은 혼자 에세이를 연습하는 공간으로만 씁니다.
노트북 속 졸업장
올해 2월, 30년 만에 편입한 4년제 대학에서 국문학과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그 졸업장은 지금 노트북 '개인' 폴더 안에 파일로 들어 있습니다.
오래된 기획안들 사이에 졸업장 파일이 보였습니다.
30년이 걸려도 졸업은 했는데, 내 바카라 한 권 쓰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챗지피티는 말합니다.
작은 것부터 도전해서 성공의 기억을 만들어 보라고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것도 꾸준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당장의 생활비를 버는 게 현실인 사람에게 '꾸준히'는 가장 비싼 말입니다.
이렇게 살다 그냥 죽어도 딱히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떤 후배는 말합니다.
"언니는 그래도 20대에 하고 싶은 거 다 해봤잖아."
맞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꼭 모든 사람이 바카라 한 권을 남겨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쓰지 않았다고 실패한 인생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아직 그 말을 믿지 못합니다.
인풋이 필요하다며 읽고 본 수백, 수천 권의 바카라과 드라마와 영화.
저를 꿈꾸게 해 준 비빌 언덕이었던 그 시간을 전부 내려놓자니 정신이 멍해집니다.
언제쯤 모든 걸 포기하고 하루하루 먹고사는 데만 올인할 수 있을까요.
바카라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던 교수님의 말씀을
저는 30년 동안 쓰지 않는 이유로 썼습니다.
이제는 그 말씀을 쓰는 이유로 바꿔 보려 합니다.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면, 쓰는 사람은 결국 쓴 사람뿐일 테니까요.
포기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빈 문서의 맨 윗줄에 한 문장을 썼습니다.
바카라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