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질문이 틀렸네.
고등학교 때 나는 RCY 단장이었다.
엄마는 국민학교 3학년의 얌전하고 소심한, 작은 아이였던 나를 걸스카우트에 입단시키려 했는데,
당시 담임의 권유로 어린이 적십자단에 들어갔고, 국토순례나 뒤뜰야영 같은 활동을 하면서 성격도 점점 활발해졌던 것 같다.
RCY. 청소년적십자.
요즘 아이들은 이 이름을 알까 싶지만 당시에는 학교마다 제법 활발한 동아리였다.
RCY 담당선생님은 나를 예뻐했다.
뭘 시키면 열심히 했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싫어하지 않았고,
다른 학교 학생들과 어울리는 것도 잘했으니 선생님 입장에서는 제법 쓸 만한 단장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대한적십자사에서 주는 청소년 장학금이 있는데 나를 추천했다는 것이었다.
15만 원.
지금의 15만 원과는 달랐다. 고등학생이 자기 이름으로 받는 돈으로는 꽤 큰돈이었다.
무엇보다 장학금이었다. 공부를 잘해서 받는 장학금은 아니었지만
내가 학교 밖에서 열심히 했던 일을 누군가 인정해 준 결과였다.
나는 수업 도중 조퇴를 하고 대한적십자사로 장학금을 받으러 갔다.
아마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의 기쁨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다음 날이다.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왜 자기한테 말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말했다.
“내가 그 돈 달라고 할까 봐 그랬어?”
그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그날 울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성적도 좋지 않은 내가 공부는 안 하고 과외활동이나 한다고
선생님이 싫어할까 봐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하루 종일 울었다.
수업시간에도 바카라상에 엎드려 울었다.
왜 그렇게 울었는지는 나도 몰랐다.
그 뒤로 아주 오랫동안 문득 그 날이 생각난다.
그리고 생각할 때마다 질문은 똑같다.
나는 왜 담임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정말 선생님이 싫어할까 봐 그랬던 걸까.
아니면 나도 모르는 마음 한구석에 돈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원래 뭔가를 숨기는 아이였던 걸까.
그렇게 수십년이 지났다.
얼마 전 그 일이 떠올라 AI에게 물었다.
고2 때 RCY 단장이었고, 담당 선생님 추천으로 대한적십자사 장학금을 받았고,
수업 중 조퇴까지 해서 장학금을 받으러 갔는데
다음 날 담임에게 왜 자기에게 말하지 않았느냐며 혼이 났다고.
그리고 물었다.
나는 왜 담임에게 말을 안 했을까?
AI는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가능성에 대해 알려줬다.
“애초에 담임에게 반드시 알려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아닐까요?”
어? 그러네.
RCY에는 담당 선생님이 따로 있었다.
그 선생님이 나를 장학생으로 추천했다.
나는 수업시간에 몰래 학교 담을 넘어간 것도 아니고 조퇴를 했다.
학교의 허락을 받고 학교 밖 공식기관인 대한적십자사에 장학금을 받으러 간 것이다.
그런데 열일곱 살짜리 내가 왜 RCY 담당교사와 담임교사 사이의 정보 전달까지 바카라임져야 했을까.
선생님들끼리 이야기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
그제야 아주 오래된 질문 하나가 이상해졌다.
나는 왜 말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35년 가까이 이 질문만 하고 있었을까.
질문은 이것일 수도 있었다.
선생님은 왜 나에게 그렇게 말했을까.
“다음부터는 담임에게도 미리 말해.”
그렇게 말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열일곱 살짜리 아이에게 말했다.
“내가 그 돈 달라고 할까 봐?”
그 한마디 때문에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내가 무언가를 숨긴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그다음이다.
나는 즉시 내 잘못을 찾아냈다.
성적도 안 좋은데 과외활동을 하는 걸 싫어하실까 봐 그랬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참 나답다.
상대방의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내가 잘못한 이유부터 찾아낸다.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내면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고, 누군가 나를 싫어하면 내가 뭘 실수했나 되짚고, 관계가 어긋나면 내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나 기억을 뒤진다.
아무리 찾아도 없으면 아주 오래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분명 내가 뭔가 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하게 세상은 설명이 된다.
모든 잘못의 원인을 나에게 두면 적어도 답은 찾을 수 있으니까.
열일곱 살의 나도 그랬던 모양이다.
칭찬받고 돌아온 아이였다.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고, 동아리 단장을 맡았고, 다른 학교 학생들과 어울려 활동했고,
담당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장학생으로 뽑혔다.
누가 봐도 잘한 일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나는 바카라상에 엎드려 하루 종일 울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억울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억울하다는 말을 할 줄 몰랐다.
“선생님, 제가 왜 선생님한테 그 돈을 숨겨요?”
“RCY 선생님이 알고 계시잖아요.”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 대신 울었다.
그리고 오십이 넘어서까지 내가 왜 그랬을까를 생각했다.
“나는 정말 숨긴 걸까, 아니면 당시 어른이 그렇게 규정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내가 숨겼다고 기억하고 있는 걸까?”
사람의 기억은 있었던 일을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라,
있었던 일을 해석해서 보관하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15만 원의 장학금을 받은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디에서 받았는지, 누가 주었는지, 봉투가 어떻게 생겼는지,
집에 돌아가 누구에게 자랑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다음 날 선생님이 한 말은 기억한다.
“내가 그 돈 달라고 할까 봐?”
어쩌면 그날 내가 받은 것은 두 가지였는지도 모르겠다.
대한적십자사에서는 15만 원을 받았고,
담임 선생님에게서는 질문 하나를 받았다.
15만 원은 이미 써버렸지만
그 질문은 35년 동안 가지고 있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이제 이 질문도 그만 써버려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