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출연자

어? 이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편하네.

byChanghee

한창 신혼인 방송작가 후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언니, 정말 시댁은 적응이 안 돼요."


남편이 싫으면 시부모님도 싫다는데, 그렇다면 남편이 좋으면 시부모님도 좋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일주일에 서너 번 안부전화, 주말마다 인사 가는 게 너무 하기 싫어 미치겠다고 한다.

원래 아들보다 며느리한테 더 기대는 법이라고들 하지만, 그 말이 위로가 될 리 없다.


문득 나의 전 시어머니가 생각났다.

일요일 아침, 갑자기 걸려온 전화.

새벽에 수산시장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한 박스 고르고 골라 지하철을 타고 오셔서는

집 앞으로 나만 나오라고 하시더니 그 박스만 주고 (민어, 전복, 꽃게... 중에 몇 놈은 살아서 포장을 뚫고 나왔더랬지.)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시던 분.

외로운 걸 숨기느라 늘 퉁명스러웠고, 칭찬보다 지적이 애정표현이었던 분이었다.

그즈음 생신에 핸드폰을 사드렸는데, 일주일쯤 지났을까, 도로 가져가라고 성을 내셨다.

"뭐 연락하는 놈들도 없고, 필요 없어."


그때 나도 숨이 막혔다. 나는 그때 너무 바빴다. 마음도 몸도.

끼니도 거르며 일하고 퇴근 후에는 시댁 조카의 중학교 학생회장 출마 연설문이며 캐릭터 만들어 주러 가서

자정까지 있기도 했는데... 갓 결혼한 여자가 떠안아야 하는 시월드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기도 했다.

그때는 즐겁게 했지만, 지치고 피곤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무슨 도파민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싱기방기.


살림하고 결혼생활에 겨우 적응하던 시절....

매일 전화를 드린다는 게 거의 불가능할 만큼 바쁠 때였는데, 그 일주일을 참아주지 않으셨다.


어쨌든.


후배의 부담이 어느 정도는 이해 가능하기에 해결바카라을 알려주고 싶었다.


"시어머니를 네 출연자 관리 리스트에 넣어봐."


그 시절, 방송작가들은 출연자들에게 수시로 안부를 묻고 근황을 챙겼다.

스케줄을 파악하고, 섭외 가능한 날짜를 미리 체크하고. 후배는 그 일을 유독 잘했다.

중년 연예인들, 어르신들을 특히 잘 챙겼다.

내 말을 듣자 후배의 큰 눈이 더 동그래졌다.


"어머, 언니. 너무 좋은 생각이에요. 중년 연예인들 나랑 친하고 나 좋아하잖아. 우리 시어머니도 출연자라고 생각하면!!!…"


센스 있고 눈치 빠른 후배작가는 얼른 감을 잡았다.


아무리 힘든 사람, 시어머니라도 내가 잘하는 것으로 바꿔 생각하면,

까짓 거 어려울 것도 없다.


남이라고 생각하면 예의를 차릴 수 있고, 서운한 감정도 반으로 줄어든다.

거리가 오히려 관계를 지탱하는 법이다.


지금은 연락도 안 하는 후배지만,

시어머니도 시누이도 잘 관리하며, 자기 인생의 프로그램을 잘 구성하고 있겠지.


잘 지내고, 자주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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