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나비의 행방

by태고

" 실례지만 고객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


남자친구요.

연인이요.

애인이요.

만나는 사람 이요.

교제 중인 사람 이요.

사귀는 사이입니다.


남자친구를 표현하는 말이 이렇게 다양하다.

고객센터에서는 가족이나, 지인이 대신 전화를 한 경우 고객님과의 관계를 여쭈어본다.

처음에 '연인이요.'를 들었을 때는 순간 조금 당황했다

일상생활에서 보단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표현이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글쓴이가 썼던 단어는 '남친이요'였는데.. 연인 이라.

저렇게 표현한 그는 로맨티스트임에 틀림이 없다.




그를 사랑하게 된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배넷골의 펜션이었다

방안에 나비가 한 마리 들어와 나갈 구멍을 못 찾아 뱅뱅뱅~ 방 안을 돌고 있었다.

" 오빠, 쟤 좀 잡아서 밖에다 놔 줘. "

그는 한참을 창문 방충망에 붙은 나비를 보고 있었다
" 뭐해, 무서워? "


" 그게 아니라... 내가 잡았다가 놓으면, 얘가 못 날까 봐.. "



그때 알았던 것 같아,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되겠구나




술에 취해 나의 유도신문에 넘어간 그는, 내가 8번째 여자친구임을 실토하고 말았다.

나는 앞전 그녀들을 7공주라고 불렀다.


" 아, 여기는 처음 와보는데? "

" 왜, 7공주랑은 안 와봤어 ?? "

" 아!!! 야!!! 아.. 내가 괜히 유도신문에 넘어가 가지고... 하 "


내가 낄낄~ 대며 웃었다.

사실 7공주든 700공주든 상관없었다. 지난 일이고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가 있으므로,

그리고 7공주 보다 내가 더 좋은 여자 일 것이므로.


그런데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면서 당황하여 귀까지 빨개지는 그가 너무 귀여워서,

자꾸 놀리고 싶은 걸 어떡하나



" 자기야.. 오늘은 나랑 한잔해줘 "

" 왜 또, 오늘은 햇빛이 좋아서? "

" 아니,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해 버렸어..."



"... 해야겠네, 가자 "


그는 집에 가 엄마 얼굴을 못 보겠다며 연신 소주잔을 들이켰다.


" 왜, 부끄러워? "

" 얼굴을 못 보겠어... ㅠㅠ "

순박한 그가 좋았다.


좋았지만, 사랑이 깊다고 오래가는 건 아니었다


그와는 숨 막히고 뜨거운 연애를 했지만, 우린 결국 헤어졌다.

그와 헤어지던 날,


친구네 자취방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자다가,

일어나 창문 밖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울음이 터졌다.


깨어난 친구는 나를 보다 충격을 받았는지 말했다

너가 남자 땜에 우는 건 첨본다.



잘 지내니? ..

난 말이야, 많이 초라해졌어

실은 말이야,

당신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랑이 될 줄도 알았고,

이 사람을 오래 못잊겠구나 라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하나는 몰랐어


당신 냄새가 너무 좋아서
체취가 묻은 티셔츠를 끌어안고 잠들고
생각만 해도 코끝부터 찡해져서,

그 감정 하나만으로
모든 걸 내던질 수 있었던 그 무모함이,

그런 무식한 사랑이
내 인생에 자주 오는 감정은 아니라는걸

내 마음을 완전히 헤집어 놓을 이런 사람을,
당신 뒤에도 나는 쉽게 만날 수 있을 줄 알았거든



내 뼈에 이제는 화석처럼 새겨져 버린

지울 수 없는 세 글자..

태고라는 여자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고, 사랑을 알려주었던


이창민



당신 외로웠을 상황인 거 아는체했지만 사실은 다 몰랐던 거 미안해

애정이나 기대가 있어야

서운함도 생긴다는걸,

그땐 너무 서툴고 어려서 몰랐어

지금도 그걸 핑계 삼는

비겁한 나를,

당신은 용서해 줄 수 있니..



그때,

가장 예뻤을 시절 나를 사랑해 줘서,

계산 없이

그때만 할 수 있었던 귀한 진심을

아낌없이 퍼부어 주어서

가슴이 아픈 게 무엇인지 알게 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