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너도 힘들어? 나도 힘든데.
나도 가끔 징징대고 싶을 때가 있다.
“엄마가 갑자기 척추 시술을 한 번 하고 퇴원하는 날 또 골절이 생겨서 두 번 시술했어.
입원하고 퇴원하고 다시 시술하고 또 입원하고…
두 번째 시술에는 간병인이 왔지만, 간병인이랑 엄마가 블라블라...
갑작스러운 엄마의 입원 때문에...
MRI를 당장 찍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전화를 돌리고, 진료 날짜를 잡고,
아침 약, 점심 약, 저녁 약을 챙기다 보니 4개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어.
그 와중에 준비하던 일도 또 계속 미뤄지고.. 블라블라
이런 넋두리를 한바탕 쏟아내려던 참이었다.
말차 라테를 한 모금 마시던 후배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시작한다.
“언니, 저, 친정엄마가 넘어져서 어깨가 부러졌어요.”
"어머나, 괜찮으셔? 어쩌다?"
"... 어깨 수술을 하고 퇴원하는 날 아침에 병원 욕실에서 다쳐서 발등이 부러져 다시 수술하고 입원하셨는데,
매일 과일 도시락을 싸서 병원에 가고, 퇴원했는데도 통원치료를 제가 모시고 다녔어요.
그런데 다음 날에는 시어머니가 의자에 올라갔다가 넘어져 허리 수술을 하신 거예요.
친정에는 언니도 남동생도 있고, 시댁에도 시누이가 있는데, 결국 제가 다 따라다녀야 해요.
시누이가 운전을 못해요. 더 기가 막힌 건, 남편과 교대로 밤을 새워 병간호를 하고,
모처럼 쉬는 날 손목이 아파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는데,
남편이 축구를 하다가 발목을 다쳐서 급하게 깁스를 하고... 집에 하루 종일 있으니
남편 밥까지 다 챙기고 나와야 하는데 평소에는 남편이 출근길에 아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데
못 가니까 제가 데려다주고 나오는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30분을 실랑이를 하다가…
후… 진이 다 빠졌어요."
“언니, 나 왜 이러고 살아요? 진짜 미치겠어요.”
나는 그녀를 위로하며 밥을 샀다.
언젠가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미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에게 서운한 점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화 주제가 되었는데,
내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는 사이 그녀가 먼저 시작한다.
“나 사실, 한쪽 귀가 잘 안 들려”
어릴 때 술 취한 아버지에게 맞아 그렇게 됐다고 했다.
그녀의 부모는 결국 이혼했다.
그런데 연락도 없이 살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간암에 걸렸다며 간이식을 해달라고 했단다.
그녀는 그때 임신 중이었다.
“나 간이식 해주기 싫어.”
그리고 울었다.
“어떻게 아버지란 인간이 임신한 딸한테 간이식을 해달라고 할 수가 있을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를 위해 기도하면서 같이 울었다.
또 한 번은 짧았던 내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이혼에 대해 이것저것 묻던 후배가 심호흡을 하더니 말을 시작한다.
“언니, 이 새끼 자기 조연출이랑 잤대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놀라서 쳐다보는데,
그녀가 다음 말을 했다.
“근데 언니. 저 임신이래요.”
나는 후배의 남편 대신 산부인과에 따라갔다.
진료실 앞에서 같이 기다리고, 초음파 사진을 보고, 산모수첩을 확인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혼해라, 참아라, 용서해라.
그 어떤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저 아이가 있으니 조금 더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아기를 위해 기도했다.
그때도 나는 말하려던 참이었다.
나도 사실 힘들다었다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며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한동안 일적인 미팅 외에는 사적인 만남은 하지 않았다.
얼마 전, 또 다른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병원 검진 마치고 우리 집 근처로 오겠다고 한다.
마침 복날이라 내가 좋아하는 삼계탕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랜만이기도 하고 얼굴이 수척해 보이는 데다
건강검진 때문에 공복이었을 테니
전복이 2개나 들어가는 전복삼계탕을 시켜줬다.
나는 전기구이 통닭.
삼계탕 국물을 먹으려다 말고 한마디 시작한다.
“언니.”
“저 암이래요.”
잠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건강검진이 아니라 검진결과를 듣고 오던 차였다.
끓고 있는 뚝배기 속에서 전복을 건져 가위로 잘라서 그 후배의 숟가락에 올려줬다.
사람은 자기 고통을 이야기하려다가
다른 사람의 고통 앞에서 자꾸 입을 다물게 된다.
나도 병원에서 밤을 새운 것도 힘들었고,
돈 걱정에 잠을 설친 것도 힘들었고,
부모때문에 울었던 것도,
사랑했던 사람 때문에 무너졌도 것도 분명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더 큰 불행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가 겪은 일들이 갑자기 사소해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그래도 나는 낫지.”
“저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하지만 살아보니 고통에는 순위가 없다.
골절 네 개가 골절 하나보다 반드시 네 배 아픈 것도 아니고,
타인의 불행이 내 불행을 취소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가끔, 내가 힘들다고 말하려던 입을 멈추게 할 뿐이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게 된다.
저 사람도 견디고 있구나.
나만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구나.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밥 한 끼 사주고,
병원에 같이 가주고,
울 때 옆에 앉아주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기도해 주는 것.
그리고 어느 날 그녀들이 나에게 물어올 날도 있을 것이다
“언니도 힘들었지?”
그때는 괜찮은 척하지 않고 말해도 될 것이다.
응.
나도 힘들었어.
아주 많이.
힘드냐고 물으신다면
예전에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힘든 사람 앞에서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반드시 징징거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감당하기 벅찬 하루를 살아낸다.
그러니 누가 더 힘든지는 굳이 가리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 울면 같이 울어주고,
내가 울고 싶을 때는 나도 울면 된다.
요즘 많이 힘들지?라고 물으신다면
그냥 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