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163/365)
코난 오브라이언의 2026년 하버드 졸업 연설을 보고
https://www.youtube.com/watch?v=yHBasrew8yY
얼마 전, 코메디언 코난 오브라이언의 2026년 하버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 영상을 보았다. 특유의 짓궂은 자학 개그와 하버드를 고소하겠다는 유쾌한 농담들이 이어졌지만, 그 웃음의 끝에 남은 단어들은 의외로 묵직했다. 바로 ‘운(Luck)’과 ‘피봇(Pivot)’이었다.
코난은 최고 엘리트인 하버드 졸업생들 앞에서 “성공에서 운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무지한 것”이라며, 운 좋게 들어온 포커 패를 자기 실력이라 착각하지 말라고 꼬집었다. 그 문장을 듣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오랜 기억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가 슬롯생활을 시작했던 첫 온라인 게임의 창립자 역시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당시에는 성공한 자의 겸손이거나 으레 하는 인사치레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고 커리어의 파도를 직접 겪어보니 알게 되었다. 치밀한 계획과 노력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시장의 타이밍, 귀인을 만나는 일 등 커리어의 수많은 변곡점에는 늘 ‘운’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성공했을 때 오만해지지 않고, 실패했을 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코난은 이처럼 삶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거나 통제할 수 없을 때 필요한 무기로 ‘피봇(Pivot)’, 즉 유연한 방향 전환을 이야기한다. 그 역시 평생을 바친 전통적인 TV 토크쇼라는 플랫폼이 사라지는 위기를 겪었지만, 자존심을 내려놓고 팟캐스트라는 새로운 세계로 피봇하며 인생의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했다.
나 역시 피봇을 강제로 경험한 순간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던 어느 날, 나는 한 창업팀에 합류하려다 결국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발을 뺐다. 일은 점점 버겁게 느껴졌고, 내 능력은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무엇보다 그 팀에서 나는 ‘내가 기여한 만큼의 정당한 지분’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 시절에는 그냥 별생각 없이 창업팀을 시작했다가 큰 소득 없이 끝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번에는 내가 주인이 아니라 남의 게임에 참여하려던 참이었다.) 당시의 감정은 부끄러움과 안도가 뒤섞인 묘한 것이었다. ‘나는 겁쟁이인가’라는 자바카라과 함께, ‘여기가 아니야’라는 본능적인 안도감이 밀려왔다.
돌아보면, 그 도망은 실패가 아니라 나만의 피봇이었다. 코난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팟캐스트로 향했듯, 나는 ‘남이 만든 팀의 규칙’에 맞춰 살지 않겠다고 선택한 것이다. 그 경험 이후, ‘나’라는 사람의 선택 기준이 한 가지 늘어났다. ‘내가 정당한 주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기준. 그것은 학벌로도, 직함으로도 주어지지 않는, 오직 경험의 쓴맛을 직접 삼킨 사람만이 가지게 되는 ‘자기 정의’의 첫 조각이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코난은 학벌에 대해서도 아주 흥미로운 통찰을 던진다.
“커리어 초반에 미디어가 나에 대해 아는 유일한 사실은 ‘하버드 졸업생’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하버드는 나를 설명하는 가장 마지막 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졸업생들에게 “하버드가 여러분에 대해 아는 ‘가장 덜 중요한 사실(least important thing)’이 되기를 바란다”는 최고의 덕담을 건넨다.
나 역시 나쁘지 않은 학교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의 노력에 대한 훈장 같았던 그 타이틀은 분명 슬롯에 첫발을 내딛을 때 유용한 무기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학벌이라는 타이틀은 동시에 ‘너는 좋은 학교 나왔으니 잘해야 한다’는 기대의 무게로 나를 가두기도 했다. 내가 창업팀에서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모르는 게 있으면 안 된다’는 자괴감 때문이기도 했다. 학벌은 나에게 방패가 되었지만, 때로는 족쇄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배우기 시작했다. 그 족쇄를 풀기 위해서는, 학벌을 ‘가장 덜 중요한 사실’로 만드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언제부턴가 내 마음속에는 한 가지 경계심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학벌이 내 인생과 커리어에서 가장 빛나는 성취이자, 남들에게 내세울 마지막 자랑거리가 되는 삶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현재를 안주하는 순간,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나를 피봇할 수 있는 유연함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대학 타이틀 하나로만 설명된다면, 그보다 따분하고 서글픈 커리어가 어디 있겠는가.
최근 몇 년간 나는 더 극적인 환경의 변화를 겪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과 함께, 한국의 디지털 업계에서는 ‘웹기획자’, ‘기획자’, ‘PM’, ‘PO’라는 직무 타이틀이 쉴 새 없이 등장하고 사라졌다. 그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타이틀들이 사라진 뒤에도, 나는 내가 누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깨달았다. 진짜 직무는 회사가 붙여주는 이름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피봇해온 경험들의 총합이라는 것을.
코난은 자신이 이 자리에 서기까지 가족, 친구, 동료, 그리고 수많은 우연이 함께했다며, 우리 인생은 ‘무수한 대중이 꽉 들어찬 광대 차(Clown Car of Multitudes)’와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이렇게 더 구체적으로 이어진다. “만약 오늘 나를 여기 있게 해준 모든 사람들을 초대한다면, 케임브리지 전체와 알스톤의 절반이 그들로 가득 찰 것이다. 친구, 가족, 응원하는 이들, 함께 일한 작가와 제작자, 심지어 안티팬과 수많은 우연한 만남들까지.” 그가 말한 ‘무수한 대중이 꽉 들어찬 광대 차’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나는 문득 내 인생의 광대 차에는 누가 타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내가 이뤄낸 작은 성취들 뒤에는, 분명 나만 알거나 이미 잊혀진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다. 첫 온라인 게임에서 운에 대해 가르쳐준 창립자, 도망치듯 떠났던 그 창업팀의 동료들, 심지어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까지도 어쩌면 내 차의 중요한 승객이다. 성공 뒤에 숨은 이 광대한 군중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겸손의 첫걸음이다. 이것이 내가 이뤄낸 작은 성취들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이 겸손이 있을 때, 그리고 환경이 바뀔 때 언제든 내 정체성을 바꿀 수 있는 피봇의 용기가 있을 때, 비로소 내 인생의 광대 차는 더 유쾌하고 풍요롭게 굴러갈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라고 물을 때, 나는 남이 붙여준 직함(title)을 꺼내지 않겠다. 대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실패 앞에서 도망칠 줄도 알지만, 그 도망을 스스로 피봇이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나는 운과 지분과 학벌의 무게를 모두 경험해본 뒤, 결국 나의 가치는 내가 정의한다고 결심한 사람입니다. AI가 바꾸고 직무 타이틀이 사라지는 세상에서도 나는 내가 누군지 압니다.”
그것이 나라는 브랜드의 핵심이다. 내 인생의 광대차에는 내가 직접 고른 기준들만 태웠다. ‘정당한 지분을 요구하는 용기’, ‘부끄러움 속에서도 안도를 믿는 감각’, 그리고 ‘타이틀보다 경험의 쓴맛을 먼저 말하는 태도’. 그 차의 운전대는 내가 잡는다. 내 직무는 내가 정한다.
코난의 말대로, 우리의 진짜 교육은 졸업장이 아니라 삶의 지독한 패배와 눈부신 성공이 뒤섞인 그 번잡한 소란 속에서 이제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