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쓰레기지

어? 남얘기는 빼고 말하는 걸로.

byChanghee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거의 십 년 만에 걸려온 선배의 전화다.


"어머, 언니 잘 지냈어?"

"응. 너, 걔 기억나지? 내 밑에 있던… ㅇㅇㅇ."

"아, 네네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해요."

"걔가 이번에 지방의회 의원이 됐어."

"아, 정치에 관심이 있었나보죠?"

"걔가 무슨 정치에 관심이 있어… 집안이 원래 그런 쪽이라나?"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그런 애가 무슨 의원이 되고 그러냐. 걔 진짜 일도 못했잖아."

"나랑은 직접적으로 일을 한 게 아니라서 저는 잘 몰라요. 언니가 칭찬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이상했다니까. 맹하고 센스 없고."

"...... "

"너는 열받지 않아?"

"뭐가요?"

"그런 애가 의원 한다고 설치는 게."

"어떤 애인 지를 잘 몰라서."

"그래 나만 쓰레기지."


전화를 끊고 나서야 저 말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반박한 적이 없었다. 그냥 "잘 모른다"라고 했을 뿐인데, 언니에게는 그게 곧 반박이었다.


곱씹어 보면 언니의 화법에는 층이 있었다.

표면은 그 후배가 못마땅하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 밑에는, 집안 덕에 쉽게 된 것 같다는 사실이 자꾸 걸렸다.

누군가는 집안 덕에 의원이 되고, 누군가는 십 년째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는 그 낙차.

그리고 더 밑에는, 그 낙차를 혼자 견디기 싫어서 나를 끌어들인 마음이 있었을 거다.

"너는 열받지 않아?"는 질문이 아니라 초대장이었다.

같이 열받아 달라는. 내가 초대에 응하지 않자, 초대장은 곧바로 판결문이 됐다.

나만 쓰레기지.방송 일을 삼십 년 하면서 이런 화법을 숱하게 봤다.

뒷담화는 정보가 아니라 접착제였다.


누군가를 같이 깎아내리고 나면 그 자리에 묘한 유대감이 남았다.

팀이 힘들 때일수록 그 접착제는 더 잘 팔렸다.


못한 사람, 이상한 사람, 운 좋은 사람을 하나씩 지목하면서

우리는 우리끼리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걸 확인했다.

언니도 그 방식을 오래 써온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며칠이 지나서야, 진짜 불편한 질문이 뒤늦게 도착했다.

나는 저런 전화를 걸어본 적이 없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와의 통화 끝에 "걔 좀 그렇지 않아?"라고 물은 기억,

상대가 시원하게 동의해주지 않아서 살짝 서운했던 기억이 분명히 있었다.


결국 그 전화가 불편했던 이유는 언니의 심리를 들여다봐서가 아니라,

그 심리가 나와 그렇게 멀지 않다는 걸 봐버려서였다.


남을 깎아내리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 아니라,

연결의 방법을 그렇게 배운 사람이다.

나도 그 방법을 완전히 버렸다고는 못하겠다.


그래서 가장 현명한 방법은 남얘기는 빼고! 말하기.

남 얘기는 빼고, 우리 얘기만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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