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162/365)
언어의 통일이 필요할까? 에 이어서
통번역 기술이 값싸지고 있다. 실시간으로, 거의 무료에 가까운 비용으로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 전환되는 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 이러한 변화는 오래된 질문을 새롭게 던지게 만든다. “인류가 하나의 언어만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종래의 논의는 대개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한쪽은 효율성과 소통의 편의를 내세워 단일 공용어의 이상을 옹호했다. 국제 외교, 무역, 학술 교류에서 언어 장벽이 사라지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절감될 것이라고. 다른 한쪽은 언어 다양성의 가치를 강조했다. 각 언어는 문화와 역사, 고유한 사유방식을 담은 그릇이며, 언어가 사라지는 것은 인류의 지적·예술적 유산을 잃는 일이라고.
이 두 입장은 오랫동안 팽팽히 맞서왔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 특히 인공지능 번역의 폭발적 성장은 이 이분법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1. 값싼 통번역이 바꾸는 조건
과거에는 국제적 소통을 위해 모두가 하나의 언어(예를 들어 영어)를 익혀야 한다는 압력이 강했다. 하지만 AI 번역이 일상화되면, 각자 자신의 모국어로 말하고 글로 써도 상대방이 즉시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 이 경우 “공용어를 강제할 필요” 자체가 사라진다. 영어를 배우지 않은 프랑스 노인이 자신의 언어로 논문을 쓰고, 한국의 연구자가 한국어로 응답하며, 그 사이를 AI가 연결한다. 고급 지식은 더 싸고 빠르게 전파될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기존 논의가 상정했던 ‘단일 언어 대 다중 언어’의 구도를 넘어선다. 중요한 것은 하나를 선택하거나 여러 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선택한 언어로 살아가면서도 소통이 가능한 인프라가 갖춰지는 것이다.
2. ‘자연사’를 막을 필요가 없는 이유
그렇다면 언어의 다양성은 어떻게 될까? 어떤 이들은 우려한다. AI 번역으로 소통이 편해지면, 사람들이 더 이상 소수 언어를 배우지 않고, 결국 수많은 언어가 사라질 것이라고.
그러나 우리는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언어의 소멸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비극인가?
언어는 살아있는 시스템이다. 과거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언어가 태어나고 변화하고 사라졌다. 고대 이집트어, 히타이트어, 고트어는 더 이상 쓰이지 않지만, 인류는 그 상실 때문에 더 가난해졌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새로운 언어와 표현 방식이 진화했다.
변화를 통제하지 않는 것이 핵심 원칙이 되어야 한다. 언어가 단순화되는 방향으로 간다면, 그것은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더 이상 복잡한 문법이나 어휘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만약 문학과 사랑 고백, 철학적 논쟁이 여전히 인간 삶의 중심에 있다면, 언어는 필요 이상으로 단순화되지 않을 것이다. 시를 쓰고,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고, 유머와 아이러니를 구사하려는 욕구는 언어의 정교함을 스스로 유지하게 만든다.
그리고 설령 어떤 언어가 소멸하더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억지로 살리는 것’이 아니라 기록이다. 채록과 보존은 중요하지만, 살아있는 전승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 언어 역시 진화와 선택의 대상이며, 자연사하는 것을 비극으로만 보는 시각은 오히려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통제 욕구일 수 Useful하다.
3. AI 번역과 정치의 경계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경계가 등장한다. AI 번역 기술 자체는 중립적 도구다. 문제는 그것을 누가, 어떻게 통제하느냐이다.
정부나 거대 기업이 “우리는 AI 번역을 쓰므로 소수 언어 교육을 중단한다”고 결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인위적 통제다. 반대로 “우리는 특정 언어를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강제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통제다.
진정한 자유는 각 개인과 공동체가 스스로 선택하게 두는 것에 있다. 어떤 가정은 부모의 모국어를 자녀에게 가르치고, 어떤 지역은 전통 언어를 유지하며, 또 어떤 집단은 새로운 표현 방식(이모지의 진화된 형태, 시각 언어, 혼성어)을 실험한다. AI는 이러한 선택을 돕는 인프라일 뿐, 선택을 대체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는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다. 누가 알고리즘을 설계하는가? 어떤 언어의 데이터가 충분히 학습되는가? 번역 과정에서 어떤 문화적 뉘앙스가 삭제되고 어떤 것이 증폭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시민과 정치 공동체가 함께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4. 상실감에 대하여
그렇다면 우리는 언어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아무 느낌도 없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상실감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어떤 언어의 마지막 화자가 세상을 떠날 때, 그곳에 슬픔이 있음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어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아무 느낌도 없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상실감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어떤 언어의 마지막 화자가 세상을 떠날 때, 그곳에 슬픔이 있음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슬픔이 타인의 선택을 통제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언어가 사라져서 슬프다”는 개인의 감정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러므로 너는 이 언어를 계속 배우고 사용해야 한다”는 강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상실감을 느끼는 사람은 스스로 그 언어를 배우고 기록하고 전파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자유를 타인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도구 자체가 아니라, 도구를 통한 통제 시도다.
이 대화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관점에 도달했다.
언어의 미래는 통제해서는 안 된다. 기술이 허용하는 자유 속에서 인간의 실제 소통 욕구와 문화적 창조성이 언어의 진화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AI 번역은 그 과정을 방해하지 않는 중립적 인프라이며, 그 인프라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정치와 시민 슬롯의 몫이다. 언어가 단순화되든, 분화되든, 새로운 형태(이모지, 시각 언어, 혼성어)로 진화하든, 그것은 살아있는 시스템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이 관점은 ‘무엇이 좋은 언어 정바카라인가’라는 당위적 질문에서, ‘인간은 언어를 어떻게 진화시키는가’라는 사실과 과정의 질문으로 초점을 이동시킨다. 보존과 다양성이라는 방어적 가치 대신, 창발과 적응이라는 역동적 가치를 중심에 세운다.
21세기 세계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획일화’도, ‘강제적 다양성 유지’도 아니다. 그것은 공존과 신뢰다. 개인이 자신의 언어적 정체성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기술이 그 선택 사이를 연결해주며, 정치가 그 연결을 왜곡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체계.
어쩌면 가장 현명한 태도는 이렇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미래가 온다면, 그때 사는 사람들이 판단할 일이다.”
우리의 역할은 그 판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통제 시도들을 경계하고, 기록의 중요성은 인정하되, 살아있는 언어의 호흡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언어는 결국 인간의 삶을 위해 존재한다. 그 역도 성립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