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시마#6
얼마 지나지 않아 미술관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른 아침인데도 버스 안은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개장 시간 조금 지나 오츠카 국제 미술관에 도착해 미리 구매해 둔 티켓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림을 보기 시작하는 입구 부근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무슨 그림이길래 저렇게 모여 있나 싶어 사람들 사이로 들여다봤다.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그림이었다.
요네즈 켄시의 레몬이었다.
온라인으로 봤을 때는 음원 파일의 싱글 재킷 이미지에 불과했는데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니 새삼 작품처럼 느껴졌다.
바나나도 부엌 식탁 위에 있으면 간식이지만, 미술관 벽에 붙어 있으면 작품이 된다.
같은 대상도 놓인 곳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다.
안내 지도를 보니 미술관은 지하 3층부터 지상 2층까지, 시대별로 다섯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루 종일 둘러봐도 부족할 것 같은 규모였다.
실제로 거의 모든 그림을 감상하는 데 다섯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한 작품씩 꼼꼼히 살펴봤지만 다음 일정이 다가올수록 눈에 띄는 그림 위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림마다 나를 보라고 말을 거는 듯했다.
한 작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다른 그림이 말을 걸어왔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또 다른 그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었지만 모든 그림 앞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작품 저마다 서로 다른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 많은 에너지를 한꺼번에 받아들이려니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하루 종일 그림을 감상하고 나니 내가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 조금 더 분명해졌다.
비율과 형태, 색감이 아름다운 작품에 눈길이 갔다.
인물화에서는 눈빛과 표정을 중요하게 보았다.
사실 인물보다는 자연을 좋아한다.
저번 여행에서 느꼈듯 그림으로 보는 자연보다 실제 자연에 더 크게 감탄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그림과 그림 사이에 있는 자연이었다.
그림을 보다 더 깊이 감상하기 위해서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했다.
총 105개의 설명 가운데 몇 개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작품은 이야기를 알 때 더 깊이 다가온다.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나면 같은 그림에서도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느껴진다.
감상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
오디오 가이드에서는 그림에 담긴 이야기뿐 아니라 마음에 남는 문장들도 들을 수 있었다.
[입을 다물고 너의 내면의 소리를 들어라.]
[악기 현이 끊어지고 단 하나의 현이 남았는데 놓지 못하는 욕망.]
그림과 짧은 문장이 어우러져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다.
“그림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도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림을 감상할 때면 뚜렷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남을 뿐이다.
그것을 말로 옮기려 하면 분명히 존재했던 무언가가 희미해지는 것 같다.
어쩌면 그 감각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서 모르는 척했는지도 모른다.
오츠카 미술관에서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한껏 품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