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좋지만요

어? 아직도 설레기는 하네.

byChanghee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라는 일본 센류를 읽고 씁쓸하게 웃은 적이 있다.
나이 오십쯤 되면 사랑 따위는 필요 없어지거나 아예 사랑 따위를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평생 연애하면서 살 것 같던 그 시절도 지나고, 흔히 말하는 연애세포가 사라진 지 오래.
좋아하던 연예인도 같이 늙어가니 덕질도 더 이상 의미 없어지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혼자 있는 공간의 적막이 오히려 편안하다.
처음엔 그 정적이 외로움인 줄 알았는데, 점점 그 정적에 익숙해진다.


나를 방해하는 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하며

최대한 마음조심하며 살았다.
그날 이후 그 사람을 욕심내던 자신을 발견하고 멈췄다.

지금 내 인생에 사랑은... 그야말로 사치다.


사랑이라는 걸 다시 할 일은 없을 거라고.
그런 감정은 이제 내 것이 아니라고,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정리하고 살았다.


그런데 낮에 본 그 청년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무슨 대단한 사이는 아니다. 동네 마트 배달을 하는 청년이었고,

나는 그저 물 한 잔을 건넨 게 시작이었다.

그다음엔 밥 한 끼, 그다음엔 안 쓰는 물건 몇 개.

나는 원래 오지랖이 넓다. 정말이다.


그러다 갑자기 꽃을 받았다.


"저희 어머니 생각이 나서요. 꽃 좋아하실 것 같아서."


그렇구나. 어머니 생각이 났구나. 그의 어머니는 나보다 한 살 어리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왜 그렇게 서운했는지 모르겠다.

꽃을 받고 서운하다니... 뭐지?


나는 유튜브 채널을 3년째 운영 중이다. 조회수도 곧잘 나오고, 구독자도 꾸준히 는다. 그날도 촬영 중이었는데 마침 그 청년이 배달을 왔다.


"저도 구독했어요."

"어머, 그래요?"

"근데 얼굴도 나오면 더 인기 많을 것 같은데요?"

"내가 부끄러움이 좀 많아서."


"지금도 좋지만요."


지금도 좋다니. 그 말 한마디에 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도, 실실 웃음이 났다.

그 언젠가의 이별 후 처음으로 심장이 이상하게 뛰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병원에 갔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그게... 가슴이 자꾸 두근거려서요."


의사 선생님이 심전도를 찍고, 피검사를 하고, 심지어 갑상선 수치까지 확인했다. 결과는 전부 정상.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다 정상인데요. 스트레스받으실 일 있으세요?"


있다고 말할 뻔했다. 서른 살 청년이 준 꽃 한 송이 때문이라고.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대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갱년기인가 봐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갱년기 영양제를 처방해 줬다.

나는 그 처방전을 받아 들고 조제실 앞에 앉아, 이 상황이 너무 우스워서 혼자 킥킥 웃었다.

쉰한 살에 짝사랑을 갱년기로 진단받다니. 이보다 정직한 진단이 또 있을까.


다음 날 그 청년이 또 배달을 왔다.

나는 물 한 잔을 건네며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 그의 얼굴을 오래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이건 부정맥이 아니라 그냥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구나. 심장이 뛴다는 건, 좋은 거였다.


영양제는 꾸준히 챙겨 먹고 있다. 청년은 여전히 가끔 배달을 온다.

나는 여전히 가끔 두근거린다. 병명은 갱년기, 처방은 웃어 넘기기.

그래도 살 좀 빼면 누나 정도로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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