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노화때문이라고만 하지 마요
엄마의 눈이 점점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나이 때문인 줄 알았다.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잠을 못 자서 그런 줄 알았다.
환절기라 그런 줄 알았다.
이모들은 한 마디씩 보탰다.
“갑상선 아냐?”
“병원은 가봤어?”
매년 건강검진을 받던 병원에서는
갑상선 수치도 괜찮다고 했다.
고혈압도, 당뇨도 괜찮다고 했다.
그러니까 괜찮은 줄 알았다.
하루 걸러 한 번씩 다니던 동네 안과에서는
알레르기라고 했다.
결막염이라고 했다.
병명은 늘 작았다.
알레르기.
결막염.
안구건조.
노화.
안약 몇 방울.
연고 조금.
며칠치 처방전.
엄마는 그 약들을 성실히 넣었다.
아침에도 넣고
점심에도 넣고
잠들기 전에도 넣었다.
그러나 튀어나온 눈은 들어가지 않았다.
신경외과에서 뇌검사도 했다.
뇌 상태는 양호하다고 했다.
다만 부비동염 같으니
이비인후과에 가보라고 했다.
이비인후과에서는
봄철 알레르기성 비염이라고도 했다.
엄마의 병은
계절을 따라 이름을 바꿨다.
봄에는 알레르기였고
여름에는 피로였고
가을에는 건조증이었고
겨울에는 노화였다.
우리는 안과로 갔다.
신경외과로 갔다.
이비인후과로 갔다.
안센터로 갔다.
류마티스 센터로 갔다.
정형외과로 갔다.
다시 신경외과로 갔다.
병원 복도마다
엄마의 이름은 접수되었지만
엄마의 몸은 자꾸 나뉘었다.
눈을 보는 사람은 눈만 보았고
코를 보는 사람은 코만 보았고
뼈를 보는 사람은 뼈만 보았다.
하지만 엄마는
눈도 아니고
코도 아니고
뼈도 아니었다.
엄마는 한 사람의 몸이었다.
마침내.
엄마의 병은 낯선 이름을 달고 나타났다.
듣고도 한 번에 외울 수 없는 이름.
검색창에 넣어도 오타가 나는 이름.
누구에게 설명하려면 먼저 내가 공부해야 하는 이름.
희귀 질환 IgG4.
국내에서 병원 코드가 확정된 지도
몇 해 되지 않았다는 병.
안센터 의사의 의심이,
그가 최근에 공부한 지식 덕분에,
몇 년 동안 아무도 몰랐던 이름을
비로소 불러냈다.
희귀하다는 말은
특별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희귀하다는 말은
늦게 알아본다는 뜻이었다.
흔한 병들 사이에서
자꾸 밀린다는 뜻이었다.
누군가의 눈앞에 있어도
쉽게 의심받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엄마의 병은
처음부터 엄마 안에 있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너무 흔한 이름들로
그것을 덮어왔다.
알레르기.
결막염.
비염.
부비동염.
노화.
노화.
노화.
나는 이제
“괜찮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노화”라는 말로 퉁치는 걸 의심한다.
어쩌면 병보다 무서운 것은
틀린 이름을 오래 부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처방전과 검사지를 챙기고
다음 진료일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