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솔직함 만들기

2026 All-Day-Project (157/365)

byJamin

솔직함의 훈련에 관한 글에 이어서


우리는 모두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동료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피드백을 구하죠.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정작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불편한 진실은 귀를 닫아버립니다. 왜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솔직함'이라고 하면 흔히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특히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곧 용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일터에서는 모든 솔직함이 환영받지도,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솔직함은 무엇일까요?


일에 대한 솔직함입니다. 개인적 감정이나 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일하는 나'로서 경험하는 생각, 판단, 불확실함, 한계에 대한 솔직함 말이죠. 그리고 이 솔직함은 선천적 기질이 아닙니다. 훈련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입니다.


첫 번째 단계: 틈새 저널링, 가감 없는 나를 만나는 시간


솔직함의 첫 번째 관문은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남에게 솔직해지기 전에, 먼저 내 안에 있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회의실에서 나오며 떠오른 "아, 이거 진짜 안 될 것 같은데..."라는 솔직한 생각.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든 "사실 나도 내 말에 확신이 없었어"라는 불편한 진실. 동료와 대화 후 "짜증났지만 웃으며 넘겼다"는 속마음. 이런 것들을 틈새 저널에 그대로 적어보세요.


처음엔 어색할 거예요. 우리는 자신을 포장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프로페셔널하게' 생각하려 하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하죠. 하지만 틈새 저널은 그런 포장을 벗겨내는 공간입니다. 남이 볼 일도 없고, 평가받을 일도 없어요. 오직 나와 나의 대화만 있을 뿐이죠.


이때 중요한 것은 '일의 맥락'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출근하기 싫은 감정이나 개인적인 불안보다는, 프로젝트의 불확실성, 의사결정에 대한 의문, 역할에 대한 한계 같은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 더 생산적입니다. '일하는 나'의 페르소나 안에서 경험하는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적는 거예요.


이런 기록들이 쌓이다 보면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내 행동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해요. "나는 확신이 없을 때도 확신 있는 척한다"거나 "불편한 피드백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거나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을 못한다"는 식의 패턴들이요. 이건 누가 알려준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발견한 거예요. 그래서 더 강력합니다.


두 번째 단계: 필터링, 드러낼 솔직함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


기록만 하고 끝나면 반성문 쓰기에 그칩니다. 중요한 건 '드러낼 만한 솔직함'을 걸러내는 안목입니다. 내가 적은 모든 생각을 남에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면 관계가 깨질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걸러낼까요?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세요.


첫째, 이것이 일의 진행에 도움이 되는가?

내 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냄으로써 프로젝트, 의사결정, 팀워크가 나아질 여지가 있는가? 단순한 불평이나 하소연이라면 저널에 남겨두는 게 낫습니다.


둘째, 상대방이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불안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상대가 어떻게 해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일정이 불확실할 때 구체적인 마일스톤을 같이 정해주면 불안이 줄어들 것 같아"라고 말하면 상대는 행동할 수 있습니다. 감정 자체보다는, 그 감정이 일으키는 '요청'으로 번역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셋째, 지금 이 관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가?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사에게 가장 깊은 약점을 먼저 드러내는 것은 전략적이지 않습니다. 안전한 동료, 피드백에 열린 후배, 신뢰하는 선배 등 관계의 단계에 따라 드러내는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이 세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는 솔직함만 1:1 대화로 가져갑니다. 나머지는 저널에 남겨두고, 패턴을 관찰하는 재료로만 쓰는 거죠.


세 번째 단계: 용기 있는 검증과 실험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입니다. 내가 발견한 나의 패턴을 타인의 시선으로 검증받는 거죠. 1:1 미팅이 가장 좋은 장소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질문하는 방식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라고 막연하게 묻는 대신, "나는 회의에서 너무 디테일에 집착하는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봤어?"라고 구체적으로 물어보세요. 혹은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피드백을 방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네 눈에도 그렇게 보였니?"라고 먼저 자기 인식을 드러내는 거예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내가 먼저 약점을 드러내니 상대방도 더 솔직해져요. "사실 그런 면이 있긴 해. 특히 지난번 프로젝트 때..."라며 구체적인 사례를 들려주죠. 이건 공격이 아니라 도움입니다. 내가 먼저 열었으니 상대도 진심으로 도와주려 하는 거예요.


때로는 예상과 다른 답이 돌아오기도 합니다. "디테일에 집착한다고? 오히려 네가 더 꼼꼼했으면 좋겠는데?" 이런 피드백도 귀중해요. 내가 생각한 나와 남이 보는 나의 간극을 발견하는 순간이니까요.


피드백을 받았다고 끝이 아닙니다. 이제 실험할 차례예요. "앞으로 2주간 회의에서 디테일 얘기는 3개까지만 하기"처럼 작은 변화를 시도해보는 거죠. 그리고 다시 틈새 저널에 기록합니다. "오늘 회의에서 할 말이 더 있었는데 참았다. 의외로 회의가 빨리 끝났다"는 식으로요. 실험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관찰'입니다. 결과가 어떻든 배울 것이 있으니까요.


현실의 경계선: 이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을 때


당연히 이 접근법이 모든 상황에서 완벽하게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현실에는 다음과 같은 장벽들이 존재합니다.


권력 관계의 문제

상사에게 약점을 솔직히 말하는 것과 후배에게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어떤 조직은 솔직함을 '약함'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안전한 관계부터 시작하고, 조직 문화를 읽는 감각을 함께 키워야 합니다.


실험의 실패 가능성

작은 실험이 실패했을 때 "나는 역시 안 되는구나"라는 결론을 내며 원래 패턴으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실패는 '실패한 실험'일 뿐, '나의 실패'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필터링의 애매함

'일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기준이 때로는 모호합니다. 단기적으로는 불편하지만 장기적으로 신뢰를 쌓는 데 필요한 솔직함도 있습니다. 이 판단은 경험을 통해 점점 선명해집니다.


이런 한계들은 이 프레임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맥락을 읽는 능력'이 함께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도구는 도구일 뿐,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것은 결국 당신의 몫입니다.


마무리: 시작해볼 만한 일


중요한 건 이 모든 과정의 시작이 '기록'이라는 거예요. 나에게 솔직하지 못하면 남의 피드백도 제대로 들을 수 없습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불편한 건 합리화하죠. 하지만 틈새 저널로 솔직함을 훈련하면, 남의 말도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게 됩니다.


피드백 루프는 거창한 시스템이 아니에요.

기록하고, 필터링하고, 질문하고, 실험하고, 다시 기록하는 것.

그 반복입니다.


이 프레임은 정답이 아닙니다. 완벽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시작해볼 만합니다.


오늘부터 시작해보세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일에 대해 떠오르는 가장 솔직한 생각을 적는 것부터요. "이 글 읽고 뭐가 바뀌겠어?"라는 냉소적인 생각이든, "한번 해볼까?"라는 설렘이든, 그 날것 그대로를 적어보세요.


그게 당신의 '일의 솔직함'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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