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AI를 모른다 (4) : 스토리 연구 노트 3
10년간 AI 필드에서 살아온 인문학자의 관점에서, 최근 마주친 AI 관련 자료 중 기록해 둘 가치가 있어 보이는 것들을 다룬다. 학술 논문일 때도 있고, 업계 최전선의 관찰일 때도 있고, 인문학적 사유일 때도 있다. 어느 쪽이건, AI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이길 바라며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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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라면 한 번쯤 이런 말을 들었거나 직접 겪어봤을 것이다.
“캐릭터가 내 손을 벗어났다.”
소설을 쓰다 보면 처음 계획했던 결말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캐릭터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곤 한다. 원래는 악당으로 설계했으나, 어느 순간 그를 단순한 악인으로만 소모하면 이야기가 납작해진다는 직감이 찾아오는 것이다.
결국 작가는 계획을 수정한다. 독자는 수정 전의 플롯을 모른 채, 그저 완성된 결과만 보지만 말이다.
이처럼 캐릭터에게 부여된 서사적 개연성과 행동 논리는 역으로 작가의 원래 의도를 제약하기 시작한다. 작가가 창조주라면, 캐릭터는 피조물이되 자신만의 논리를 획득한 피조물인 셈이다. 그리고 그 피조물의 논리가 완강해지는 순간, 신조차 결말을 바꿀 수밖에 없다.
이것은 창작자들의 오랜 경험적 감각인 동시에, 알고 보면 꽤 유서 깊은 알고리즘적 문제이기도 하다.
2010년, 마크 리들(Mark Riedl)과 마이클 영(R. Michael Young)은 인공지능 연구 저널(Journal of Artificial Intelligence Research)에 〈서사 계획: 플롯과 캐릭터의 균형 잡기(Narrative Planning: Balancing Plot and Character)〉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이 던진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기계가 이야기를 자동으로 만들 때, 플롯이 논리적으로 성립하면서도 캐릭터의 행동까지 납득이 가는 서사를 어떻게 생성할 수 있을까?
문제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기가 생각보다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당시 서사 생성 연구의 주류는 '플래너(planner)'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플래너는 초기 상태와 목표 상태를 입력받아 그 사이를 잇는 최적의 행동 시퀀스를 탐색하는 알고리즘으로, 본래 로보틱스 분야에서 유래했다. 마치 체스봇이 다음 수를 계산하듯, 어떤 행동들을 순서대로 실행해야 원하는 결말(목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계산하는 기계였다.
논문에는 이를 설명하는 예제가 등장한다. 인물은 단 세 명. 왕과 공주, 그리고 기사다. 여기서 작가(인간)가 원하는 결말은 다음과 같다. '왕이 죽고, 공주는 탑에 갇힌다.'
기존의 일반 플래너에게 이 목표를 주면, 인공지능은 아주 명쾌하다는 듯 한 가지 해법을 내놓는다.
1. 공주가 왕을 죽인다.
2. 공주가 스스로 탑에 들어가 문을 잠근다.
시스템의 논리 회로 안에서는 완벽한 정답이다. 작가가 요구한 두 가지 목표 상태를 모두 충족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를 읽는 독자는 결코 납득하지 못한다. 공주는 대체 왜 왕을 죽여야 했을까? 또 무슨 이유로 제 발로 탑에 들어가 자신을 가둔 걸까?
여기엔 동기가 없다. 행동은 존재하지만 이유가 실종된 것이다. 결국 이것은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메마른 '사건의 목록'에 불과하다.
저자들은 이 실패의 구조를 명확하게 짚어낸다. 기존의 플래너는 오직 작가의 목표만 바라본다. 캐릭터가 왜 그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 그들의 내면은 묻지 않는다. 작가의 목적과 캐릭터의 목적이 분리되지 않은 채, 피조물들을 그저 결말을 위한 도구로만 소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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