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라는 말이 싫다

제발 퉁치지 마라.

byChanghee

효녀구나.라는 말에 긁혔다.

확실히 난 효녀가 아니다.

효녀이고 싶지 않다.




엄마와 함께 산다고 하면 사람들이 종종 말한다.


“그래도 딸이 있으니 어머니는 좋으시겠다.”

“역시 딸이 최고야.”

“네가 효녀네.”

“딸이니까 엄마 챙기지, 아들이 어디 그렇게 하니.”


대부분 칭찬으로 하는 말이다.

악의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묘하게 상한다.


처음에는 내가 정말 효녀가 아니어서 그런가 생각했다.


나는 엄마에게 짜증도 낸다.

병원 일정이 몰리면 지치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으면 대답하기 싫을 때도 있다.

내 일을 해야 하는데 엄마 일로 하루가 다 지나가면 억울할 때도 있다.


때로는 아무도 챙기지 않는 생활을 상상한다.


내가 먹고 싶은 시간에 밥을 먹고, 갑자기 영화를 보러 가고, 며칠쯤 집을 비워도 아무 일정도 조율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

그러니 누가 정해놓은 효녀의 기준이 있다면 나는 거기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 보면 내가 ‘효녀’라는 말을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그 기준에 미달해서가 아니다.

그 말이 너무 많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엄마의 병원에 함께 가고, 약을 챙기고, 식사를 준비하고, 산바카라을 하고, 혈압을 재고,

검사 결과를 듣고, 다음 병원 날짜를 기억하는 일.


나는 그것을 그냥 지금 내 생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누군가 “효녀구나”라고 말하는 순간 그 일들은 갑자기 성격이 달라진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된다.


오늘 병원에 함께 갔으니 다음번에도 또 가야 하고,

식사를 챙겼으니 앞으로도 그래야 하고,

같이 살고 있으니 계속 바카라임져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생긴다.


효녀라는 말은 칭찬처럼 들리지만, 이상하게 퇴직이 어려운 직바카라 같다.


한번 효녀가 되고 나면

계속 효녀여야 한다.


힘들다고 하면 이상하고,

못하겠다고 하면 서운한 사람이 되고,

자기 일을 우선하면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이 불편하다.

더 이상한 것은 왜 이 단어가 유독 딸들에게 자주 붙느냐는 것이다.


부모와 함께 사는 딸에게는 효녀라고 한다.

부모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는 딸에게도 효녀라고 한다.

반찬을 해주는 딸에게도 효녀라고 한다.


그런데 아들이 부모를 병원에 모시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반응이 조금 다르다.


“아들이 참 잘하네.”

“요즘 그런 아들 드물어.”

“며느리가 이해해주나 보다.”


아들의 돌봄은 특별한 행동으로 칭찬받고,

딸의 돌봄은 어느 순간 역할이 된다.


실제로 나이 든 부모를 누가 돌보고 있는지 들여다보면
이 말이 그냥 느낌만은 아니다.

최근의 통계에서도 가족 중에 주수발자는 여성인 배우자, 딸, 며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71%에 달한다.


딸이라서, 아들이라서가 아니다.

누가 그 자리에 배치되었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 배치는 누구도 회의를 열어 정한 적이 없다.

물론 부모를 돌보는 아들도 많고 가족과 거리를 두고 사는 딸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말에는 오래된 기대가 남아 있다.


“그래도 딸이 있어야 돼.”

“나중에는 딸이 엄마 챙기지.”

“아들은 장가가면 끝이야.”


농담처럼 반복되는 말들이다.

그런데 이 말들을 가만히 뜯어보면 결국 한 사람의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


딸.


그 딸에게 자기 일이 있는지, 수입이 필요한지, 체력이 되는지, 다른 계획이 있는지는 잘 묻지 않는다.

그저 딸이 있으니 다행이라고 한다.


누구에게 다행인지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다.

부모에게는 다행일 수 있다.

가족에게도 다행일 수 있다.

슬롯에도 다행일 것이다.


누군가가 비용을 받지 않고 병원 동행을 하고, 식사를 챙기고,

약을 관리하고, 정서적인 상대가 되고, 행정처리까지 해준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 역할을 맡은 사람에게도 언제나 다행일까.


나는 우리가 오랫동안 가족 돌봄을 ‘효도’라는 말 안에 넣어두면서
많은 것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효도라고 부르면 개인의 미덕이 된다.

딸이 하면 효녀가 되고

아들이 하면 효자가 된다.


하지만 돌봄이라고 부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간이 들어간다.

돈이 들어간다.

체력이 들어간다.


병원을 검색하고 예약하고 함께 가야 한다.

검사 결과를 기억하고 약을 관리해야 한다.

식사를 준비하고 생활환경을 살펴야 한다.

누군가의 하루가 사용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많은 일을 한 단어로 간단히 정리한다.


효녀.


칭찬 한마디면 충분한 것처럼.

그런 말대신 구체적으로 봐줬으면 한다.


병원에 함께 다니느라 시간이 많이 들겠다고.

일정 맞추기 쉽지 않겠다고.

집에서 돌보는 일이 생각보다 복잡하겠다고.

그리고 필요하다면 역할을 나누는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누가 병원을 함께 갈 것인지,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지,

누가 며칠 대신 맡을 수 있는지.


‘효’라는 말로 개인의 바카라임을 칭찬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대화다.


나는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병원이 필요하면 함께 갈 것이고,

약을 챙겨야 하면 챙길 것이고,

생활을 같이하는 동안 내가 맡은 몫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행동에 굳이 이름을 붙이고 싶지는 않다.


이름이 붙는 순간 선택은 미덕이 되고,

미덕은 기대가 되고,

기대는 어느새 의무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름 대신 사실을 말하고 싶다.

지금 이 집에서 병원 예약을 확인하는 사람은 나고,

약봉투를 정리하는 사람도, 검사 결과를 물어보는 사람도 나다.


그건 어떤 미덕의 이름을 빌리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무거운 일이다.


무게를 인정받는 데

칭찬이라는 포장이 필요한 건 아니다.

제발 어설픈 말로 퉁치지 말고

공감하는 척하지말자.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고, 요양원에 가거나, 아예 병에 걸려 요양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는

그 기간 동안은 아무도, 누구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한 사람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데이케어센터나 주민센터의 돌봄 서비스를 신청하라는 둥... 해봐라 바로 안된다)

결국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며, 하고 있다는 것을

제발 효녀라는 말로 퉁치지 마라.


작가의 이전글체크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