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작가는 왜 비서가 되었을까?

AI는 이야기를 모른다 (3)

by세영
나는 2015년부터 기계에게 이야기를 가르치는 일을 해왔다. 엔씨소프트에서 8년, 지금은 KT 미디어본부에서. 직함과 회사는 바뀌었지만 붙들고 있는 질문은 같다. AI는 정말 이야기를 아는 걸까.

AI가 글을 척척 써주는 시대가 됐지만, “그럴듯한 글”과 “좋은 이야기”는 다른 말이다. 그 차이를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10년을 보냈다. 이 연재는 그 시도와 실패,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들의 기록이다.

이 칼럼은 룰베이스 시대의 실험부터 LLM 등장 이후까지를 다룬다. AI 글쓰기 도구를 쓰면서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 적 있다면, 혹은 창작과 기술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면, 이 기록이 그 감각에 말을 붙여줄 수 있을 것이다.


1. 재미라는 유령, 효율이라는 숫자


시장은 흥미로운 이야기 창작이라는 문제를 풀려하지 않고 비껴가기로 했다. 정체 모를 '재미'라는 유령을 쫓는 대신, '효율'이라는 손에 잡히는 숫자의 세계로 기민하게 도망친 것이다. 이 우회는 단순히 기술적 한계 때문이 아니다. 기업의 논리 안에서 '재미'라는 가치가 더 이상 의제로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기업이라는 조직에서 어떤 가치가 생존하려면 자본의 언어인 '숫자'로 번역되어야 한다. 매출, 사용자 수, 클릭률 같은 지표는 명확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정말 흥미로운가?"라는 질문은 숫자로 치환되지 않는다. 측정할 수 없는 가치는 회의 자료에 오르지 못하고, 미션이 되지 못하며, 결국 그 일을 할 사람의 자리조차 지워버린다. 시장은 이제 재미를 탐구하는 대신, 숫자로 환산되는 '자극'과 '패턴'으로 재미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2. 뉴스도 스토리다?: 바드 프로젝트의 야심


게임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게임 회사들은 콘솔 게임처럼 스토리가 중요한 영화 같은 게임 시장에서 모바일 게임 시장으로 기민하게 움직였다. "게임에 스토리가 정말 필요한가. 그것이 매출로 이어진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이 추상적인 질문에서 도망쳐 자본주의에 알맞는 안전한 전략을 택한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 게임 시장은 예술성 대신 가챠, 확률, 뽑기 중심의 시장으로 변해갔다. BM(Business Model)이 곧 게임이 되는 시대가 1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이런 시장 환경에서 작가처럼 글을 쓰는 '스토리 창작 AI'가 빛을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이 풍경 한가운데에서, 내가 재직했던 NCSOFT는 '스토리'를 꽤 흥미로운 방식으로 접근했다. 작가가 일방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넘어, 게임이라는 가상 공간에서 '발생하는' 이야기에 주목한 것이다.


이 시도를 잘 설명해 주는 것이 한국 게임학에서 제시한 게임 스토리텔링 층위 이론이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를 비롯한 게임 서사 이론가들의 논의를, 한혜원을 비롯한 한국 학자들이 한국 MMORPG 환경에 맞게 정리해 온 이 분류는 게임의 스토리를 세 층위로 나눈다.


1. 기반적 서사(Background Story) : 게임의 시나리오와 세계관으로, 게임 세계가 뿌리를 두고 있는 설정 자체를 의미한다.

2. 이상적 서사(Ideal Story) : 기획자가 의도한 스토리로, 퀘스트와 미션으로 정교하게 짜인 시나리오다.

3. 우발적 서사(Random Story) : 플레이어가 가상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만들어내는 이야기다.



NCSOFT가 주목한 것은 바로 세 번째 층위, '우발적 서사'였다. 플레이어들이 가상 세계와 충돌하며 매일같이 만들어내는 날것의 사건과 갈등을 흥미로운 콘텐츠로 정제해보고자 하는 의지였다. 그 야심의 결과물이 바로 게임 뉴스 프로젝트, 일명 '바드(Bard) 프로젝트'였다. 게임 안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사건을 AI가 자동으로 포착해 기사로 풀어내겠다는 시도이자, 내가 NCSOFT에서 수행했던 주요 미션이기도 했다. 재미라는 모호한 유령을 직접 사냥하는 대신, '뉴스'라는 측정 가능한 형식을 빌려 이야기의 경제적 가치를 증명해 보려는 치열한 우회로였던 셈이다.


"뉴스가 정말 스토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마음 한구석에 남긴 했지만, 뉴스는 무엇보다 자본이 요구하는 '답'이 분명한 영역이었다. 이미 2014년 미국 AP 통신이 야구 기사 자동화로 그 가능성을 증명했듯, 게임 로그를 데이터 마이닝해 기사로 풀어내는 일은 클릭률과 체류 시간이라는 숫자로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우회로였다. 우리는 이 효율적인 그릇에 '우발적 서사'라는 생명력을 담아 게임 안팎을 잇는 선순환 구조를 꿈꿨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실험대가 바로 리니지의 전장, 공성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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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에게 이야기를 가르치는 사람. AI가 글을 척척 써주는 시대에, "이게 좋은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이 왜 여전히 인간의 몫인지를 현장의 언어로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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