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굳이 그걸 또 제 입으로 퍼뜨리네
매주 화요일이면 나는 엄마의 라이더가 된다.
아이를 학원에 태워다 주던 부모들의 마음이 이런 것 이었을까.
다만 내가 태워다 주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여든한 살 엄마다.
주민센터 주차장에 도착하면 이미 건물 안에서부터 스피커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60대부터 팔순이 넘은 어르신까지 마흔 명 남짓. 한 시간 반 동안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들고,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연륜이 묻어나는 노래강사는 반주를 쥐락펴락하며 교실을 휘어잡는다.
수업이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밖으로 쏟아져 나오면 표정부터 다르다.
누가 봐도 도파민이 한바탕 돌고 나온 얼굴이다.
엄마는 그 교실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이것저것 챙겨 준다.
“어머니, 여기 앉으세요.”
“천천히 나오세요.”
친절하고 활기차고, 모두 무해해 보였다.
지난 주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가 낄낄거리며 강사의 농담 하나를 전해줬다.
“한 번 했네, 두 번 했네…….”
대충 그런 종류의 농담이었다.
어른들끼리나 알아 들을 법한 조금 야하고 짓궂은 이야기.
엄마는 그 얘기를 옮기면서 웃음을 못 참았고, 나도 따라 웃었다.
여든 살 언저리의 사람들을 한 시간 반 동안 웃기고 노래하게 만들려면
저 정도 능청은 있어야 하나 보다 싶었다.
노래교실 강사의 직업적 기술 쯤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수업을 마치고 차에 탄 엄마의 표정이 지난 주와는 달랐다.
“지난주에 그 얘기 있잖아. 누가 위에다 일렀나 봐.”
그날 수업에는 목사님, 신부님들이 있었다고 했다.
누군가 강사의 농담이 불편 했다며 문제를 제기한 모양이었다.
강사는 사람들 앞에서 앞으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단다.
강사는 사실 지난주에 그런 농담을 하면서
“우리끼리 하는 얘기니까 다른 데 가서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까지 했었단다.
나는 그 대목에서 궁금해 졌다.
도대체 진짜 저질스러운 사람은 누구일까.
조금 야한 농담을 던진 강사 였을까.
그 농담이 불편하다며 조용히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일이 정리된 뒤에도 굳이 밖으로 나가
“그런 일이 있었다 더라”고 다시 입을 연 사람이었을까.
그래,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다.
불편한 걸 불편하다고 말하는 데는 죄가 없다.
그런데 나는 가끔 이상한 사람들을 본다.
앞에서는 온갖 음담패설을 지껄이며 낄낄대면서
뒤에서는 그 문제를 가장 열심히 퍼뜨리는 사람.
“나는 그런 이야기 싫어해”라고 말하면서
정작 그 이야기를 누구보다 오래 붙들고 있는 사람.
음담 패설보다 더 질척한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고상함을 명분 삼아 남의 허물을 들춰낸 뒤,
그 허물을 다시 사람들 사이에 돌려보내는 일.
다음 주 화요일에도 나는 엄마의 라이더가 될 것이다.주민센터 주차장에 들어서면 또 스피커 소리가 울릴 것이다.
한 시간 반 뒤에는 얼굴이 벌게진 사람들이 웃으며 쏟아져 나올 것이다.
엄마도 그중 한 명일 것이다.
아마 나는 그 노래교실을 꾸준히 찾을 것이다.
엄마가 노래를 부르고, 웃고, 집 밖에서 사람들과 섞여 지낼 수 있는 곳이니까.
다만 전처럼 그곳의 모든 사람을 마냥 무해 하다고 생각하지는 못할 것 같다.
사람은 노래를 부를 때보다 남의 이야기를 옮길 때 더 잘 보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살아보니 그렇다.
조금 천박한 농담보다
고상한 얼굴로 남의 이야기를 퍼뜨리는 일이 훨씬 더 천박할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