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개, 처음 웃는다

무거운 쇠목줄은 이제 그만

byChanghee

언제부턴가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낯선 풍경을 마주하곤 한다. 화려한 도심의 일상도, 세련된 반려견 카페도 아니다. 잡풀이 우거진 시골 마당, 한 평 남짓한 낡은 개집 앞. 그곳에는 평생을 1미터짜리 녹슨 쇠사슬에 묶여 살아온 시골 개들이 있다.


요즘 내 지친 하루의 끝을 위로하는 것은 유튜브 채널 [시고르 우체부], [햅독], 그리고 [연기향]의 '행복을 찾아서' 같은 '시골개 환경 개선 프로젝트' 영상들이다. 채널의 봉사자들은 전국 각지의 마을을 돌아다니거나 안타까운 제보를 받아 그 개들을 찾아간다.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늘 비슷하다. 뙤약볕을 피할 그늘 한 점 없는 마당, 분변과 먼지로 가득한 바닥, 언제 갈았는지 알 수 없는 이끼 낀 물그릇. 처음 보는 외지인의 등장에 맹렬하게 짖어대는 개들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외로움이 가득하다.


견주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개는 그저 개처럼 키워야지", "시골에선 다 이렇게 키워"라며 퉁명스러운 거부감을 내비치기 일쑤다. 하지만 봉사자들의 끈질긴 설득과 "비용은 전혀 들지 않는다"는 말에, 노인들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승낙이 떨어지는 순간, 기적이 시작된다.


봉사자들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인다. 개들을 짓누르던 무거운 쇠사슬 목줄이 가볍고 유연한 와이어 줄로 바뀌고, 진드기 방지 목걸이가 채워진다. 물청소로 찌든 때를 벗겨낸 새집이 마르는 동안, 개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담장 밖 세상을 밟는 '생애 첫 산바카라'을 떠난다. 발바닥에 닿는 흙과 풀의 촉감이 낯설어 뚝딱거리던 개들이 이내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달릴 때, 가슴 한구석이 찡해 온다.


마당에는 질척이는 진흙 대신 폭신한 야자매트나 깔끔한 팔레트가 깔리고, 그늘막이나 커다란 파라솔이 펼쳐진다. 찌그러진 양은그릇 대신 깨끗한 새 그릇에 맛있는 사료와 습식캔, 영양제가 버무려져 담긴다. 어떤 날은 평생 만져본 적 없는 알록달록한 강아지 장난감이 마당에 놓이기도 한다.


견주가 그 개를 어떻게 키우는지는 밥그릇과 물그릇을 보면 안다. 비록 투박하게 묶어 키웠을지언정, 매일 그릇을 깨끗이 닦아 밥을 주던 견주들에게는 미안함과 양심이 남아 있었다. 새집과 푸짐한 사료 선물을 받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느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봉사자들의 손을 맞잡는다. 여름날, 그 깨끗해진 그릇에 왕딴딴 한 얼음을 가득 넣은 물 한 그릇을 부어주는 견주의 모습을 볼 때면, 굳어 있던 시골 어르신들의 마음도 함께 녹아내렸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모든 영상이 이토록 따스한 해피엔딩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카메라 프레임 너머에는 깊은 한숨과 먹먹한 분노를 자아내는 지독한 현실도 존재한다.


언젠가 보았던 한 영상 속 강아지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참혹한 상태였다. 살점을 파고든 쇠목줄 때문에 목덜미가 온통 파여 있었던 녀석. 그 가녀린 생명이 버텨냈을 고통의 무게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 나를 불편하게 만든 건 견주의 태도였다. 척추보조기를 찬 채 겨우 병원을 오가는 할머니 본인의 주거 환경 역시 개집만큼이나 위태롭고 지저분했다. 생명을 돌볼 능력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저 "내 개니까 내가 키우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모습은 숨을 턱 막히게 했다.


결과적으로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고 상처를 치료했지만, 영상 아래에는 "제발 다른 좋은 곳으로 입양 보냈으면 좋겠다"는 시청자들의 댓글이 가득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환경을 개선해 주러 온 봉사자들 앞에서 다짜고짜 "개고기로 팔아야 하니 15만 원을 내놓으라"며 거래를 시도하던 어느 견주의 민낯을 보기도 했다. 생명을 고깃값 몇 푼으로 재단하는 무감각함 앞에서, 나는 지독한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작업이 끝난 후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개들의 표정은 나를 다시 붙잡는다. 처음의 거친 경계는 어디로 갔는지, 녀석들은 깨끗해진 자신의 집을 보며 거짓말처럼 환하게 웃는다. 프로펠러처럼 꼬리를 흔들고, 자신을 구원해 준 봉사자들의 발밑에 배를 까뒤집으며 온몸으로 비벼댄다.

평생 처음으로 조건 없는 다정함을 받아본 존재들이 뿜어내는 투명한 행복.


내가 이 짧은 영상들을 보며 위로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도 저마다 삶이라는 좁은 마당에 보이지 않는 쇠사슬을 하나씩 목에 건 채, 좁은 반경 안에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감당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혹은 타인의 무감각한 시선 속에서 상처받으면서도 묵묵히 하루를 견뎌낸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 찾아와 내 남루한 일상을 들여다보고, 묵은 먼지를 털어내주며 "그동안 고생 많았다"라고 다정한 그늘막 하나 쳐주기를, 마음 깊이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작은 관심과 환경의 변화만으로 삶 전체가 환해지며 다시 웃을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 쇠사슬이 살을 파고드는 고통 속에서도 인간을 향해 다시 꼬리를 흔들어주는 그 마음 앞에서, 나는 부끄러움과 동시에 묘한 구원을 얻는다. 오늘도 꼬리를 흔들며 행복해하는 시골 개들의 미소를 보며, 내 마음의 쇠사슬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작가의 이전글효녀라는 말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