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대신 웃음을, 분노 대신 매력을

2026 All-Day-Project (164/365)

byJamin

https://www.youtube.com/watch?v=w3PYjFs4fng


오늘날의 정치는 바야흐로 극단의 시대다. 광장과 미디어는 아군과 적군이라는 이분법으로 쪼개졌고, 매일 밤 쏟아지는 뉴스 앞에는 좌절과 경멸, 그리고 도덕적 지탄의 언어들이 가득하다. 이 거칠고 준엄한 시대 속에서 대중은 코미디언이나 지식인들에게 ‘내 분노를 대신 터뜨려줄 대리인’이 되어달라고 요구하곤 한다.


더 거칠게 욕하고, 더 매섭게 몰아세울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 무대 위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방송인 코난 오브라이언(Conan O'Brien)이 던진 메시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매일 밤 똑같이 분노하며 "트럼프 꺼져라"를 외치는 것은 코미디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내려놓고 분노와 교환한 '예술적 투항'이라 지적한다. 상대를 무너뜨리는 가장 완벽한 무기는 단순한 비명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정교하고 지적인 '해학과 웃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철학은 오바마의 명언 *"When they go low, we go high"*와 깊게 맞닿아 있다. 상대가 나를 진흙탕(Low)으로 끌어내리려 할 때, 똑같이 진흙을 던지며 분노하는 것은 결국 상대가 만든 판에 말려드는 꼴이다. 세상을 '적과 나'로 쉽게 나누는 분노의 톤앤매너는 당장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을지언정, 그 너머의 사람들을 타자화(他者化)하고 분열을 심화시킨다.


진정한 ‘풍자’란 분노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모순과 인간적 결함을 위트로 짚어내며 여유롭게 웃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여유를 가질 때 상대는 공격할 명분을 잃고 순식간에 머쓱한 존재가 된다. 이는 과거 한국의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평화적인 '축제식 시위 문화'와 닮아 있다. 폭력과 욕설이 아니더라도, 다 함께 노래하고 기발한 패러디로 웃으며 연대하는 문화가 더 세련되고 단단한 힘을 발휘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 슬롯에는 여전히 '밭갈기'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상대를 향한 일방적인 계몽의 관습이 존재한다.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으니 가르쳐주겠다"는 태도는 설득이 아닌 반발만을 낳는다. 타자화하는 관습을 버리고 진정으로 함께 가기 위한 설득의 노력은 수많은 연습과 시도 끝에 완성된다.


코난 오브라이언이 타인을 조롱하기에 앞서 끊임없이 자기를 비하하고 한심한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Self-deprecation)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다 똑같이 부족한 인간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나를 먼저 낮출 때, 상대방도 비로소 방어기제를 풀고 대화의 테이블로 다가온다. 정치적 이념의 벽에 유머라는 균열을 내어 "어, 저 사람 말이 일리가 있네?" 하고 피식 웃게 만드는 찰나의 순간, 설득은 시작된다.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돌려 내 편으로 만드는 핵심은 나의 논리가 얼마나 완벽한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가에 달려 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얄미운 사람이 하면 듣기 싫고, 반대로 매력적인 사람이 하면 귀를 기울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진정한 소통을 원한다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보기에도 좋아 보여야 한다.


"보기에 좋아 보여야 한다"는 것은 결코 위선적인 포장을 뜻하지 않는다. 상대가 진흙탕 싸움을 걸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여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함부로 깎아내리지 않는 리스펙트,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무겁지 않게 풀어내는 유머러스함이라는 ‘태도의 품격’을 의미한다. 품격 있는 매력은 상대가 굳게 닫아걸은 경계의 벽을 스르륵 녹여낸다.


준엄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세상을 내 입맛대로 바꾸겠다고 억지로 뛰어다니기 전에, 내가 먼저 타인이 다가오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인간이 되었는가 돌아보아야 한다. 상대가 낮게 갈 때 홀로 높게 가는 여유, 타인을 내 삶의 영역으로 환대하고 설득하려는 지치지 않는 연습, 그것이 바로 이 거친 분노의 시대를 건너가는 가장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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